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과 삶의 가파른 계단,

그리고 단테의 불멸의 사랑

by 루니
"너는 다른 사람의 빵이 얼마나 짠지, 다른 집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은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서사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가슴 저미는 문장입니다.

단순히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상실과 고난, 그리고 이를 초월한 불멸의 사랑과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신곡>은 단테가 43세에 쓰기 시작해 죽기 1년 전 완성한, 그의 삶 전체를 응축한 역작이죠.


단테가 이 위대한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다름 아닌 첫사랑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돈 많은 상인에게 시집을 가야 했고,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수전노'에게 빼앗기고, 그마저도 일찍 떠나보내야 했던 단테의 비통함은 얼마나 깊었을까요? 그 아픔과 슬픔, 그리고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떠돌아야 했던 망명객의 고난이 올올이 엮여 <신곡>이라는 거대한 서사시로 피어났습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 그곳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울어진 벽돌탑'이 있습니다.

NISI20231024_0001393598_web.jpg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울어진 벽돌탑'


직접 가 본적 없지만, 그곳 어딘가에 단테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9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볼로냐 대학에서 지식과 영감을 얻었던 단테는 기울어진 탑 뒤에 어떤 글을 남겼을까요? 700년 전 단테의 흔적을 상상하며 시간 여행을 떠나보니, 피렌체의 두오모 광장 옆 단테의 오래된 생가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가 밤마다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시를 썼을 모습을 떠올리니 그의 슬픔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인간의 교만과 방종, 특히 교회의 세속화와 황금만능주의를 누구보다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돈 때문에 잃어야 했던 그의 경험은, 물질적 가치가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짓밟는 현실에 대한 깊은 비판 의식을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대성당을 두고 골목의 작은 교회에 다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겁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삶에는 '아홉'이라는 숫자가 신비롭게 얽혀 있습니다. 단테가 아홉 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고, 9년 뒤 우연히 다시 만나 그녀의 인사를 받고 영원한 사랑으로 품었죠.

<신곡> 또한 99개의 칸토와 서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품 속에서 베아트리체는 아홉 번째 달 아홉 번째 날에 죽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가장 크고 완벽한 숫자인 9를 통해 사랑의 아픔을 승화시킨 단테의 시도는, 그에게 9가 '경이로운 삼위일체'의 이상적인 가치를 의미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이란 이토록 한 사람의 생애를 온전히 사로잡고 삶의 의미까지 바꾸는 것일까요? 육신의 죽음 후에도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의 생명력, 7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사랑의 숫자 9로 불멸의 역작을 완성한 단테에게서 우리는 열정(시)과 이성(철학)이 얼마나 아름답게 직조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피렌체 시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의 물결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 마침내 위대한 작품으로 솟아오른 부활의 힘. "다른 사람의 빵이 얼마나 짠지, 다른 집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험하게 될 것이다"라는 그의 가르침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겸허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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