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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Dec 27. 2023

나의 금주 일기 (4)


금주 +17일, 금주 기간의 절반을 지나 뿌듯한 가운데 와인모임 운영진들이 모여서 모임을 어떻게 활성화하고 발전시킬지 의논하는 자리가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각자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고 나는 1월엔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품종 여러 개를 시음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금주 7일째에는 와인 이야기만 나와도 침이 꼴딱 넘어갔었는데 그날은 좋다기보다는 계속 걱정이 됐다. 좋아하는 와인 마시는 건 기대되지만 다시 알코올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는 게 좀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 후딱 취해버림 어쩌지… 진짜 좋아하는 와인 아니면 안 마셔야지… 좋아하는 와인도 아껴 먹어야 되는데… 괜히 와인 모임 운영진까지 맡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원칙들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우선 나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반드시 할 것. 내가 주최하는 파티 같은 데서 오늘은 취하면 절대 안 돼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 자세를 평소에도 항상 유지할 것. 술과 가까운 환경에서 멀어질 것. 그걸 위해 언젠가 용기가 생기면 와인 모임에서도 탈퇴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디폴트로 나는 ‘금주에 가까운 절주’ 상태에 있으므로 술을 마실 때는 그저 맛을 본다는 기분으로 마실 것. 


술을 마시다 보면 솔직히 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모임이 재미가 없을 때, 혹은 불편할 때, 취하기라도 하자고 생각한다. 술이 아깝다는 생각도 한다. 와인 시음회에 갔는데 옆 자리 친구가 자기는 술이 오른다면서 그만 마시다기에 내가 날름 남은 술을 비워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날도 필름이 끊겼지… 다음 날 생각해 보니 10만 원짜리 와인 시음회에서 ‘나는 술이 올라서 그만 마실게’하는 친구가 대단하면서도 그 태도야말로 내가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독서모임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읽어야 할 책과 공부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서 정말 바빴다. 내가 이렇게 에너지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오랜만에 깨달았다. 몇 년이 넘게 책이 잘 읽히지 않고 글도 잘 안 써져서 자괴감에 빠지던 이유가 결국 술이라는 걸 갈수록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 그와 같이 앞으로 어떻게 절주 해야 할지 고민은 점점 커졌다.

 



마지막 열흘은 술 생각도 나지 않고 시간이 금방 갔다. 마지막 3일을 앞두고는 조금 설렜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어떤 느낌일까, 맛있을까, 주량이 약해져서 금방 취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보다 홀가분하고 설레는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12월 23일, 드디어 금주가 해제된 날, 예정대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샹그리아를 조심스럽게 홀짝거려 봤는데 주량이 약해진 것 같진 않았다. 맛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다 보니 두어 시간 뒤에 살짝 어지럽다는 걸 인지하고 술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빈 잔을 계속 부어주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마실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와인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첫 술자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나는 '웬만하면 술 마시지 않을 거'라고 공언했다. 


중독이라고 인정하고 끊는 방법이 제일 좋겠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시작한 30일 금주, 그리고 이어질 절주가 일단 나는 마음에 든다. 더 건강하고 유쾌한 삶을 살기 위해 술에 대해서는 아직 욕심을 다 버리지 못하겠다. 그래도 '웬만하면 술 마시지 않는 사람', '술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하고 술과 잘 지내보고 싶다. 술과 끊임없이 싸운 것 같은 2023년, 수고했다. 2024년의 나도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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