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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룬 Jan 09. 2022

금딸기를 금하지 못합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먹은 딸기들

 나는 딸기 없이 못 사는 딸기광이다. 샤인 머스캣 열풍이 불 때도 눈길 주지 않고 딸기 철만을 기다렸고 딸기만을 바라보던 나다. 새해가 밝았으니 슬슬 딸기 사냥에 시동을 걸어야 할 때다. 그런데 신문에 충격적인 소식이 실렸다.

 한 팩에 1만 5000원… 제철 왔어도 ‘禁’ 딸기

 “이게 무슨 일이야!!!”




 선명한 빨강. 무른 듯 단단한 과육. 베어 물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새콤달콤한 과즙.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나는 딸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우리 집은 딸기를 살 때면 늘 두 개씩 산다. 하나는 가족, 다른 하나는 나 혼자 먹을 용으로. 다라이면 다라이, 스티로폼 팩이면 팩, 뭐가 됐든 꼭 내 몫을 따로 산다. 이것도 모자라 나는 디저트를 좋아하지도 않던 시절에도 딸기 디저트라는 이유로 호텔 딸기 뷔페에 가기도 했다.


 이렇듯 난 늘 딸기가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왔다. 일본에 가기 전까지는.


 해외로 떠나 자취를 시작하니 남이 사다 주는 딸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지 내 지갑 속 생활비로 사 먹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일본 딸기의 벽이 좀 높았다는 점. 금이라도 발랐나? 너무 비쌌다. 큐슈 지방에 살 적엔 한 팩에 500엔 정도였고 도쿄에 살 적엔 한 팩에 700엔 정도였다. 비록 나는 엔화가 역대급으로 비쌀 때 유학 갔지만, 현재 환율로 대강 계산해보자면 0 하나만 더 붙이면 된다. 한 팩에 10알 정도 들어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500엔이니 700엔이니 하는 가격은 알이 아주 잘아서 저렴한 딸기를 기준으로 한 가격이다. 알이 굵어지면─그래 봤자 한국에서 흔히 보는 크기─ 가격이 더 오른다. 도쿄 기준으로 한 팩에 1,000엔은 우습다. 비싼 만큼 맛이라도 더 좋으면 비싼 값 한다며 이해할 텐데, 애석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여러 번의 경험 끝에 내리게 된 결론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일본에 놀러 온 친구가 파르페를 먹고 싶다고 했다.

 “아무 카페 들어가도 파르페는 다 팔아. 유명한 파르페 가게 있다는데 거기 갈까? 과일 엄선해서 쓴대.”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와, 일본 과일 유명하잖아. 좋아. 가자!”

 친구는 기대된다며 기뻐했다.


 신주쿠에는 프리미엄 파르페를 파는 가게가 여러 곳 있다. 프리미엄 파르페는 대개 과일을 아낌없이 쓴 파르페였고, 우리가 간 가게도 그랬다. 가게에 들어가니 과일이 진열된 냉장고가 보였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딸기였다. 내가 딸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마치 선물용 배처럼 한 알씩 포장되어 판매 중인 딸기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한 알에 몇백 엔이라니… 저건 얼마나 맛있을까?’

 친구와 나는 같은 마음으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자리에 안내받은 뒤 딸기 파르페와 멜론 파르페를 하나씩 주문했다. 얼마 안 있어 직원이 파르페 두 개를 가져다주었다. 길고 좁은 파르페 잔에 영롱하게 담긴 딸기, 그리고 멜론. 과연 과일 전문점 파르페다웠다. 가격이 무려 2,000엔이나 하는 딸기 파르페는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다. 딸기가 무려 80%나 차지하고 있어서, 내 눈에는 파르페를 가장한 ‘유리잔에 담긴 딸기’ 같아 보였다.

“우와!”

친구는 일본에서 과일 파르페를 먹는다는 사실에, 나는 고급 과일 전문점의 딸기를 영접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찰칵찰칵. 포토 타임을 마친 뒤 사이좋게 딸기를 하나씩 먹었다. 친구가 입을 뗐다.

 “괜찮네.”

 거짓. 친구의 반응에는 느낌표가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 내 미각이 알려준다. 실패라고. 아마 친구는 가게를 알아보고 안내한 내 노고를 생각해서 솔직하게 평하지 않은 것 같다. 맛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품질 보증받은 고급품이자 유명하고 인기 있는 품종일 텐데, 당도도 알 크기도 썩……. 무려 2,000엔인데!


 파르페를 다 비운 뒤 카페를 나서려고 계산대 앞에 섰다. 아까 봤던 과일 진열대가 보인다. 갑옷이라도 두른 양 한 알씩 포장된 채 모셔져 있는 딸기가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우리가 먹었던 딸기보다도 비싼 몸이지만,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더는 배반당하기 싫어 방어기제라도 작동하듯.

 ‘흥, 나는 너의 몸값을 믿지 않아.’

 한국에서 파는, 스티로폼 속에 알몸을 맞대고 옹기종기 붙어있는 딸기가 훨씬 맛있을 테지.


 이날 느낀 교훈은 두 가지다.

 한 알에 100엔이든 200엔이든, 딸기는 한국에서 한 다라이 사다가 맘껏 먹는 딸기가 최고다.

 달고, 맛있고, 싸다.

 또 하나.

 유명한 가게든 계절 한정 메뉴든, 파르페는 그냥 평범한 카페에서 먹는 평범한 파르페가 최고다.

 아이스크림, 과자, 소스로 뒤덮인 가장 보통의 그것.


 아무튼 이날의 어색했던 상황 말고도 나는 일본에서 딸기에게 배신감을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국 딸기에 충성이랄지, 집착이랄지, 뭐 그런 것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광기 어린 사랑 혹은 일그러진 집착일 수도.)


 유학 시절 방학 때면 한 달가량은 한국에 와서 지냈는데, 딸기 철과 겹치는 봄방학 때는 딸기를 왕창 먹었다. 광적으로. 2kg짜리 딸기 팩을 이틀이면 먹어 치웠으니 매일 1kg은 먹은 셈이다. 1년 동안 먹을 딸기를 이 기간 동안 다 먹고 가겠다는 일념에서다. 이렇게 한 달을 질리도록 먹으면 아쉬움이 가셨고 다음 해 봄까지 딸기 없이 버틸 자신이 생겼다.


 한국에서 지내는 지금은, 겨울과 봄이면 맛있고 저렴한 딸기를 양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기사를 보니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다른 듯하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리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한국 딸기를 놓을 수 없다.




 혹시 유학이나 취업 등으로 일본 이주를 앞둔, 그리고 딸기를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감히 조언을 하나 하고 싶다. 흠흠.

“금(金) 딸기여도 딸기 잔뜩 먹고 가세요. 배 터지게 먹고 가세요. 1년 정도는 생각이 안 날 만큼, 물리도록이요.”

 일본은 단 것을 선호하는 만큼 과일 당도를 높이는 데 많은 기술을 투입하고, 유통 과정에서 선도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슈퍼에서 과일을 사고 실패한 적이 없다. 비싸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렇지만 딸기만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딸기는 한국에서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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