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교단 ‘마녀사냥’에도 굴하지 않았던 고인을 기억하며
너무 뜻밖의 비보를 접했다. 4일 오후 섬돌향린교회 고 임보라 목사께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고 임 목사는 여성 목회자로서 소속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 교단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약자의 곁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교단 내 활동 중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면 지난 2021년 4월 한신대 신학부 전·현직 교수가 시간강사를 수년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왔을 때였다.
당시 고 임 목사는 성폭력대책위 활동에 힘을 쏟았고, 피해경험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중간역할을 해주었다.(대책위는 이름짓기를 ‘피해경험자’로 했었다 - 글쓴이)
고 임 목사가 가장 앞장섰던 활동은 성소수자 인권 지킴이 활동이었다. 매년 6월에서 7월 사이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현장 한 귀퉁이를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를 축복했다.
2018년 7월 퀴어축제에서 고 임 목사가 한 기도 중 일부다.
“저희가 마음의 눈을 깊이 뜨며 서로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 안에서 우리를 지으신 주님의 손길을 기억해 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기억합니다.
서로에게 이어져 있는 무지개 끈의 의미를 기억하게 하시고 어느 한 쪽이 아프면 다른 한 쪽이 아플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서로를 보듬으며 서로 사랑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세워갈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옵소서."
고 임 목사는 또 퀴어성서주석 번역본 발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자 지난 2017년 7월 예장합동 등 8개 보수 장로교단은 고 임 목사의 이 같은 활동을 문제 삼아 ‘마녀사냥’식 이단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들꽃향린교회를 담임하던 현 강남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차별에 맞서고 인권을 옹호하며 울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손을 맞잡은 임 목사는 이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준 목회자”라고 적극 반박했다.
향린공동체도 성명을 내고 “교회 내의 수많은 문제들을 썩도록 내버려 둔 채 시선을 외부로 돌리지 말라. 사랑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드러내야 할 교회가 앞장서서 차별을 옹호하고 편협한 신학적 논리로 하느님의 사역을 실천하는 동료목회자를 심판해 이단으로 낙인찍으려는 행태를 즉각 멈추라”고 규탄했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예장합동 등 보수 장로교단이 고 임 목사를 상대로 이단성을 심사하겠다고 했을 시점은 퀴어문화축제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이때 고 임 목사는 필자와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단성 심사를 하겠다는 이들은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이단이라고 했다. 이런 점을 볼 때, 미리 '이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증거수집에 나설 공산이 크다. 그렇기에 올해도 변함없이 참여할 예정이다. 그간 해온 활동을 지지하고 연대해준 분들에게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 - 2017년 7월 18일 인터뷰
이제 고 임 목사는 세상에 없다. 그가 사랑했고, 지켜줬던 성소수자와 탄압 받는 이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이단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와중에도 “목사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가야한다”며 개의치 않았던 고 임 목사, 부디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