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통제를 잃다
내가 처음 심리상담을 받았던 건 ‘트로스트’라는 상담 앱을 통해서였다.
2020년, 나는 당시 서른이었다. 그 이전부터 심리상담에 관심이 많았었다. 전반적으로 멘털이 건강한 날이 더 드문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과 비용의 장벽 때문에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애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무렵, 사소한 문제로 대판 싸우고는 본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자살하겠다며 협박을 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종종 죽음에 대해 떠올리던 사람이지만, 이전과 좀 다른 기분을 느꼈다.
첫째로 당시 본가 근처에, 내가 어릴 적 살던 집 건물이 아직 남아 있는데, 그 집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끊임없이 재생된 것이었다.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몸을 던질 때의 공포와 바닥에 떨어졌을 때 느낄 고통에 대한 공포까지 몰려와 버스에서 주륵주륵 눈물을 흘렸다.
두 번째는 ‘이번에는 반드시 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이번엔 진짜 해버릴 거 같은데… 너무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애인에게 ‘내가 진짜로 할까 봐 두렵다. 제발 나를 살려달라’는 이상한 형식의 협박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는 본가로 가는 내내 계속 엄마 생각이 났다. 불쌍한 우리 엄마. 딸이 죽은 채로 발견되면 얼마나 슬프고 분통하고 아플까.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 너무…
물론 나는 이렇게 멀쩡이 글을 쓰고 있다. 그저 본가 근처를 맴돌다가 공중전화로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심지어 난리통에 폰도 꺼졌다) ‘나 데리러 와줘…’라고 말하는 허무한 엔딩을 맞았다. 내 죽고 싶다는 생각은 늘 고작 그런 정도긴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남아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걸 멈출 수 없을 때, 딱 미칠 것 같았다. 그게 내가 트로스트에 상담을 신청하게 된 계기였다. 무엇보다 내가 애인을 완전히 망쳐버릴까 봐 겁이 났기에.
그때 아버지의 빈자리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을 해봤다. 없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는 걸 조금은 인정하게 됐다. 아버지의 빈자리 때문에 마음에 뚫린 구멍에 대해 처음 인지를 한 것도 그때였다. 상담은 꽤나 명쾌했고, 나는 조금 더 후련해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한 동안 괜찮았다가, 또 가끔씩 (다섯 살 어린) 애인을 드잡이 하며 발작을 했다가를 몇 번인가 반복했다. 자살 예방 센터와 긴급 콜을 나누기도 하고, 퍽하면 본가로 돌아가겠다며 버스를 탔다. 나에게도 애인에게도 너무나 괴로운 시기였지만, 번번이 나를 잡아주는 애인을 보면서 어찌어찌 살아갔던 것 같다. ‘아직’ 그 사랑이 있다면 버틸 수 있다는 듯이.
세 번째 상담사를 찾아갔던 건 나의 전전 직장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몇 년 동안 그토록 바랐던 아이돌 엔터사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을 하게 된 참이었다. 한창 오춘 기가 왔던 이십 대 중반 무렵, 한 아이돌 그룹 덕분에 힘든 시기를 버텨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후 나는 조금은 허황된, 하지만 진심으로 간절한 꿈 하나를 품게 되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간의 도전 끝에 드디어 꿈 언저리에 도착한 참이었다. 막 입사 했을 때는 크리에이티브한 업무를 하게 될 거라는 기대에 한 껏 부풀어있었다.
실제로 나는 처음으로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 스토리도 짜보고, 앨범 아트를 기획해서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그 일을.
그러나 업계 분위기는 예상보다 더 과열되어 있었다. 한 때 나와 한 팀이었던 이들에게 회사는 궁극적인 자아실현 그 자체였고, 회사와 업계에서 인정받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동경해 온 업계였고, 나의 작업물에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주는 대표 덕분에 인정욕구가 팍팍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들은 후순위로 밀리고, 팀 내에서 고립감을 느꼈다. 그토록 바랐던 엔터사에서 일하게 됐지만, 기대와 달리 동료와 라이벌 사이의 복잡 미묘한 관계성, 그리고 정치 싸움에 치여 적응에 실패했다. 결국 꿈꾸던 일터에서 나는 더욱 망가져갔다.
