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년기
평범하다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예사롭다'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부모님이 제 동생에게 간절히 바라던 삶의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동생이 어린 시절 영재 판정을 받았을 때, 부모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우리 아이, 평범하게 키울 거예요"였습니다. 특별함이 가져올 굴곡진 삶을 미리 염려했던 걸까요?
하지만 동생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같은 공부를 해도 몇 수 앞섰고, 초등학교 저학년에 이미 중학생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으며, 시로 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동생은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 모든 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최초의 386 컴퓨터가 나왔을 때, 동생의 "게임을 하고 싶다"는 한마디에 부모님은 망설임 없이 고가의 컴퓨터를 들여놓았습니다.
동생 방에는 전용 게임기는 물론, 게임을 위한 TV까지 마련되었죠. 심지어 그 컴퓨터와 게임기 내부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분해하는 것조차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범한 동생에게 부모님이 바란 것은 다름 아닌 '평범'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어땠을까요.
저는 '평범'했습니다. 공부도 노력한 만큼만 결과로 이어졌기에, 동생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적 비교와 친척들의 타박은 일상이었고, 그 시선을 피해 새벽에 일어나 몰래 공부하곤 했습니다.
또, 저는 가지고 싶은 건 스스로 얻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게임기가 너무 가지고 싶어 전단지를 돌리고 용돈을 모아 겨우 작은 미니 게임기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원한다는 이유로, 그마저도 '배려'라는 이름으로 쉽게 빼앗겼습니다.
'누나'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그때부터 무언가를 소유하면 언젠가 없어진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저와 동생이 이토록 극과 극의 유년기를 보낸 데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가치관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외가는 아들이 귀한 집안이었습니다.
외숙모는 아들을 낳기 위해 딸만 셋을 낳고 마지막에야 아들을 얻었을 정도였으니, 그 시절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구호가 무색할 지경이었죠.
외숙모가 아들을 낳기 전까지, 외가에 '아들'은 제 동생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남자는 기 죽이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달고 사셨고, 가끔 외할머니가 오시면 제가 공부하는 꼴을 못 보셨습니다.
동생에 비해 머리가 부족했던 제가 새벽까지 공부하는 것을 두고, 동생이나 다른 손녀들과 비교하며 타박하곤 했죠. 그걸 속상하게 생각한 어머니는 저를 학원 네 군데에 보내며 공부를 강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과 저의 상황이 뒤바뀌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부모님이 과하게 주던 용돈으로 오락실에 가던 동생이 소위 '삥'을 뜯긴 것입니다. '삥'을 뜯긴 동생은 가해 학생과 싸움을 했고, 그 과정에 부모님이 개입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그때부터 동생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저와 부모님께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동생을 따라다니고,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던 "살림 밑천"의 시작이었습니다.
동생을 향한 괴롭힘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고, 밝고 의욕적이던 동생은 세상 소심하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동생은 가족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고, 저는 그 아픈 손가락을 지켜야 할 '장녀'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가족의 문제는 온전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