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서있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고국에서 들려오는 뉴스가 연일 달갑지 않아 마음이 어수선한 요즘이다. 2024년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멍하니 뉴스만 들여다 보지 말고 내 삶도 정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이 며칠 안 남았다는게 아직은 비현실처럼 여겨진다. 곧 2025년이라니.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1년이 어땠는지 사진첩을 들여다본다. 그 여느 때보다 감정의 파고에 휩쓸렸던 2024년이었던 만큼 한 해를 떠나보내는데 앞서 아쉬움이 이상하리만큼 거의 없다.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고, '잘 견뎠다!'라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한 해였다.
새로운 직장에서 이게 맞나, 아닌가 매일 고민의 연속이었지만 어찌됐든 이만큼 적응했으니 그거면 된 거다, 라고 가벼운 칭찬을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다. 내년은 또 어떻게 지내야하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올해보다는 더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가지고 있다.
올해 내 삶의 키워드는 방향성이었다. 사실 올해뿐이기만 하겠나. 3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늘 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불안감을 느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안된다는 강박이 내 안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다. 나에게 잘못된 방향이란 '꿈과 반대되는 곳'이다.
꿈이라고 말하면 뭔가 거창해보이지만, 내게 꿈이라는 건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거다. 즉,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삶의 태도다. 추구하는 삶의 태도가 무너지면, 몸과 정신이 모두 흔들리기 때문에 오랜 세월 축적해온 이상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날 힘들게 했던 건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끊임없는 의심이었다. 이직 후 하는 일은 때때로 즐겁고 보람도 있었다. 이방인으로서 미국 사회에 동화되고, 언어와 문화를 배운다는 측면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던 민원 전화의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어렵기만 하던 팀 미팅이 가뿐해지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긴장감이 줄어들 때 '아, 나 여기서 성장하고 있구나' 싶어 좋았다.
그러나...과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게 맞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에게 제시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주기적으로 괴로웠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인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늘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의 기반에 금이 간 1년이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쓰는 글마저 잘 써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과거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의 시간으로 와서 나를 지켜보는 상상.
과거의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고 실망할까, 아니면 감탄을 할까.
과거의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내 모습이 멋질까, 후질까.
아마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의 내가 2024년으로 와서 지금의 나를 본다면 물음표를 가득 띄운 채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지금 거기서 뭘 하고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보좌관이라는 일을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하며 지내고 있으니 과거의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건 실망도 감탄도 아닌 그저 의아함에 기인한 질문일 것이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길 위에 서있는 미래의 자신을 향한 궁금증.
적어도 실망하는 일은 아닐 것이기에 내가 나아가는 방햐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느끼진 않는다. 분명 이 길 위에서 배우는 게 많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내년도 잘 버텨봐야겠다.
내가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나, 자가 진단을 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려오는 방법은 꽤나 효과적이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