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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Jun 02. 2023

나는 피뢰침입니다.

소름 돋는 대자연을 느낀 사진이 있다. 광활한 대지 위에 캄캄한 어둠만이 가라앉았다. 깊은 어둠의 한가운데를 쩍 하니 대차게 번개가 가른다. 늘을 가른 거대한 번개가 땅 위로 찔끔 뾰족이 솟은 침 끝으로 모아진다. 피뢰침이다. 마치 거대하고도 시커먼 자연을 작은 피뢰침 하나가 떠받들고 있는 꼴이다. 피뢰침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당돌한 것이었구나.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피뢰침 역할을 한다고 한다. 세상의 법, 제도에 대한 방대한 불만들을 이 피뢰침을 통해서 땅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월급은 그러한 대가로도 받는 것이다. 욕받이의 대가다.


자신에게 주어진 마땅한 일을 하면서도 욕을 먹는 경험은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다. 입사하고 한동안은 어느 직장을 다닌다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을 때가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기를 들면 여보세요가 아닌 야 이, **년들아. 하는 욕설로 시작할 때도 있다. 전 국민들이 나와 내 동료, 내 업무를 혐오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던 때였다.  


지각이 두려워 황급히 잡아탄 택시는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00 빌딩으로 가주세요."라고 하면 어느 호기심 많은 사분은 "거기 건물에 무슨 회사 다녀요?"라고 묻는다. 별 의미 없이 한 질문에 무턱대고 순진하게 회사이름을 말했다가는 심히 난감한 상황이 돼버린다. 수화기는 내려놓으면 그만이지만 달리는 택시에서는 내릴 수가 없다. 아침 출근길부터 택시 에 갇힌 채로 무기력하게 비난을 받아내야만 하는 기분은... 그래서 같은 건물의 다른 회사 "건강보험에 다녀요."라고 말한 적이  몇 번있다. 편안한 출근길을 위해 부린 요행이었는데, 그것마저 녹록지 않다. "근데 건강보험 피부양자는 우째되는 겁니까?"라고 물어오는 기사님의 호기심에 대충 얼버무리다, "아고. 건강보험 직원이라카면서 그것도 모릅니꺼'"라는 핀잔을 먹는다. 이러나저러나 욕을 피할 길이 없다. 넉지 않는 월급에 이런 부끄러움과 창피함의 대가도 함께 있는 것인가.   


느그들 이리 시원한 에어컨 앞에 하루종일 앉아 있으니 팔자 참 좋제?!!! 밖에 함 나가봐라. 얼매나 더븐지. 느그도 나가서 고생 함 해봐라!!!에라이. *발꺼!" 사무실에 앉아있는 전 직원들 대상으로 통 큰 욕세례가 날아온다.


"내 돈 내놔라!! 내 돈!! 내가 죽으면 돈 줄끼가!! 내 수술비로 쓰겠다는 데 와 못준다카노!!! 느그 내가 얼매나 아픈 지 함 볼래?!!"하며 허리띠를 풀고 허벅지 안쪽의 큰 상처를 여러 직원 앞에서 내보여주시던 아주머니.


자신이 낸 돈을 안 돌려준다면서 미리 준비해 둔 커터칼로 배 한구석을 긋던 캡모자 아저씨.


모두 나와 내 동료가 만난,  나라에서 정한 법에 의해서 거부당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앵무새처럼 법이니 규정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얘기를 반복한다. 현실의 법에는 솔로몬이 없다. 더 잘 살아보자고 만든 법에 온통 구멍과 불합리 투성이다. 이 법과 규정을 제정한 이들도 그 한계를 인정한다. 그러니 우리 같은 이들을 곁에 두는 것이다. 번개처럼 급박하고 절박하고 야박하기도 한 그들의 분노를 잘 모아 흘려내라고. 법에는 아무런 의식이 없다. 법이란 녀석이 그 사람만 골라 거부하는 것도 아닌데 거부당한 이는 세상 사람 중에서 오로지 자신만 골라 거절당한 기분이다. 억울하고 억울하다.




