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딛고 일어나기
내 곁에 다가온 심리학
처음 상담을 받기 시작했던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닥치는 대로 심리 관련 콘텐츠를 보기 시작했다. 상담을 통해 ‘내 마음의 원인과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작업이 제법 좋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아니, 해부하고 싶었다.
공부할수록 심리학은 철학부터 뇌과학까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학문을 아우르고 있었다. 사실 입시를 앞둔 고3 시절 심리학과에 가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아직도 언급 못한 꿈이 남아있는 점 양해 바란다) 이것도 만화의 영향이겠지만 전부터 난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고, 심리학자나 상담가라는 직업이 너무 멋져 보였다. 원래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기세 좋게 조언 한마디를 날리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심리학과는 ‘통계’라는 큰 벽 때문에 수많은 문과생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쿨하게 심리학을 포기했다.
세월이 흘러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까다로운 심리학을 대중의 시선으로 풀어서 콘텐츠화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저명한 교수님의 인터뷰부터, 해외 석학의 이론도 흥미로운 콘텐츠로 편하게 접할 수 있다. 그렇게 관심이 생긴 이론을 바탕으로 심리학 책도 즐겨 읽었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내 마음에 날아와 꽂혔던 용어가, 바로 ‘내면아이’였다.
내면아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을 때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감정이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 무의식 속에 남아 현재의 행동과 감정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존재, 자아를 뜻한다. 특히 유년기의 상처나 결핍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때, 이 내면아이는 다 큰 어른이 된 후에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표출되곤 한다. 이로 인해 관계 형성이나 자기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나에게 내면아이라는 개념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지막 퍼즐조각 같았다. 그건 지금까지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내가 나임에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지 알려줄 열쇠였기 때문이다.
가령 조금만 힘들면 때려치우거나 회피해 버리는 성향. 이건 어쩌면 어릴 때 지독한 마마걸이었던 내가 사소하고 미묘한 문제까지 모조리 엄마에게 의존해 해결했던 경험 때문에 생긴 걸지도 모른다. 내 겉모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 옷을 사줄 때만 나를 흐뭇하게 바라봐주었던 엄마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외모와 체면을 유독 신경 쓰던 엄마의 태도를 그대로 흡수했는지도 모른다. 쓰지도 않을 물건과, 먹지도 못할 식재료를 마구 사들이는 이유는 어릴 때 조금 더 갖고 싶고, 조금 더 먹고 싶었던 그 약간의 아쉬움… 그게 나비효과가 되어 감당할 수 없는 과소비로 드러나는 것일지 모른다.
사실, 이렇다 할 정답은 없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내 유년기에 지분이 높은 엄마를 힐난하고자 내뱉는 말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부적응자, 문제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요인이 있었고, 그게 꼭…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라는 것. 그 사실만으로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매 상담 때마다 그 사실 때문에 안도의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내면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지, 아니면 이미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개념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개념을 음미해 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어감을. 과거를 돌아보며, 내 일상에 ‘내면아이’의 목소리가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내면아이와 ‘결핍’은 마치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꿍 같다. 어떤 ‘치명적인 부족함’ 때문에 내면아이는 활성화된다고 한다. 확실히… 이 ‘부족함’은 기묘한 애정결핍을 만들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나를 기어코 넘어트렸다. 그리고 내 머리 꼭대기에 올리가 이렇게 악을 쓴다.
“내가 먹고 싶다잖아, 내가 갖고 싶다잖아! 왜 안 줘?”
“지금 당장 도망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내가 왜 그래야 돼?”
“난 억울해!”
“나를 더 사랑해줘야 할 사람들이 날 보지도 않잖아!”
“하지만 사실 난 나쁜 애야. 맞아. 확실해.”
“몰라, 앞뒤 생각 안 할래! 머리 아파!”
이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것부터가, 내 치유의 시작이었음을 그땐 몰랐던 것 같다.
당신의 내면부모는 심판자인가? 수호자인가?
내면아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내면부모'가 있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나 보호자의 말과 행동이 마음속에 각인되어 형성된 자아의 한 부분이다. 내면부모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통제하는 면과 따뜻하게 보살피는 면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나를 꾸짖거나 다독이는 행동, 내 삶을 관리하는 태도 등에서 이 내면부모의 모습이 드러난다. 건강한 내면부모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보듬고 성장시키는 동시에, 나 자신에게 따뜻한 온정과 지지를 선물한다.
나의 내면부모는 언제나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못 할 거야. 안 될 거야.”
