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1990년대 법 질서 파괴했던 ‘마약왕’ 에스코바르 따라가나
1996년 6월 영국 도버항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당시 난 대학 재학 중이었고, 졸업하기 전 유럽 배낭여행을 꼭 가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영국 여행사들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전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버스 투어 상품을 판매했었는데, 런던에서 집결해 유럽 각국을 돌아본 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지금 따져보아도 ‘가성비’가 쏠쏠했다.
그때 홍콩·말레이시아·호주 등에서 온 배낭족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잡았었다. 일행 중엔 콜롬비아 출신 여학생 두 명도 섞여 있었다.
이 친구들이랑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간단한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아미고'(Amigo)가 '친구'라는 뜻의 스페인이언지 이 친구들을 통해 처음 알았다. 얼굴도 꽤 예뻤다. 그때나 지금이나 콜롬비아는 확실히 미인(美人)이 많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올 때 문제가 생겼다. 프랑스 칼레에서 페리를 타고 영국 도버항으로 들어오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입국 심사를 받듯이 말이다. 그런데 영국 이민당국이 수 시간 동안 심사한 끝에 콜롬비아 여학생들의 입국을 불허했다.
그때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영국 이민당국이 밝힌 정확한 입국거절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콜롬비아 여학생들로부터 영국 내 연고가 없고 젊은 여성이라는 게 거절 이유라는 말을 들었다. 한 여학생은 울면서 내게 짤막하게 한 마디를 건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난 콜롬비아 사람이니까"
콜롬비아 여성 입국 기피대상 ‘0 순위’, 왜?
1990년대 미국이나 유럽에서 콜롬비아 여성들은 입국 기피대상이었다는 사실을 귀국해서야 알았다. 이유는 마약 카르텔이 젊은 여성들의 몸속에 마약을 숨겨 밀반입하는 일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카르텔은 임산부마저 ‘마약 운반책’으로 삼았다. '넷플리스' 시리즈 <나르코스>와 <그리셀다>는 마약 카르텔이 여성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잘 그리고 있다.
1993년까지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과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그 시기 메데인 카르텔 보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잔혹하기로 악명 높았다.
에스코바르는 마약으로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에스코바르의 야심은 단순히 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을 꿈꿨고 자금력에 힘입어 정계입문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계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 법무장관은 그가 한때 마약거래 혐의로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러자 에스코바르는 잔혹한 보복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일명 '시카리오'라고 불리운 암살조를 동원해 그를 살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력을 추적한 언론사 편집장도 무참히 살해했다.
유력 대선후보마저 살해한 ‘보스’, 감옥 짓고 호화생활
에스코바르의 잔혹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9년 대선 당시 당선이 유력하던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마저 살해했다.
갈란 후보는 미국과 맺은 범죄인 인도조약을 지지했다. 이 조약에 따른다면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가 아닌 미국 감옥에 수감될 수 있었다. 콜롬비아는 돈으로 쉽게 매수할 수 있지만 미국 감옥은 어림도 없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에서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의 무덤에 묻힐지언정, 미국 감옥은 가지 않겠다"고 내뱉는다.
갈란 후보의 뒤를 이어 출마한 세사르 가비리아는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러자 에스코바르는 그가 탑승한 비행기에 폭탄테러를 기도한다. 다행히 가비리아는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아 화를 면했다. 하지만 민간인 승객 107명은 애꿎게 희생을 당했다.
이러자 콜롬비아 국민들은 분노했다. 에스코바르도 궁지에 몰렸다. 그런데 이때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에스코바르는 1991년 자수의사를 콜롬비아 정부에 전한다. 이때 에스코바르는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되지 않으며, 콜롬비아 감옥에 갇히되 감옥은 자신이 직접 짓겠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가비리아 정부는 내심 못마땅했지만, 마약 카르텔의 무차별 테러에 지친 정부는 에스코바르의 제안을 수용한다. 에스코바르가 짓겠다는 감옥은 말이 감옥이지 별장이나 다름 없었고, 에스코바르와 일당들은 그곳에서 호화생활을 즐긴다.
이렇게 공권력이 마약 카르텔에 파괴되는 상황이 연출된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에스코바르가 코카인을 팔아 벌어들이는 들이는 돈이 국가재정 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1990년 에스코바르는 <포브스> 선정 세계 1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에스코바르 때문에 콜롬비아의 대외적 위상은 급전직하했고, 콜롬비아 국민은 애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1996년 한때 함께 유럽을 여행했던 콜롬비아 동료 여학생이 영국 입국을 거부당한 이유도 에스코바르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셀프 수감 에스코바르 vs 관저 농성 윤 대통령 ‘평행이론’
지금 내란 혐의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기거하는 한남동 관저는 완전 치외법권 지대다. 비상계엄이란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적반하장이고, 급기야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도 물리력을 동원해 ‘뭉갰다.’
묘하게도 지금 한남동 관저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마약 카르텔에 휘둘렸던 1990년대 콜롬비아를 떠올리게 한다.
콜롬비아 보안군, 그리고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끈질긴 추격 끝에 1993년 에스코바르를 사살했다. 보안군 요원들은 에스코바르 사살 직후 "콜롬비아여 영원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껏 콜롬비아에선 마약 카르텔이 활보한다.
한국은 어떨까? 버티기로 일관하는 윤 대통령에게 맞설 유일한 방법은 엄정한 법 집행 뿐이라고 생각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대가는 감수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윤 대통령을 체포하는 순간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는 찬가를 외치고 싶다. 다만 너무 좋아하지는 말자. 윤 대통령의 헌법파괴적 비상계엄에 따른 후유증을 수습하는 데 수 년, 아니 수 십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콜롬비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