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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Jun 17. 2023

나라도 꼰대가 되기로 했습니다.

누구나 다 나이 든다.

당연히 나이 든다.

자연스레 나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나이 듦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10대 때는 자유가 구속된 체, 학교에 시험에 갇혀있는 그때가 제일 힘든 줄 알았었고, 20대 때는 취업 준비하는 나 자신이 온 지구의 분노를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 30대는 일터에서 인정받고 싶어 이리저리 애쓰느라 세상 힘들었다. 그렇게 지나고 만나는 마흔은 좀 편안할 줄 알았다. 그렇게들 말하지 않았던가. 4, 50대는 안정적인 삶을 사는 시기라고.


살아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기는 맞다. 나라는 사람도 더 깊이 알게 되고 사랑하는 하는 짝과 애들을 낳아 이것이 내 가족이다라는 울타리를 완성했다. 회사에서도 과장정도 되니 나의 크고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 너그러워지고 사람 대하는 것도 전보다 더 편안해진다. 안정적인 울타리 위에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어 쌓인다. 4, 50대의 안정이란 다름 아닌 똑같은 일상을 만나는 일이다. 그러나 안정적이기에 이 기반이 흔들리면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이 통으로 흔들린다. 2, 30대도 경험 못한 극도의 불안정을 최상의 안정기에 맞게 된다. 그러니 4, 50대는 인생의 안정기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걸 알고 나니 약간의 배신감 마저 든다.


회사에서 민원인들이 자신들을 항변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는 그런 말 못 들었어요." , "그런 안내 안 해줬잖아요."이다. 시험지를 받아 든 아이들도 항변한다. "이거 수업시간에 안 배웠잖아요!."


나이 앞에서 나도 이런 항변 한번 해보게 된다. "나이 드는 게 이다지도 힘들다고 나한테 말 안 해줬잖아요. 학교에서도 안 가르쳐줬잖아요!!"




학교에서 배운 것은 인생에서 공부가 제일로 중요한 것이고 대학을 잘 못 가는 것이 인생 앞에 가장 큰 시련이라 배웠다. 그런데 살아보니 인생에 가장 찐 힘듦은 학교 책에서 전혀 배워보지 못했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육아라는 것이 있었고 거기에 더해 건강을 잃는 것이 대학을 잘 못 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큰 시련이었다.


중학교 때 인생 그래프라는 것을 그렸는데  자신이 살아온 유년시절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신의 모습까지 상상해서 그리는 것이었다. 그 그래프의  X축 위로 중요한 나이에 해당하는 점을 찍었었는데 그때의 내가  그래프 축 위로 찍은 마지막 나이는 40살이었다. 40살 이후의 삶은 삶이 아니라 생각했다. 오로지 학교에서 얘기하는 것은 10대, 20대의 인생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가 그렸던 인생 그래프 축의 훨씬 밖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이 이렇게 절절하고 열열하다. 10대의 내가 쫓던 멋들어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렇게 소박하고 조용한 인생에도 빛나는 기쁨과 뼈아픈 아쉬움과  찬란하고 서글픈 이야기가 있다.


마흔셋.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공교육에 대한 평가를 내릴만한 짬밥은 되려나. 내 경험에 비춰본다면 학교에서 늘 '니들 인생이야', '니들이 인생의 주인이야.'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이 학교는 내가 내 인생에 주인공이 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내 끼를 펼쳐라, 개성을 존중해라는 그럴듯한 말들은 하지만 결국 학교에서는 한 가지 기준만을 남겨둔다.

시험 성적.


기준대로 세워 앞 줄에 서있는 애들이나 앞으로 인생에서 주인 될 사람이라는 대우를 받을 테다.  다 같이, 모두 다 주인이 되려면 모두 다 제각각의 기준으로 제 나름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시험성적이라는 거대 우월종이 모두 다 주인이 될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 결과 아이들로 하여금 단 한 가지 경로만을 충실히 따르도록 강요하게 된다. 세상은 이미 다양성을 수용하고 더 많은 다양성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우리의 학교는 여전히 단 한 가지 길만을 준비한다.


한 가지 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아이들도, 그 길 밖에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아이들도 여전히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한 갈증을 요즘 "자기 계발"이라는 것에 몰두하며 충족한다. 그러나 실상 요즘 자기 계발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은 결국은 돈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인간 성장의 최종 종착지인 것처럼 말이다.


한 가지 길만 알려주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여전히 단 한 가지 길만 좇고 있다. 물질이라는 것은 유한한데 서로들 자기 몫으로만 더 많이 가져오려 하면 누군가는 더 잃게 마련이다. 물질은 유동적이다. 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흐른다. 그러니 살다 보면 돈이 넉넉하게 나한테 머물 때도 있고 매정하게 나를 탈탈 떠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데 모두들 돈 버는 방법에만 몰두하고는 돈 없이 인생을 살아내는 방법은 알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시련들을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돈 없는 인생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인생도 있기 마련임을...


2, 30대의 종잣돈 만들기, 투자 위주의 자기 계발로 4,50대의 자기 계발은 물 건너간 듯하다. 20, 30대라는 그 찰나 같은 시간에 인생의 모든 것을 이루려 한다. 그때 못 이룬 인생이 실패라 생각하는 듯이. 꽃은 언제고 어디서고 필 수 있고, 인생 그래프 축 밖에서도 삶은 여전히 생생하게 피어난다.  




공부에 실패해도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 돈이 없어도 인생 멋지게 사는 법, 돈 없는 것보다 더 절망적인 인생의 시련을 살아내는 법.


유년시절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고 자기 계발 책, 유튜브, 강의에서도 배울 수 없다. 이건 도무지 사람 속에 섞여 듣고, 보고 느끼며 배우는 거 외엔 다른 요행이 없다. 인간의 진정한 지혜는 세대 간에서야 움튼다.  내가 혹은 그들이 지나온 시간, 살아갈 시간에 대한 성찰 없이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MZ로, 꼰대로 서로 갈라져 인생의 지혜의 맥이 끊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라도 꼰대로, 라떼로 남기로 했다. 누군가 나를 그저 그런 꼰대라고, 라떼라 폄훼하더라도 달리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10년 전, 20년 전 어른들의 말에 똑같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시하다고 재미없다고 했던 얘기들이 10년, 20년이 지나 이제는 내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 그것이 지혜인 것이다. 그러니 나도 주저 없이 꼰대가 될 것이다. 내가 들은 지혜와 내가 경험한 삶의 방식들을 내 아이들에게, 후배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내가 받은 그대로, 상처받지 않은 채 곱게. 예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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