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
나를 키워낸 것 : 만화와 만화책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는 24시간 내내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가 틀어져 있었다.
엄마 입장에서 투니버스는 두 아이의 보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후 한 시면 집에 오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투니버스에 의지해 9시에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렸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존재.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눈앞에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만화가 좋고 또 좋았다. 만화가 있었기에, 나는 그 좁고 볼품없는 단칸방을 은밀히 사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는 만화책에 폭 빠져 살기 시작했다. 만화와 만화책은 나에겐 완전히 다른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쏙 빼놓는 만화와는 다르게, 만화책은 자꾸 나에게 생각을 집어넣어 주었다. 여기 이 소녀는 왜 울고 있는지, 저기 저 소년은 왜 소녀를 그토록 꽉 안아주는지. 그런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만화책을 통해 배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잘해줘야 하는지, 슬퍼하는 친구는 어떻게 위로해줘야 하는지, 힘들 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왜 비밀로 할 필요가 없는지, 모두 만화책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어떻게 꿈을 꿀 수 있는지. 그걸 제일 열심히 배웠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이라는 허상
어릴 적 내게 꿈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초, 중학교 그 시기는 아이들에게 ‘포기’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고등학생쯤 됐을 때 자신이 갈 수 없는 학교를 가겠다고 우기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배웠으면 분수를 알아야지’ 유행처럼 번졌던 그 말이 그냥 나온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이런저런 허무 맹랑한 꿈들을 꾸었다. 해적왕이 되어 전 세계 바다를 여행하는 꿈, 요술공주가 되어 지구를 구하는 꿈, 연금술사가 되어 세상에 없던 존재를 창조하는 꿈, 학생 탐정이 되어 어른들도 해결하지 못한 범죄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꿈… 조금 더 커서는 소녀들의 이야기에 빠져서 밴드 보컬이 되는 꿈,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꿈, 사진작가가 되는 꿈,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 운명적인 사랑을 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어른들에게 순종적이었지만 속은 시커멓고 거대한 꿈을 꾸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현란한) 꿈을 하도 꾸다 보니 어느 순간 발이 땅에서 붕 떠있는 듯한 기분으로 살았다. 현실에서 내게 일어난 아픔들은 곧 지나가고 나에게도 내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틈에서 행복하게 일하며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삶을 살아갈 이유를 알 수가 없었을 정도로. 결국 현실 감각을 조금씩 잃어갔던 것 같다.
그러나 꿈 많던 소녀도 언젠간 양탄자에서 내려와야 하는 법. 나는 그것을 추락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갈지’ 자로 휘휘 떨어지는 깃털처럼 서서히, 천천히 내려왔다. 그렇다고 해도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만큼 나는 서서히 천천히, 그리고 철저히 내게 실망했다. 내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었다. 그 이유는… 내게는 물질적, 심리적 자원이 너무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어떤 직업을 갖기에 나는 끈기나 근성이라는 자원이 없었다. 어떤 어려움을 극복할 마음의 근력이나 회복력이 너무 떨어졌다. 무언가를 창작할 집중력도 참신함도 모두 다 빼앗겼다.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개선할 용기도 에너지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자원, ‘사랑’이 없었다.
실패는 폐허처럼
어느 순간 내 주변에는 실패의 흔적들만 남았다. 일단 전공으로 선택했던 희곡도 손에서 놓은 지 오래였고, 희곡은커녕 졸작 이후로 개인 창작품 하나 제대로 써둔 게 없었다. 나와 잘 맞을 거라 생각했던 직업들이 하나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러 번의 이직과 빈곤한 재정 상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주머니에 들어온 것들은 어영부영 들어와 얼렁뚱땅 나갔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했던 관계들은 가장 요란하게 떠나갔고, 별것 아니라고 느꼈던 관계들에도 아쉬운 한숨을 쉬고 있는 날 발견했다. 가족들과는 표면적으로는 좋은 사이였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고민은 단 하나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마치 만화 속 외계인처럼,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만 지껄였기 때문이다. 마음이나, 감정, 우울, 외로움… 꿈이나 로망, 희망 같은 것들. 대문자 T 집안에 잘못 난 ‘초’ 대문자 F였다.