“네가 그러면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또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
“당장 지금이라도 수습해!” (그리고 꼭 후회할 짓을 하고 만다)
“(무작정) 안 돼, 참아. 나중에 또 후회하고 싶어?!“
자신의 ‘내면아이’를 살펴봤다면, ‘내면부모’도 반드시 들여다봐야 한다. 내 안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주기는커녕, 창피하니 뚝 그치라고 다그치는 어른도 내 안에 존재할 수 있다. 어떨 땐 그런 냉철한 내면부모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울증 인구가 100만 명을 돌파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았을 때 냉철한 ‘심판자’보다는 온정과 지지를 통해 나를 키워줄 ’ 수호자‘가 더 필요한 시대가 분명하다.
‘ADHD 호소인’이 ADHD를 말할 때
세계적으로 트라우마, 중독, 정신건강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인 ‘가보르 마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일반적으로 주의집중의 어려움, 충동성, 과잉행동 등의 특징을 보이는 신경발달장애로 정의된다. 주류 의학계에서는 이를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과 유전적 요인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가보르 마테는 이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ADHD를 두고 ‘질병이 아닌 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싸우거나 도망갈 수 없을 때, 우리의 뇌는 '멍 때리기'라는 제3의 방어 메커니즘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받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의 스트레스에 그대로 영향을 받으며, 이를 피하지 못해 ‘멍 때리기’, 즉 ‘현 상황으로부터 정신적 도피’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면 마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듯 패턴을 뇌에 각인시킨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병명을 붙였지만, 본질은 어린 시절 필요했던 ‘대처 방식’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불필요하게) 이어지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ADHD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안전하지 않던 시절의 유령이 현재까지 우리를 따라온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가보르 마테의 이런 견해는 여러 부모들은 물론, 학계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ADHD는 유전적 요인이 57% 정도이며, 가정환경이나 양육방식 등 환경적, 후천적 요인은 전체의 2~3%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ADHD인 것 같다고 자주 생각했다. 온갖 콘텐츠에 나오는 ADHD증상이 나를 가리킨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하던 시기에 내친김에 ADHD 검사까지 진행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단 비용으로 인한 장벽에 가로막히자, 전진하고자 하는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50만 원 남짓 했던 검사비는, 내 고통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견딜만한 비용이었다. 하지만 내가 ADHD가 아니라면, 그 검사비는 오로지 멍청 비용이 될 뿐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포기를 결정했고, 그게 내가 ADHD가 아닌 증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떠나서 가보르 마테의 인터뷰를 처음 접했을 때, 그의 관점은 내 경험과 묘하게 공명했다. 그로 인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기억들이 올라왔다.
단칸방에 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엄마가 아빠와의 결혼 및 이혼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곤 했다. 아빠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엄마의 시집살이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기름집을 하던 아빠의 부주의로 일어난 기름 폭발 사고 현장에서 엄마가 어떻게 나를 구했는지, 엄마가 전신 화상으로 병원에 누워있을 때 아빠와 친할머니가 어떻게 했는지, 두 번째 결혼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게 흘러갈 때 엄마 심정이 어땠는지, 엄마가 나와 동생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무엇을 감수했는지. 내 부모의 결별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와의 단절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했던 아홉인가 열 살쯤의 기억.
이후로도 엄마는 청소년기 내내 언제든 내 방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와 내게 자신의 불행을 낱낱이 고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했다. 틀어진 관계들, 나아지지 않는 가계 사정, 당면한 제정적 문제들, 친척들의 흠결, 회사에서의 사소한 다툼이나 큰 문제들. 마치 내가 그걸 다 알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듯이. 딸이니까. ‘딸’이 아니면 어디에 이야기를 하겠냐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기도 겁나서 차라리 무심한 딸이 되기로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제대로 말도 꺼내기 전에 ’그 얘기는 수십 번도 더 들었다‘고 핀잔을 주곤, ’모진 딸‘이라는 자책감에 내내 찜찜했다. 난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엄마 앞에선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취하게 된 새로운 전략은, 그냥 딴생각을 해버리는 거였다. 옆에서 뭐라고 떠들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대놓고 티브이를 보면서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깨닫기를, 내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엄마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 엄마도 저러다 말겠지. 저 여인도 언젠가는 지치겠지. 조금 유하고 두리뭉실 해지면 이런 일상적인 불행에 꽂히는 일도 줄겠지.‘ 했다. 그렇게 몇 년이, 몇 년이 흘러도 엄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스물아홉에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도 그랬다.
불행을 영웅담처럼 말하는 사람
불행을 영웅담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은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말하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재산은 괴로움이에요. 그 사람 안에 다른 얘기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 나한테 남아있는 존재의 이유와 근원은, 나의 고통인 거예요. (...) 결국은 그 사람의 자존감은 '이렇게 엄청난 고통을 겪고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살아남았어'라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자신의 엄청난 허물과 고통을 얘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거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거예요.”
