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농 면허의 무모한 수동 도전

자그레브 근교 렌터카 여행

by 이룸

크로아티아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 날 밤 두브로브닉에서 자그레브로 돌아와 공항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자투리 시간 동안 근교 여행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운전이었다. 전 날까지 세 명이 여행을 했는데 다행히 우리 중 운전병을 하며 수동 운전에 익숙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 덕에 우리는 별 탈 없이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우리와 일정이 달라 다음 여정을 위해 가야 했다. 숙소에서 좀 더 자고 나가겠다는 그 친구와 헤어질 때 내 얼굴에는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보다

'그럼 우린 어떡하라고'라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


누워 있는 친구가 참 간절했다


이제 남은 건 둘. 둘 중에 누가 운전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답은 어렵지 않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1종 보통 면허를 따기 위해 시험 접수비로만 100만 원은 족히 쓴 사람이다.


지난한 과정 끝에 마지막 도로 주행 합격의 순간에도 시험관은

"합격은 드리는데, 웬만하면 밖에 나가서는 오토 모셔요."

라며 자신의 결정이 사회와 내 인생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마찬가지로 장롱 면허였던 남은 친구는 우리 중 최선이라기보다는 차악이라는 이유로 운전을 해야 했다. 이전까지 타던 차는 두브로브닉에 반납했고 새로 차를 인수받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혹시 오토로 변경 가능할까요?"


차를 인수하기 전에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간절한 눈망울로 물어봤지만 없는 차를 대여해 줄 순 없었다.


곧 우리 앞에 우리가 탈 차가 왔다.

"오 벤츠인데..."

심란함을 덮지 못하는 공허한 말. 람부르기니가 앞에 있어도 수동이란 사실에 심란했을 우리다.


드디어 차에 타고 키를 꽂았다. 나는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정면을 응시하며 아무 노래나 흥얼거렸다. 그 사이 친구는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힘껏 밟고 시동을 켰다.

"트드드득..(3초 정적)...트득."

역도 용상 경기에서 역도 선수가 바벨을 가슴에 올리고 머릿속 주문을 외는 듯한 그 순간처럼 친구는 3초 정도를 발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여지없이 시동이 꺼지며 '트득'.


우리에게 차를 건넨 직원은 우리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떠나려 했지만 출발은 안하고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반복되자 무언가 잘못됐나 싶은 낌새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렌트를 포기하고 자그레브 시내 관광이나 할까 하는 내 거친 생각과 이 순간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친구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직원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몇 번을 했을까. 될 때까지 했다. 그냥 가지 말까 라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내려왔을 때

"부르으으으응"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리가 들렸다. 어렵사리 앞으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의 해냈다는 느낌은 만일 회사 면접에서

"인생에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자그레브 공항에서 수동 기어로 시동 거는 데 성공했을 때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감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클러치 조작 성공률 10% 정도인데 길에서 정차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매번 다시 나갈 때마다 10번의 역도 용상 경기가 펼쳐지면 어떻게 될까. 마음속으로 제발 막힘 없이 계속 달리길 간절히 바랐다. 50마일 이하 속도로 달리면 폭탄이 터지는 영화 <스피드>의 버스처럼 우리는 정지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위기는 바로 찾아왔다. 공항에서 큰 도로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멈춰버렸다. 쌩쌩 달리는 차들을 기다리고 드디어 우리가 도로로 진입할 차례.

"트득"

시동 꺼지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것도 대로 진입 직전에. 뒤에 차는 아까 렌터카 직원처럼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길고 강렬한 자동차 경적은 욕에 가까웠다. 그리고는 다가와서 진짜 욕도 했다. 다만 우리는 크로아티아어로 '안녕하세요' 밖에 모르고, 우리 앞에 놓인 커다린 문제 때문에 타격감이 없었을 뿐이다.


다행히 내 친구는 위기에 강했다. 이대로 길 위에 버려진 차처럼 남겨질까 봐 걱정했지만 금세 시동을 켜는 데 성공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위기의 순간 익혔던 그 감각을 기억하고 계속 문제없이 멈췄다 다시 출발했다.


절대 찾아올 거 같지 않던 안정기가 왔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 도착. 시동을 끈 순간. 우리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목 놓아 우는 시늉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니 덕이야 마재





"이 날의 교훈"

여행에서 도전은 항상 옳다. 운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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