물질적인 베이스는 일일이 나열할 것 없이 거의 없었다. 원래 없었다. 그저 하루 먹고 하루 살아가는 게 다였다. 마이너스가 아니면 다행이었다. 사실 이건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최종적으로 극복해야 할 보스는 바로 이 ’돈‘이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힘들다는 사실 자체도 부정하고 살았다. 왜냐하면 나는 TV에 나오는 다 찢어진 벽지에 곰팡이 가득한 집에 사는, 연탄으로 난방을 떼는, 라면 하나로 일주일을 버티는 ‘극적인’ 가난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구 뒤에 곰팡이가 조금 있고, 기름 값 때문에 한겨울에도 전기장판으로 버티고, 우리 식구끼리 외식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우리를 가엽게 여겨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다. 국가의 복지 혜택도 받았고, 친척들이며 친구 부모님들이며, 학교 선생님들도 많이 챙겨주셨다.
무엇보다 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희생적인 우리 엄마. 엄마는 빼빼로데이 한 번 허투루 보낸 적이 없는 ‘일종의’ 로맨티스트였다. 생일에 케이크 하나, 졸업식에 꽃다발 하나. 아무리 어려워도 그런 삶의 작은 이벤트를 빼먹은 적 없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착하고 부지런하고 근면성실하고 자식들 밖에 모르는 따뜻한 엄마를 모른 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골칫덩이가 된 ‘마음’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은, 내 마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골칫덩이가 되어갔다. 네가 그렇게 우는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네가 엄마를 그렇게 걱정시키면 안 돼. 네가 맏이니까, 엄마를 더 챙겨야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 외할머니는 내게 (이혼한) 아빠를 만나서 용돈을 받아다 쓰라고 말했다. “엄마가 너무 힘드니 네가 그 정도는 해야 엄마가 살 수 있어.” 엄마는 그 문제로 할머니와 자주 싸웠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과에서 1등을 하면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2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는데, 문제는 3학년 1학기에 터졌다. 답지를 밀려 써서 장학금을 못 받을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 답안지 확인을 받으러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나도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덜컥 예대에 합격했을 때도 왜 대학을 가냐는 소리를 들었다. “실업계 나왔으면 이제 그만 엄마 도와야지. 엄마 고생하는 거 알면서.” 하지만 엄마는 기어코 나를 대학에 보냈고, 기어코 나는 대학에 갔다.
대학에 다닐 때는 왕복 5시간 거리를 통학했다. 엄마는 기숙사도, 자취방도, 중고차도, 휴학도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학교 선배가 ’너는 다 큰 애가 왜 휴학을 엄마 허락받고 해?‘라고 물었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결국 스트레이트로 졸업했고, 동기들은 나를 전설이라고 불렀다)
스물여섯, 덜컥 만들었던 신용카드. 카드값을 감당히지 못해 독촉 전화를 받으며 연체 이력이 쌓여갈 때, 혼자 방 안에서 울고 있는 날 발견한 엄마는 대신 그 돈을 갚아주었다. 나에게 그 돈을 꼭 갚으라고 했지만 여전히 갚지 못하고 있다.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와 이모는 ‘엄마 무릎이 너무 많이 아프니 그만 쉬게 해 주라’고 종용했다. 난 그때까지도 내 앞가림 조차 한다고 말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과 물질의 빚’이 쌍벽을 이루며 쌓여갈 때, 내 영혼의 잔고는 계속 떨어져만 갔다. 나는 어딘가 모자라고 이기적이며, 짐밖에 안 되는 존재였다.