회사를 나오기 전,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악처럼 우울증 약 복용과 상담을 동시에 시작했다. 어찌나 간절했던지. 하지만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퇴사하면서 약까지 먹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중단했다. 그러나 상담은 이럴 때야말로 꾸준히 받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해졌다, 괜찮아졌다 하는 사이에 점점 삶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 손가락이 넘어가서 더 이상 세기를 포기한 이직 횟수. 버는 것 이상을 쓰는 소비 습관은 차곡차곡 빚을 쌓아갔다.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빠진 숫자의 배로 불어난 체중과 꺼지지 않는 식욕은 건강과는 영 거리가 먼 몸을 완성해 갔다. 비뚤어진 완벽주의는 새벽 네 시까지 드라마를 몰아보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일을 시작하는 지독한 회피주의로 진화했다. ADHD는 의심만 한지 꽤 오래되었다. 무슨 일이든 집중하기 어렵고,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이번엔 멈추기가 어려웠다. 쏟고, 떨어트리고, 놓치고, 넘어지고, 부숴버리는 일상들. 현실 가능성 없는 계획들로 일을 벌리고, 나중에 수습하느라 애먹는 상황까지. 살아가는 게 좀 고달팠던 게 아니다. 내 삶은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 사고와 끝도 없는 패배 의식으로 얼룩져 - 더는 감정의 중립과 평온 따위는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특히나 소유욕은 마치 빠지지 않는 잉크 얼룩처럼 내 삶 안에 제멋대로 몸집을 불려 왔다. 몇 개월은 옷을 미친 듯이 사고 반품하고 사고 반품하고를 반복했고, 몇 개월은 하루 건너 하루 다이소를 털고, 어떤 날은 온라인에서 쓸데없는 물건을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사들였다. 집안 가득 언제 샀는지 모르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못해 쓰레기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무엇이든 다 삼켜버리는 가오나시처럼 끝없이 갈구하고 갈구하다가, 갈구함을 갈망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처절한 소유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슴에 난 수렁. 메울 수 없는 수렁. 이 끔찍한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인정했다. 내가 지금 늪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주 서서히, 천천히, 쇄골까지 닿아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늪이라는 걸 알아야만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상담 선생님 앞에 마주 앉았을 때 나는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상담실에 들어서기 전에는 억울하니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막상 급하지 않았다. 오래 걸릴 걸 알았다. 내 마음의 찌꺼기를 다 토해내기까지 말이다.
열심히 살았다. 그렇기에 더 슬펐다.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 오히려 이 지경이 된 것이었기에.
늪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채 ‘열심히’라는 발버둥만 쳐서 더 빨려들어간 것이었다. 사막을 빠져나가는 방법과 늪을 빠져나가는 방법이 다를텐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꺼이 티슈 한 장과 끌어안은 쿠션의 촉감에 의지해 말을 이어나갔다.
말이 터지는 순간과 글이 터지는 순간이 비슷했다. 첫 상담 이후 바로 집으로 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목구멍까지 진흙이 들어차고 나서야 첫 숨을 뱉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늪 속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발목까지, 누군가는 무릎까지, 또 누군가는 나처럼 이미 쇄골을 넘어 입술까지 차올랐을지도. 그 늪에서 발버둥 치다 지친 날, 상담실 문을 두드린 건 내가 나에게 던지는 최소한의 구명줄이었다. 앞뒤 따지지 않고 나를 살리려고 했던 행동이었다.
무너져 내린 성처럼 흩어진 마음을 모으다 보면, 우리는 모두 잉여 조각을 발견한다. 그 조각이 어디서 왔는지, 왜 그렇게 날카로운지 알아내는 여정은 그 조각을 빼내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퍼즐을 맞추는 동안 숨통이 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토해내는 글자들이,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우리가 내뱉는 한숨이 모두 치유의 시작일 수 있음을 배웠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내가 진정 깨달은 건 단 하나. 완벽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받아서 완벽해진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은 때로는 상담실 안에서, 때로는 글을 쓰는 순간에, 때로는 자기 자신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내가 받았던 사랑을 온통 그러모아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심해의 바닥을 찍고 떠오르는 물방울처럼. 당신이 지금 그 물방울이라면, 나는 물방울이 수면 위로 올라와 햇빛을 받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면 치유 글쓰기를 위한 성찰 질문]
1. 당신은 어떤 순간에 "이번에는 정말 한계다"라고 느꼈나요? 그 순간 어떤 생각과 감정이 찾아왔나요?
2. 당신에게 '구명줄'이 되어준 사람이나 경험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그것은 당신을 구했나요?
3. 당신의 삶에서 겉으로는 '성공'처럼 보였지만 내면은 괴로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 괴리감을 어떻게 다루었나요?
4.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공허함을 채우려 했나요? (쇼핑, 음식, 일 등) 그 행동 뒤에 숨은 진짜 갈망은 무엇이었을까요?
5. 당신의 삶에서 "모 아니면 도"식의 사고가 드러나는 순간들은 언제인가요? 그런 사고방식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