긴 시간 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했더니 다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먹는 것이 루틴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카페 점원이 아닌 키오스크가 떡 하니 서있다. 직원한테 "아이스 카페라테요"라는 한마디에 카드 한 장 건네주면 될 일을 이 오스크 덕에 여러 번 '다음'을 눌러야 한다.


사람들의 많은 일들을 로봇이, 키오스크가 대신한다. 그러나 이 피뢰침일만은 결코 로봇이나 키오스크가 대신할 수 없으리라 확신한다. 사람은 감정이 없는 대상에게 좀처럼 화를 내거나 하소연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자극에 감정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대상에게나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피뢰침에는 여전히 사람의 손과 숨이 필요한 것이다.


60살이 갓 넘어선 한 여인이 있다. 60이 넘었으니 자식도 다 크고 남편의 은퇴로 부부가 함께 보낼 시간도 여유도 많아졌다.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구상하던 것도 잠시, 남편이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그간 남편이 집안의 대소사를 담당해 왔기에 은행이나 동사무소 갈 일도 없었던 이 여인은 한순간에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남편의 수술과 재활에 쫓아다니며 남편을 돌보는 것도 버거운데 여기저기 낯선 관공서를 드나들며 업무처리를 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도 컸다. 한 동사무소 직원의  반말 섞인, 무시하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에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마도 그 울음은 동사무소 직원을 향한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이, 이 세상이 나에게 어떻게 이러냐는 한탄의 눈물일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사소한 사건 하나로 세상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읽게 되는 순간 말이다. 그녀는 그날 그렇게 한 피뢰침을 만나 세상의 상처와 분노를 흘려보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 남편의 기초연금을 신청하러 우리 회사로 왔다. 나를 만난 그녀는 연신 '감사합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희 아버지도 뇌졸중이셨는데 재활 열심히 하시면 무리 없이 일상생활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나의 그 한마디가 그녀에게는 그다지도 감동이었나 보다. 서류를 검토하며 흘리듯 던진 나의 그 한마디가 그녀에게는 세상이 그녀에게 해주는 얘기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그녀에게 잠깐의 시련을 줬지만 여전히 그녀를 소중히 대한다고 말이다. 오른쪽에 마비가 와서 거동도 못하고 글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그녀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서류들을 상세히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서류들을 가지고 그녀가 왔다. 전보다 더 지쳐 보이는 그녀를 앞에 두고 찬찬히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녀는 민원실 이곳저곳을 두리번 살피다가 일어서더니 구석자리에 무언가를 찾는다. 잠시 뒤 종이 한 장을 손에 쥔 채 그녀가 내 앞에 다시 앉는다.


"아가씨. 내가 어제 잠을 잘 못 잤어요. 아가씨가 너무 친절히 잘해줘서 내가 마음이 그래서 잠을 잘 못 잤어요. 우리 남편이 그러데요. 그런데 가면 친철카드같은 거 있을 거라고. 우리 남편이 마지막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거 잘 쓰고 오라고. 그래서 제가 지금 정신 제대로 똑바로 차리고 쓸려고요. 저기...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돼요?"


그렇게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눈 아래로 길게 까만 그늘이 내려앉아있다.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또박또박 손에 힘을 주어 한 자 한 자 쓰는 그녀의 마음이 나는 가슴이 아릴 정도로 고맙다가도 숙연해졌다. 그녀가 이마로 눈가로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글을 쓰는 내내 나는 몇 번의 눈물을 삼켰는지 모른다. 삼킨 눈물이 왈칵 나올까 봐 애써 담담히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나눴다.  


도 살면서 저렇게 가슴 사무치게 누군가에게 고마울 때가 많았다. '고마워요'라는 간편한 말 한마디로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은 다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감사의 표시를 저리도 정성 들여 숭고하게 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저렇게 자신의 상처를 아름답게 치유할 수도 나....




나는 이 사회가 만든 여러 규정, 지침대로 일하며 이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받아 흘려보내는 피뢰침이다. 사람들의 다양하고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담아 흘려보낸다. 그렇게 화와 분노를 버려두고 그들이 그다음 일상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나는 피뢰침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세상을 향한 감사와 기쁨 또한 받아낸다. 그러나 이 감사함과 기쁨만은 흘려보내지 않으리라. 두고두고 간직해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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