내면의 벌레 끌어안기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혐오스러운 벌레 - ‘그레고르 잠자’처럼 취급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음식을 끊고, 유폐해 버렸는지도. 처음에는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가 다시 ‘성실한 인간’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던 가족들은 끝내 그가 골방에서 혼자 죽어가도록 내버려 둔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꿈틀거리는 방문 너머 벌레는 끔찍할 만큼 징그러웠을 것이다. 나도 필사적으로 그 마음들을 외면했다. 누르고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남들처럼. 남들처럼.
하지만 내 다섯 번째 상담 선생님 말씀처럼, 마음의 핵심적인 결핍(즉 트라우마)은 언제나 지하에서 문을 두드린다고 했다. 아무리 조용히 잘 버티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으며, 계속 무시하면 그 지하실 문을 기어이 뜯어내 박차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글쓰기는 그 문을 열어야만 해낼 수 있다.
내 마음의 다른 색깔 그림자들
만화 영화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으로 들여다보던 순수하고 꿈 많던 소녀. 그 소녀라고 벌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소녀가 벌레가 되었을 때,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있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내 안에는 소녀도 벌레도 모두 있다.
난 글을 쓸 때만큼을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지금 이 글 안에도 두 존재 모두가 뛰어다니는 걸 당신은 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벌레는 잡아버리거나 가두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소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키워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탈출’이 아니다.
그 밖에도 내 안에는 다양한 내가 있다. 나를 치장하고 꾸며내길 좋아하는 존재, 나의 근본적인 치부까지 다 드러내고 싶어 하는 존재, 이 넓은 세상을 다 돌아다니며 세계를 다 내 걸로 만들고 싶은 존재, 방구석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진리를 탐구하고 싶은 존재, 돈을 벌고 싶은 존재, 돈을 쓰고 싶은 존재…
그리고 글을 쓸 때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지하감옥의 빗장이 그럴 때 열리고, 결국 난장판이 되곤 하지만, 결국 나만의 질서를 찾아낸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나는 당신의 방문 너머에 존재하는 벌레를 보고 싶다. 나는 당신의 지하감옥에 갇힌 여러 존재를 보고 싶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하나의 합일을 향해 나아가는 당신을 보고 싶다.
글쓰기는 종교가 아니다. 외로울 때 기대는 존재도 아니다. 모든 걸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글쓰기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내게 글쓰기는 ‘무엇을 하기’ 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는 걸 멈추기‘에 가까운 행위다. 그렇잖은가. 글을 쓰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글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포기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그게 내게는 회복이었고, 치유였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
여기로 걸어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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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치유 글쓰기를 위한 성찰 질문]
1. 당신은 어릴 적 어떤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꿈을 키웠나요? 그때 배운 것들 중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2. 당신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순간이었나요?
3. 당신의 삶에서 극복해야 할 '최종 보스'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당신의 마음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4.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불편한 부분'을 감추고 억압합니다. 당신이 방 안에 가두어둔 내면의 모습은 어떤 형태인가요?
5. 당신의 내면에는 어떤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나요? 그들 각각에게 이름을 지어주세요.
[글쓰기 연습 주제]
연습 1 : 내 상실의 목록
당신이 포기했거나 잃어버린 꿈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세요. 그리고 각 항목마다 한 문장으로 그것을 잃었을 때의 감정을 적어보세요.
연습 2 : 부정했던 감정에 편지 쓰기
오늘 5분만 시간을 내어 당신이 오랫동안 부정해 온 감정에 편지를 써보세요.
"나는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 그리고 너는..."으로 시작해 보세요.
연습 3 : 내면의 대화
페이지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당신이, 다른 한쪽은 당신이 억압해 온 내면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눠보세요.
"나는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싶어"로 시작해 보세요.
연습 4 : 내면의 회의
당신 안의 다양한 자아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대화를 써보세요. 각자의 의견과 욕구를 표현하게 하고, 당신이 토론장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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