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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Dec 06. 2023

외식이 싫다는 아이들

집밥이 최고


정신없이 바쁜 주중을 무사히 끝마치고 주말이 오면 집안일을 딱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삼시세끼 차리기만은 피하고 싶어지는데, 이미 평일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시세끼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점심 식사를 한국처럼 급식으로만 해결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선택에 의해 '카페테리아' 음식 또는 '도시락'을 먹게 되는데,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첫째 아들은 무조건 도시락을 먹겠단다.


날마다 도시락을 싸야하다니, 처음에는 이게 왠 날벼락인가 싶었다. 그런데 도시락을 싸는 인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팬데믹 시기에 모든 식당이 문을 닫은 관계로 남편 또한 사무실에 도시락을 싸갔었다. 당시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미라클모닝'을 실천 중이었고, 미라클모닝의 루틴에 어쩌다 보니 도시락 싸기를 포함시키게 됐다. 워낙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비교적 기쁜 마음으로 도시락을 쌌던 것 같다. 남들은 다 재택근무를 하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데에 대한 보람이 있었다.


코로나 시대가 저물고 도시락으로부터의 자유가 왔다, 싶었는데 이제는 첫째 아들 차례다.



처음에 도시락을 쌀 때만 해도 바짝 긴장해서 오전 6시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파스타, 유부초밥, 김밥, 만두, 샌드위치 등등…점차 도시락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는 고갈되어 갔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다녀온 아들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냥 빵이랑 과일 싸주세요. 다들 그렇게 싸와요.“

1학년이 된 아들은 공동체 안에서 ‘다름’이 무엇인지를 인식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빵을 도시락으로 싸오는 모양이었고, 친구들과 다른게 싫은 아들은 자기도 그저 비슷한 메뉴를 싸가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비슷해지고 싶은 아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대충 어림짐작이 됐다.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 한들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는 아들은 아직까진 영어보다 한국어로 소통하는게 더 편해 보인다. 여러 인종이 모인 학교에 다니며 아들은 점차 친구들과 자기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락만큼은 무리에서 튀지 않는 메뉴로 싸가고 싶은게 아들의 바람이었다.


요즘은 아들의 바람대로 도시락을 위해 ‘요리’를 하는 일을 멈췄다. 미리 사둔 빵과 과일, 비타민젤리, 삶은 계란, 마시는 요거트 등을 넣어 도시락을 구성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도시락 싸는 일이 크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단, 도시락 싸기가 수월해진 대신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에 더 많은 신경을 쏟게 됐다. 스낵에 불과한 빵과 과일로 점심식사를 대체하는 아들을 살 찌우기 위해서는 아침밥과 저녁밥에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의 몸무게는 미국 기준 평균 미달…아무리 먹여도 살이 안 찌는 부러운 체질을 두 아들의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요리를 한다.


엄마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일까?

두 아이는 엄마의 집밥을 좋아한다. 밥을 해주면 떼쓰지 않고 아주 잘 먹는다. 

문제는 ‘집밥’만을 고수한다는데 있다. 외식을 하자고 하면 싫다고 징징거린다. 세상에. 주말에도 주방파업이 불가해졌다.


왜 자꾸 집밥만 먹으려 하는거야?


집밥이 건강하고, 내 입맛에 딱 맞으니까요!



유학생활을 하느라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을 때 가장 그리운 건 집밥이었다. 것도 특정해서 말하자면 ‘아침밥’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서 ‘내가 한국에 왔구나’를 가장 실감하게 해준건 매일 아침 엄마가 끓이는 국, 찌개 냄새였다. 잠에서 살짝 깨어났을 때, 부엌에서 엄마가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가 나면 눈이 절로 떠졌다. 아 이곳은 한국이구나, 엄마가 밖에서 나를 위한 아침을 준비해주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게 있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 식탁에 앉아 엄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어느 여름방학의 아침. 그 시간의 색감은 노란색, 다홍색을 띠고 있다.


이런 나와는 상대적으로 남편에게는 어릴 적부터 엄마밥을 먹어본 기억이 부재했다. 워킹맘이었던 시어머니는 밤낮없이 바쁜 삶을 사시느라 요리를 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 남편에게 집밥의 정을 알려준 건 장모님이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은 장모님이 해주는 갈비찜을 인생 최고의 맛으로 꼽았다.


아이들에게도 먼 훗날 그리워할 집밥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집밥은 음식을 넘어 엄마의 사랑이고, 함께 먹는 가족간의 정까지 다 포함하고 있으니, 그보다 귀한 기억이 어디있을까 싶다. 


남다른 요리 실력을 갖추지 못한 엄마의 집밥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해주는 두 아들과 남편이 문득 고맙게 여겨지는 밤이다. 몸은 피곤해도, 가족들이 원하는 한 집밥을 해줘야겠다고 다짐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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