엄마의 불행은 모성에 대한 영웅담이었고, 또 엄마가 살아온 서글픈 서사의 마지막 존재가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는 구전가요처럼 흘러내려와 내 입을 통해, 내 글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꼭 ‘누구 씨’처럼 내 약점이 될지 모를 사실들을 미주알고주알 까발리는 사람이 되었다. 모전여전이 이렇게나 무섭다. 그러고 보니 늘 내가 한술 더 뜬다 싶다. 엄마는 기껏해야 딸이나 모친 같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냈다지만, 나는 내 친구며 지인들로도 모자라 오만 사람이 다 보는 이 플랫폼에 내 유쾌하지도 않은 서사를 지껄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나에게 글쓰기는, 언제나 얼굴을 맞대지 않고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수단이었다. 글쓰기는 내 불행을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이 내게 ’잘 봤어요‘라고 말하게, 내 삶에 ’잘‘ 자를 붙이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렇게 쓴다. 내면아이와 내면어른, ADHD와 불행 서사시에 대하여. 잉크가 조금 번질지라도 꾹꾹 눌러쓴다. 내 잉크 자국이, 다음장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어, 홀로 지새운 밤의 위로가 되길 바란다. 누군가가 그 위에 마음을 덧칠하기를 기대하면서.
마법의 주문처럼 쌓이면
심리학 개념들을 하나씩 채득 해가는 여정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자, 스스로를 용서하는 시간이었다. 내면아이, 내면부모, ADHD 같은 심리학적 개념들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나의 행동 패턴과 감정적 반응을 해석하는 중요한 렌즈가 되었다. 과거의 상처와 패턴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의 결핍과 상처마저 비난하는 방식을 멈췄다. 그리고 아픔까지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조금씩 치유됨을 느끼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심리학에 빠져보면 좋겠다. 일단 우리 ‘인간’의 마음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많은 이들이 있었노라고 소개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당신 마음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되어줄 이론이나 개념, 단어 한 조각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남은 언제나 치유의 힌트다.
이제 나는 내 안의 내면아이가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건강한 내면부모로서 그 아이를 보듬고 돌보려 노력한다.
“웃고 있는 네 모습을 보니 기뻐.”
“조금 오래 걸려도, 잘하려고 하는 모습이 멋져.”
“난 너 믿어. 결국 해낼 거란 걸 알아.”
“괜찮아. 별일 아니야. 내가 널 지켜줄게.”
“네 마음은 알겠어. 그렇지만 뭐가 너를 위한 최선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런 말들이 마법의 주문처럼 쌓이면 내 내면의 아이도 조금씩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 것이라 믿는다. 그러면 그 앞에 아름다움과 따뜻함으로 가득 찬 세상이 펼쳐져 있도록… 내 삶을 아주 조금씩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제 당신의 목소리를 빈 화면에 흘려보내라. 당신의 이야기 또한 누군가의 침묵을 깨는 작은 마법이 될 테니. 당신이라고 당신의 삶을 영웅처럼 웅장하게 떠들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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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치유 글쓰기를 위한 성찰 질문]
1. 당신은 어떤 심리학 개념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통찰을 주었나요? 어떤 면에서 그랬나요?
2. 당신의 ‘내면아이’는 어떤 목소리로 말하나요? 그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3. 당신의 ‘내면부모’는 주로 수호자인가요, 심판자인가요?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4. 당신의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나 행동 양식이 있나요?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5. 당신은 자신의 약점이나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현하나요? 그 방식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글쓰기 연습 주제]
- 연습 1 : 나의 ‘내면아이’ 목소리 듣기
조용한 시간을 마련하고, “나는 지금…”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10개 적어보세요. 가능한 한 빠르게, 생각을 검열하지 말고 써 내려가세요. 그중 어떤 문장이 당신의 ‘내면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리나요? 그 목소리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나요?
- 연습 2 : ‘내면부모’의 목소리 바꾸기
당신의 내면부모가 자주 하는 비판적인 말 5가지를 적어보세요. 그런 다음, 각각의 말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말로 바꿔보세요.
- 연습 3 : 가족 패턴 탐색하기
당신의 가족 안에서 반복되어 온 감정 표현 방식, 대화 패턴, 혹은 관계 형성 방식을 탐색해 보세요. 당신은 어떤 패턴을 물려받았고, 어떤 패턴을 의식적으로 거부했나요? 이런 패턴이 당신의 현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 연습 4 : 나의 이야기 재구성하기
당신이 자주 반복해서 말하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나요? 그 이야기를 적어보고,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분석해 보세요. 그런 다음,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써보세요. 예를 들어,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혹은 실패가 아닌 성장의 기회로 보는 관점에서요.
*위 질문&주제를 활용해 글을 써서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피드백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