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Bug)가 아니라 기능(Feature)입니다

by 루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캐릭터가 벽에 부딪히며 튕겨 나가지 않고, 오히려 벽을 타고 올라가 버리네요.


버그인가? 벽 타기 스킬??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오히려 좋은 것 같습니다.

"와, 자유도 미쳤네!!"

여기저기 벽을 타며 열광하는 캐릭터들 보니 나쁘지않네요.

독창적인 이동 기술인가 하며 즐기게 되니까요!


현실이란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문득 제 자신이 '버그 투성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다들 정해진 평지를 걷는데 저 혼자 벽을 타거나, 울퉁불퉁한 길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갑니다.

남들은 레벨업을 위해 직진하는데 저는 엉뚱한 풀숲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방황하죠.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 빌드(Standard Build)에서 자꾸만 빗겨나가는 제 모습이 마치 코드가 꼬인 캐릭터 같습니다.

집중력 버그: 남들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데, 저는 5분마다 딴생각이 들어 맵 구석구석을 기웃거립니다.

감도 조절 실패: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대미지를 100배로 입는 ‘유리 멘탈’ 오류가 발생합니다.

속도 지연: 남들이 전력 질주할 때, 혼자 로딩이 걸린 듯 멍하니 멈춰 서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 버그를 수정(fix)하려고 애썼습니다.

자기 계발서라는 이름의 '패치 파일'을 내려받아 설치해 보고, 남들처럼 빠릿빠릿해지려고 자신을 채찍질했죠.

“다음 업데이트에서는 제발 ‘정상인’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요.


그런데 말이죠.

수많은 패치를 시도해도 이 버그들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억지로 고치려 할수록 제 캐릭터는 삐걱거리며 감정을 잃어갔죠.

점점 삶의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때 문득 예전 버그를 뻔뻔하게 아니라며 농담하던 사람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거 버그 아닌데요? 기능인데요?”


관점을 바꾸자 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산만함은 '호기심'이란 기능이었다고, 한 가지 집중하지 못하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스템의 예외 요소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전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고요.

예민함은 '공감 능력'이라는 고성능 센서고, 그래서 남들보다 대미지를 많이 입지만 타인의 아픔도 그만큼 깊게 감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고장 난 버그 캐릭터가 아닌 남들과 다른 스탯을 찍고, 다른 방식으로 맵을 탐험 하도록 설계된 변형된 캐릭터였다는 것을요.


게임에서 '전사' 캐릭터를 골라놓고,

왜 마법을 못 쓰냐고 화를 내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전사는 전사대로, 마법사는 마법사대로 플레이 방식이 다를 뿐, 어느 쪽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사회적 표준'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려다 좌절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단일 빌드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방식으로만 움직인다면 이 거대한 오픈월드는 얼마나 지루할까요?


누군가는 벽을 타고,

누군가는 뒤로 걷고,

누군가는 멈춰 서 있어야 이야기가 풍성해집니다.


그러니 당신이 가진 엉뚱함, 예민함, 혹은 느긋함은 시스템 오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라는 캐릭터가 이 세계를 독창적으로 여행하기 위해 초기 설정된 값이고, 당신만의 플레이 방식인 거죠.


그러니 당신 안의 버그를 미워하지 마세요.

고치려 애쓰는 대신, 사용법을 익히면 됩니다.

"아 내 캐릭터는 이 구간에서 벽을 타는 기능이 있구나.
그럼 남들보다 높은 것의 경치를 볼 수 있겠네"


오늘도 저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샜다가 한참을 헤맸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또 길을 잃었어! 이놈의 길 찾기 버그!!"

이라며 투덜거렸테죠.


하지만 오늘은 툭툭 털고 일어나 생각했습니다.

"음... 내 캐릭터에는 '히든 맵 탐지 기능'이 있는 게 분명해."


덕분에 지도에도 없는 근사한 벤치를 발견했으니까요.


혹시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롭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버그가 아닌 사용법을 찾아내지 못한 '아주 강력한 유니크 기능'일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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