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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고이케 마사요

시 읽기

by 박둥둥


여자가 부엌에서 혼자

조용히 콩깍지를 까고 있다

블랙아이드피라는 이름의 콩이다

프라이팬에 볶아 먹는다

이름 그대로

검은 눈 같은 작은 콩이다


딸이 그 옆을 지나간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딸도 콩깍지를 깐다


심심한 손녀가 부엌에 들어온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손녀도 콩깍지를 깐다


남편이 출장지에서 지쳐 돌아온다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남편도 콩깍지를 간다


아들이 애인을 데리고 돌아온다

네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들도 콩깍지를 깐다


정신이 들자

조용히 콩깍지를 까고 있는 여섯 명의 가족

테이블 위에는 조용한 콩깍지의 산


“우리가 왜 콩깍지를 까는 거지?”


그리고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가장 조용한 의문 하나가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살짝 테이블 앞에 앉는다


-고이케 마사요(小池昌代)는 1959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이기도 하다. 1986 년 『시와 메르헨』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1989년 ‘라메르 신인상’을 수상. 지금까지 10권의 시집을 냈으며, ‘현대시 하나쓰바 키 상’, ‘다카미 준 상’, ‘오노 도자부로 상’, ‘하기와라 사쿠타로 상’을 수상했다. 소설 『감광생활』 『루가』 『재봉사』 『타타도』 『전생회유녀』 『게겐산』 『현과 향』 『흑밀』 『자학의 방석』 『우마야바시』 『신이 준 선물』 『악행』 『유년, 물의 마을』 등이 있으며, 소설집 『타타도 』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장편소설 『신이 준 선물』로 ‘이즈미 교카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호세이 대학 문학부 특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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