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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11. 2023

육아보다는 출근이 쉽다

출근하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

재택근무를 하며 대부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출근을 한다. 매주 수요일은 내가 출근하는 날.


출근하는 날의 아침은 보통의 아침 보다는 분주하다. 아이들 도시락을 챙기고 아침식사를 챙기는 와중에 곱게 단장하고 출근할 준비도 마쳐야 하니까. 출근하는 날의 기상시간은 새벽 5시 30분. 평소보다는 30분 먼저 일어나기가 어찌나 힘든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졸음을 떨친다. 출근룩으로 무엇을 입으면 좋을까, 옷장 앞에 서서 아주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진다. 출근하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내가 화장하는 날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아이들 등하교 및 방과 후 활동 라이드, 운동 등을 할 때만 외출을 하기 때문에 화장할 필요성이 제로다. 피부를 아껴두자는 마음과 귀찮은 마음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합쳐져 평일에는 쌩얼을 고수한다. 오랜만에 외출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화장까지 한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나의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를 오랜만에 마주한다. 


그 후 재빨리 부엌으로 가서 도시락을 싸고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나는 가족들의 아침식사를 차려주며 서서 간단하게 배를 채운다. 사과를 깎으며 남은 부분을 먹고, 볶음밥을 해주며 맛을 보며 두 세입 먹는 게 내 아침식사다. 대체 엄마들은 왜 서서 밥을 먹나 했더니, 그게 다 바쁘고 분주해서였다. 여유없는 상황 속에서 ’우아함‘과 ’고상함‘을 찾기는 어렵다. 그리고 여유가 없다 보니 딱히 식욕이 돋지 않는다. 해야할 일들을 빨리 해치우고 싶다는 분주함 마음만이 앞선다. 


여하튼 출근하는 수요일이면, 도시락 싸기와 아침식사 차리기까지가 딱 집에서의 내 역할이다. 그 이후의 가사와 육아는 남편의 몫.


내가 출근하는 날이면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등하교, 태권도 보내기, 간식 및 저녁 먹이고 재우기까지가 남편의 일이 되었다는 뜻. 아빠와 학교를 가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탄 나는 쾌재를 부른다. 얏호.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다.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시간. 


살림과 육아에서부터 잠시 탈출한 나는 차안에서 아껴뒀던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다. 주로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들으며 출근을 하는데, 40대인 두 직업인 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출근길 마음이 뿌듯해진다. 기혼이며 애 둘을 키우고 있는 나도 그녀들처럼  본연의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어서다. 출근을 하는 일은 내가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을 내려두고 그저 ‘나’로만 하루를 살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평소 재택근무와 육아를 하며 집과 동네만을 오가다 보면,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뭔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일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서 일테다. 아이들이 학교간 시간을 틈타 기사를 쓰는 행위는 과거 학생일 때 학교 과제로 에세이를 쓰던 행위와 흡사해서, 직장인이라기 보다는 학생의 삶을 살고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둘톡을 운영하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40대 미혼 여성이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얼마나 즐겁게 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준다. 변한 시대상에 아주 적합한 신여성들이랄까. 전통적인 4인 가족을 꾸려 살아가는 내게 두 작가의 모습은 때때로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본지가 언제더라. 아이를 낳기 전의 인생이 전생처럼 아득하게 여겨진다.


회사에 도착해 일주일만에 만나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 책상에 앉아 아침 업무를 끝낸 뒤, 그날의 신문을 읽는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시간이 확보되다니, 아 여유롭다! 여유 그 자체.


선배들이 미팅에 간 오전 시간에는 마주보고 앉은 동료와 어떻게 지냈는지 짤막한 수다 타임을 가진다. 그날 점심을 뭘 먹을까에 대해서도 한참 떠든다. 학교와 유치원에 간 아이들의 안부는 잠시나마 잊고, 정말 '나'로만 존재하는 시간이다. (물론 동료가 나와 같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수다 주제는 육아로 새어나가기 마련이지만)


직장인 1년차일 때 선배들을 "매일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냐"며 묻곤 했다.


"네, 저는 회사에 오는 게 너무 즐거워요." 라는 기막힌 대답을 했던 나.


얼마전 아이를 낳은 선배는 왜 내가 회사에 오는 걸 그토록 즐거워했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지지고 볶는 일보다는 회사에서 일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이라는 사실을 그 선배도 알아버린 것이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보는 게 얼마나 여유로운 일인지 엄마가 되고 나면 알 수 있다.


하루 종일 밖에 있으면서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건 남편이 든든하게 아이들을 돌봐주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재택근무를 택할 수 있는 남편의 상황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글을 쓰다보니 출근이 하고 싶어진다. 출근하기 싫은 병에 걸린 분이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해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렇다면 출근이 너무나 하고 싶어질지 모른다는...희망의 처방전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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