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Aug 21. 2024

도둑맞은 주말


주말을 도둑 맞았다. 


말 그대로 도둑맞았다. 금요일 밤부터 컨디션이 저조하더니, 급기야 열이 났다. 그렇게 시작된 몸살은 주말 내내 지속돼 꼼짝없이 주말내내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살았다. 집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토요일과 일요일을 보내고 나니, 소중한 주말을 도둑 맞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번 몸살은 맥락이 없다는 점에서 요상했다. 보통 몸이 슬슬 안 좋아지면서, 감기에 걸리려나 싶을 때쯤 몸살이 오는데 이번에는 그런 전조 증상이 아예 없었다. 금요일 점심까지만 해도 오히려 기운이 펄펄 넘쳤다. 점심으로 차돌박이를 구워먹기도 했으니, 힘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저 목이 좀 칼칼하니 아팠을 뿐인데, 그러더니 지독한 몸살이 찾아왔다. 


올해들어 이렇게 심하게 아픈 적이 벌써 세번째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몸이 아프다는 거다.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일주일에 두 세번씩은 꼭 하는데도 몸이 탈이 났다. 


지난 몇 년 동안 재택근무를 하다 올해 1월 이직을 하면서 풀타임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으로 살다 보니 삶이 고되긴 했다. '힘들다' '지친다'는 말이 시도 때도 없이 입에서 새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랬다. 올해 나는 몸과 정신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방전될 것 같은 그런 기분. 


몸과 마음이 무탈하지 않으니 주기적으로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했을 때 면역력으로 바이러스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아플때 제대로 된 약을 구하기 조차 쉽지 않으니, 작은 병도 커지는 일이 허다했다. 근육통, 두통, 미열, 목아픔 등을 직통으로 앓으면서도 난 '에드빌'과 '나이퀼' 등 집에 있는 약으로 버텼다. 단순 몸살이려니 싶어 집에 있는 약만으로도 나을 줄 알았던 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몸이 아프긴 했지만 누워서 쉴 수 있다는 점이 좋기도 했다. 아이들의 육아로부터 해방됐다는게 좋았다. 남편은 아픈 아내 대신 독박 육아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의 학교 행사, 수영 수업 등을 참석하고, 집에 와서는 밥을 차렸다. 


남편은 학교 행사에서 만난 한 학부모가 "와이프가 아파서 집에 있다니, 그것 참 부럽네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날 남편이 참석한 학교 행사는 야외에서 열렸다. 해가 쨍쨍한 낮 3시부터 6시까지 열린 행사였다. 이날 날씨는 약 35도. 그 학부모 말이 맞다. 아픈 게 차라리 나을 지경이다. 


하지만 금, 토, 일을 내리 누워서 쉬었는 데도 몸이 낫지를 않자, 단순 몸살 감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야할까? 월요일날 아침에도 눈을 떴는데 컨디션이 영 정상이 아니면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월요일 아침, 모닝콜이 울렸고,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둔 휴대폰을 끄면서 다시 눕는데 머리가 뱅그르르 돌았다. 지긋한 두통이 자고 일어났는데도 남아 있었다. 회사에 오늘 하루 병가를 낸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월요일부터 병가를 내는 직원이라니,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지만 아프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집 근처 '얼전트 케어'를 찾았다. 의사는 면봉으로 내 목을 찌르더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다고 말했고, 오늘은 급한대로 주사를 놔주겠다고 했다. 미국 병원에서 감기를 낫게 해주겠다고 주사를 놔주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내 목의 붓기가 눈으로 보기에도 심각한 수준이구나 했다. 주사 처방까지 받았는데 내가 병원에 지불한 가격은 15달러. 병원비 비싼 미국에서 보기 쉽지 않은 가격이다. 공무원 보험이 좋긴 좋구나 싶던.(힘들어도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라고 해야 하나. ^^하하)


주사빨 덕분인지 기운이 난다고 느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건강한 기운에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집 청소를 하고, 뭘 하고 놀지 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 누구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이 허락된 것이다. 아파서 주말을 날려 먹었는데, 오늘이라도 제대로 놀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그간 아껴왔던 영상을 보니 오전 시간이 후딱 흘러갔다. 


그 후로는 두 아이를 각각 픽업하고, 태권도에 갔다가 장을 봐서 돌아오니 저녁시간이 됐다. 그리고 약빨이 다 했는지,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대체 뭔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이토록 안 낫는건지...!!! 억울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테리아성 인후염에 걸렸다고. 검사 결과 A형 연쇄상구균(Streptococcus pyogenes)이 발견됐다고. 합병증이 유발될 수 있으니, 항생제를 10일간 복용하라고.


지독하게 아프더니만 단순 감기는 아니었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만 있을 게 이 아니라 진작 병원에 갔어야 했다. 진작 항생제를 먹었으면 덜 아플 수 있었을텐데. 주말을 잃고 나서 깨달은 점. 병원은 제때 가자! 


(사진 출처: pixabay_duckleap)

매거진의 이전글 맞벌이 가정의 고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