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IRONMAN 구례 대회를 마치고
바위가 많은 산은 이름에 ‘악’이 들어가고 아버지 산이라 불렸다. 넓은 들판과 강물을 품은 산은 어머니산이라 하였다. 지리산은 어머니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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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리산은 나에게 엄마산이기도 하다. 엄마의 고향은 경남 산청. 학교에 진학하면서 배우고 성장한 곳은 부산이지만, 엄마는 태어나고 자란 추억이 있는 산청 이야기를 종종 들려준다. 경호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 지리산이 둘러싸고 있는 그곳에서 내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 지냈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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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외할머니 또한 살아생전 산청을 그리워하곤 하였다. 가진 것은 부족했지만 두 딸과 함께 즐거운 곳이었다고. 큰 재벌 대기업 창업주들도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기에 외할머니는 산과 물을 품은 고향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땅의 기운을 받았으니 손주들에게는 항상 바른 생각을 하라고 당부하곤 하였다. 돌아가시면 꼭 선산에서 경호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묻어달라 하셨고, 실제 그런 자리에 모시게 되었다. 내 엄마도 그러고 싶다 하였다. 훗날 외할머니 옆에 엄마를 모시게 될지도 모른다. 나에게, 내 가족에게 지리산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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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엄마산. 내 엄마의 산
그리고 내 엄마의 엄마산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엄마산이, 엄마의 엄마산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그 생각으로 나는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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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MAN 대회가 열린 전남 구례는 지리산 둘레를 돌아 경남 산청의 반대편에 있는 곳이다. 구만제 지리산 호수에서 3.8km 수영을 하고, 섬진강 자전거길을 포함해 180.2km 자전거를 타고 끝으로 구례의 마을 길들을 반복해 42.2km 달리는 3종 대회이다. WTC 주관 IRONMAN 대회이고, 하와이 코나 월드챔피언쉽 출전권이 걸려있던 대회였기에 비싼 참가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많은 선수들이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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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는 태풍으로 인해 대회가 취소되었고, 2020년, 2021, 2022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대회가 계속 연기되었다. 나 또한 2017년 첫 아이언맨 구례 대회 이후 6년 만에 참가하였다. 나와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이었지만 대회 참가와 사전 답사를 위해 몇 년 동안 여러 번 구례를 방문하였고, 동네에 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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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렀지만 변한 것은 많지 않았다. 구만제 호수의 풍경, 섬진강 자전거길과 남도대교, 용방마을과 광의면도 그대로였다. 대회운영본부가 위치한 구례공설운동장에서 선수 등록과 물품 수령 등을 마치고 다음 날의 대회를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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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더운 날씨 때문에 수영 종목은 결국 네오프렌 웻슈트 착용은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진행되었다. 웻슈트를 착용하고 싶다면 입어도 된다. 다만, 입상과 월드챔피언쉽 출전권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나는 웻슈트를 착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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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전 스타트라인에서 대기하며 다른 선수들과 인사하는 시간은 설레고 즐겁다. 나는 성격 상 붙임성이 좋은 편도 아니고 인맥이 넓은 편 또한 아니기 때문에 대회를 통해 주변의 동료 선수들과 짧게나마 친분을 나누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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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에 이어 자전거 종목까지 첫 종목부터 목표 기록보다 저조했다. 3종 경기, 유산소 지구력 종목에는 ‘불운’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훈련과 준비해 온 과정의 결과이다. 결국은 실력 부족이었다. 수영은 부력 있는 웻슈트를 착용하지 않은 변수가 있었지만 몸싸움에 움츠러든 나는 실내 수영장 기록보다 한참 뒤처진 1시간 20분의 기록으로 3.8km 수영을 마쳤다. 자전거에서는 날씨와 코스, 그리고 실력에 비해 목표 설정이 과했는지 120km 지점부터 양쪽 넓적다리 곳곳에 근육경련이 계속되어 남은 거리 60km를 지옥처럼 보내고 5시간 26분 만에야 안장에서 내렸다. 마지막 42.2km 달리기를 위해 바꿈터를 나서는데, GPS워치 상 전체 경기 시간은 6시간 55분을 넘기고 있었다. 목표했던 10 언더(10시간 이내) 달성을 위해서는 달리기 종목에서 SUB3(3시간 이내)를 달성해야 하는데, 그냥 마라톤이었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장거리 수영과 자전거를 마친 후 무더위가 한창인 오후 낮 시간의 달리기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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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기록이 좌절되었다 해서 그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경기 내내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마지막까지 있는 힘을 다하였다. 반환점을 돌 때마다 마주치는 동료 선수들과 인사하고 서로 응원하며 끝까지 페이스를 줄이지 않고 뛰어나갔다. 다행히 피니쉬 라인 통과 때까지 달리기 종목에서는 별 다른 이상 없이 무사히 경기를 진행해 나갔다. 물론 지치고 힘들어 한시라도 빨리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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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달린 끝에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였다. 전체 시간은 10시간 28분 45초. 연령 그룹에서는 8등, 전체 28등이었다. 목표와 계획에 못 미치는 기록과 성적이지만 속은 후련했다. 멈추지 않았고 걷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달렸다. 몇 번이나 멈추고 쉬거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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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라는 지역은 아이언맨 대회 전에는 전혀 몰랐던 곳이었다. 처음 아이언맨 대회가 구례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에는 조금 의아하기도 하였다. ’그런 곳에서 그런 대회가 열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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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참가와 사전 답사를 위해 이곳을 여러 번 방문하며 깨달았다.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여러 시설들이 큰 대회를 개최하기에 손색없었고, 자원봉사와 운영, 응원을 하는 구례군민들은 친절하고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맑은 물의 지리산 호수와 섬진강 자전거길, 지리산이 내려다보는 42km 들판길 등 구례의 대회 코스야말로 최고이자 최적이었다. 참가한 선수 모두 첫 아이언맨 완주의 기쁨, 목표에 대한 도전, 동료와 선의의 경쟁으로 철인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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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고 걷지 않길 잘했다. 마지막까지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달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몇 번이나 멈추고 쉬거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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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엄마산. 내 엄마의 산
그리고 내 엄마의 엄마산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엄마산이, 엄마의 엄마산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그 생각으로 나는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