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아직 공중에 떠 있다
이제 던전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마지막 보물 상자를 열기 전, 잠시 손안에 쥐고 있던 주사위를 내려놓습니다.
처음 이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제 앞에는 해독 불가능한 기호들로 가득 찬 낡은 양피지 같은 삶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 여정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숫자 뒤에 숨겨진 세계의 상냥한 질서를 하나씩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흔들리게 했던 마음은 사실 망가진 죄책감이 빚어낸 마음의 덫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확률 분포에 의한 자연스러운 흔들림이라는 사실을 배웠고, 감정의 폭이 너무 커 괴로울 때는 '분산'의 너비를 조절하는 법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것 같을 때 그것이 '한계'나 효율 저하가 아니라 다음 성장을 위한 스탯 재 분배 신호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요.
누군가와 맺는 관계의 무게가 버거울 때는 어그로 수치를 조절하며 거리를 두었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세운 벽이 너무 단단해질 때는 '저항 곡선'을 다듬어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경계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산은 스택으로, 함께하는 동료와의 호흡은 '시너지'라는 이름의 곱연산으로 재 해석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괴롭게 하는 냉정한 세계의 공식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제멋대로 날뛰는 삶을 견디게 해 준 다정한 설명서인 것 같습니다.
전사가 검을 들었습니다.
"주사위 눈금 1에 좌절하지 마! 상태이상에 걸려 며칠 누워있다고 부족하다 생각하지도 말고!"
마법사가 계산했습니다.
"너의 삶의 로그를 봐! 너의 모든 행동은 누적되어 있어. 그 기록은 실패가 아닌 성공을 위한 보정으로 작용될 거야"
치유사가 미소 지었습니다.
"멈춰 서야 할 때는 그건 퇴보가 아닌 다음 기술을 쓰기 위한 쿨타임으로 받아들여! 너의 길엔 다양한 기회가 있으니까!"
우리 삶은 게임과 참 닮아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재미는 참 닮아 있죠. 그래서 게임의 세계를 구성하는 공식은 세상을 이루는 이치와 비슷하게 작동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인생도 게임과 같은 철학이 적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선택이 최적(Optimize) 일 필요는 없다. 즐거운 빌드가 때론 가장 강하다.
실패는 성공의 확률을 낮추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 굴림의 보정값을 높일 뿐이다.
멈춤은 리셋이 아니라 쿨타임이다. 다시 움직일 에너지가 차오르는 필연적인 시간이다.
우리는 세계에 던져진 주사위가 아니라, 그 주사위를 굴리는 손이자 룰을 고치는 설계자다.
이제 횃불을 끄고 기록실의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기록실이 닫혔다고 끝이 닫힌 결말을 맞이하는 것 아닙니다.
이제부터 다시 선택하고 써 내려갈 새로운 기록이 시작될 테니까요.
걸어온 길만큼 단단해진 스탯과 인벤토리에 가득 찬 전리품들을 토대로 우리는 충분히 많은 성장을 했고,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이 길은 멈추지만, 모험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다음의 선택지가 무엇이든 그것은 틀린 답이 아니라 당신 다운 플레이의 한 장이 될 것이니까요.
자! 다음 턴의 주사위를 던질 준비가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