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와의 마지막 대화
"대체 어디를 걷고 있는가? 그건 다른 사람의 길이 아닌가? 걷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너는 너의 길을 걸어라. 그럼 멀리까지 갈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몰랐다.
철학자들의 명언을 빌려 글을 쓰는 것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그저 막연하게 "내 마음에 대꾸하는 한 문장"이 필요했다.
혼자 떠들던 내 마음에 누군가 답해주길 바랐다.
아인슈타인이 대꾸했다.
"비웃음을 견디는 용기를 가져라."
니체가 대꾸했다.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에픽테토스가 대꾸했다.
"손잡이를 바꿔 잡아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대꾸했다.
"끝까지 완결해야 진짜 무언가가 된다."
밀이 대꾸했다.
"믿음을 가진 한 명이 흥미만 있는 99명을 이긴다."
그리고 오늘, 헤세가 묻는다.
"대체 어디를 걷고 있는가? 그건 다른 사람의 길이 아닌가?"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지금 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처음엔 불안했다.
"이런 글 써서 뭐가 될까?" "구독자가 늘까?" "누가 읽어줄까?"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글을 재려 했다. 인기 있는 주제, 많이 읽히는 스타일, 검증된 방법.
하지만 1화부터 31화까지, 여러 명의 철학자와 대화하며 깨달았다.
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나의 길이었다.
인기나 구독자 수가 아니라, 내 마음의 소음을 잠재우는 한 문장을 찾는 과정. 철학자들과 대화하며 나를 이해하는 시간. 매주 한 편씩 완결하며 믿음을 키우는 연습.
헤세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길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내게는 맞지 않았다.
"인기 있는 글"의 길은 빨라 보였지만 힘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대꾸하는 한 문장"은 느려도 편했다. 내 발에 맞는 신발이었다.
돌아보면 모든 대화가 하나로 이어진다.
비웃음을 견디는 용기(아인슈타인) → 남들이 뭐라 해도 시작했다. 친구를 미워할 수 있는 지성(니체) → 복잡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손잡이를 바꿔 잡는 지혜(에픽테토스) →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했다. 끝까지 완결하는 힘(아리스토텔레스) → 시작한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믿음으로 완성하는 힘(밀) → 흥미가 아니라 믿음으로 썼다.
그리고 마지막, 나의 길을 걷는 용기(헤세) → 이 모든 것이 나의 길이었다.
일곱 편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 길을 찾았다. 아니, 이미 걷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 철학자들과 대화하는 것, 매주 한 편씩 완결하는 것. 이것이 나의 길이었다.
다른 사람의 길을 걸을 때:
"이게 정답일까?"
"인기 있는 방법을 따라야 하나?"
"검증된 길로 가야 안전해"
→ 빠르지만 힘들고, 안 맞는 옷 같다
나의 길을 걸을 때:
"이게 내 방식이야"
"느려도 내가 선택한 길이야"
"완벽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야"
→ 느리지만 편하고,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나는 31편의 글을 썼다.
많은 구독자를 모으지는 못했다. 바이럴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글들은 내 것이다. 철학자들과 나눈 진짜 대화들이다. 내 마음에 대꾸해 준 한 문장들이다.
헤세의 말처럼, 이것이 나의 길이다.
"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헤세의 대꾸: "걷기 힘들면 그건 다른 사람의 길이야. 너의 길은 편해. 네 발에 맞으니까."
1화를 시작할 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내 길을 찾고 있었다. 지금은 내 길을 걷고 있다. 이 에세이 시리즈가 그 길이었다.
이제 이 연재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길은 계속된다. 강의도, 프리랜서도, 육아도, 새로운 글쓰기도. 모두 나의 길이다.
불확실하고 느려도, 이건 내 발에 맞는 신발이다.
당신도 찾으세요.
당신의 길을. 빠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검증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 발에 맞으면, 그게 당신의 길입니다.
헤세가 말했듯, 너의 길을 걸으면 멀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길의 가치는 얼마나 빠른가 가 아니라 누구의 길인 가다. 나는 이 글을 쓰며 내 길을 찾았다. 이제 당신이 당신의 길을 찾을 차례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길을 걷고 있나요? 당신만의 길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댓글로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