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May 15. 2023

감기 덕에 침대와 한 몸이 됐다

워킹맘의 휴식


지난 일주일 내내 아팠다. 워낙 건강한 체질인 나는 감기에 걸리는 일도 별로 없고, 감기에 걸렸다 해도 약 한 두 번 먹으면 금세 회복된다. 그런데 둘째를 낳은 후부터는 몸에 변화가 생겼는지, 아니면 나이가 든 탓인지 1년에 한 두 번씩은 지독한 감기에 걸리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독한 감기가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번 감기는  지난 토요일 둘째 아들의 생일을 기점으로 찾아왔다. 만 4세가 되는 둘째 아들은 형아와 형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수없이 노출된 탓에 자신 또한 생일파티를 꼭 해야겠다는 굳은 심지를 가지고야 말았다. 생일파티 대신 가족여행이 어떻겠니, 구슬려 봐도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하겠다는 거다. 매년 첫째 아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파티 준비 때문에 긴장이 되곤 했는데, 둘째 아들의 생일파티까지 챙겨야 하다니. 그러나 아들의 기대감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둘째(또는 셋째)를 키우는 부모들은 첫째 때와 많은 부분을 똑같이 해줘야한다는 압박을 느끼곤 한다.


둘째 유치원 친구들, 학부모들 총 25명을 초대한 생일파티는 큰 사고없이 잘 마무리됐다.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를 연 덕분에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것은 많지 않았지만, 파티 당일 호스트로서 학부모들과 아이들을 챙기는 부분에 많은 에너지를 써야했다. 어른, 아이 손님 모두가 생일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갈 수 있게 해야겠다는 호스트로서의 책임감이 무거웠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생일파티가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날 첫째 아들 반친구의 생일파티에도 참석해야 했다. 집에 와서 잠시 한 숨을 돌린 후, 다시 또다른 생일파티 장소를 향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난 또다시 학부모들과의 스몰토크에 열을 올렸다. 평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학부모로서 맺어지는 관계들은 대하는 건 부담이 크다. 내가 학부모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부모들과의 대화에는 유독 나의 온 에너지를 끌어다 쓰게 되고, 과하게 에너지를 쓰다보니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그렇게 두 탕의 생일파티를 끝내고, 그날 밤부터 난 앓아 누웠다. 몸이 피곤해서 몸살을 앓는 거라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상태가 호전되기는 커녕 심각해졌다. 고열, 두통, 근육통, 기침, 콧물... 감기로 겪을 수 있는 모든 증상이 내 몸에서 나타났다. 상태가 제일 심각했던 화요일에는 병가를 냈고, 나머지 날들은 재택근무였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전시간에는 침대와 한 몸이 됐다. 점심을 먹고 일어나 하루에 끝내야 할 업무를 재빨리 끝마치고, 아이들을 하교 시킨 후, 또다시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최소한의 육아와 일을 한 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보냈다. 인생에서 이런 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산후조리 이후 침대에 이토록 오래 누워있어 본 것은 이번이 생애 처음이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보다도 몸이 더 아팠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아프다니,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인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 편으로는 이 상황이 좋기도 했다. 몸은 아팠지만, 약을 먹고 곯아떨어지는 그 감각이 좋았다. 사경을 헤맨 듯 정신없이 잠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그 기분,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모르겠다. 아무 걱정없이 그저 감기가 빨리 낫기만을 바라며 누워서 잠을 청하는 그 순간이 너무 달콤했던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평소에 얼마나 빡빡하게 살았으면 아파서 누워있는 시간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걸까? 그렇게 자문하다 보니 스스로가 애처롭게 여겨지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나서야 가질 수 있는 휴식시간이라니. 엄마, 아내,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삶이 참 무겁고 힘들다.


일주일간 침대와 한 몸이 돼서 푹 잤더니, 이제야 몸이 가벼워지고 점차 내 본연의 컨디션이 돌아오고 있다. 아내가 아픈 바람에 집안 모든 일을 떠맡아야 했던 남편에게 고맙다. 무리한 남편이 다음주부터 아프기 시작할까 그게 내 걱정이다. 다시 건강해지면 그간 못갔던 요가도 가고, 단골 카페 커피를 마시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아프고 나면 안다.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워킹맘의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