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딸 콤플렉스

'괜찮아'를 말하던 아이

by 루니


"괜찮아"

어린 시절, 제가 가장 많이 내뱉었던 말이자, 동시에 가장 많이 삼켜야 했던 말이었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동생에게는 '평범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드리워졌고, 저에게는 '장녀', '누나'라는 이름의 책임과 희생이 당연한 덕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부모님의 기대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갇혀 각자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서로의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 위로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동생이 받은 '아들'이라는 특권은 어느 순간 미움보다 깊은 연민으로 변해갔습니다.


저와 동생은 둘 다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동생은 새로운 환경에, 저는 새로운 물건에 유독 관심이 많았죠.

특히 일곱 살 여자아이인 저는 '장녀'라는 의무보다 눈앞의 신기한 물건에 더 마음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낯선 시장에서 새로운 물건에 정신이 팔려 한눈을 파는 동안, 동생 또한 새로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 길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혼나는 사람은 언제나 저였습니다.

"누나가 돼서 동생을 잘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요.

겨우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동생을 제가 '케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곱 살 어린 제가 온전히 인지하기란 참 서럽고 원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동생의 실수가 곧 저의 책임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으니까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제 새어머니인 줄 알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가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것은, 어머니 또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외가의 유일한 아들이자 자신의 동생인 외삼촌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이 겪었던 삶의 방식을 제가 살아가길 원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배운 사상을 저에게 주문처럼 내뱉곤 했습니다.

"누나는 원래 그런 거야."
"동생은 남자잖아. 남자는 부엌에 가까이 가면 안 돼. 복 날아가."
"네가 동생을 케어해 줘야 해."

이 말들은 제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굳건한 규칙이 되었습니다.

칭찬은 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작은 실수조차 죄가 되었습니다. '이해해 줘야 할 사람'은 언제나 저였지만, 정작 제가 이해받고 싶다는 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것이 '나다운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부모님이 늘 말씀하시는 '나답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가 동생을 연민하며 진심으로 보살피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딱 한 번뿐인 가족여행 덕분이었습니다. 그 한 번이 마지막이 된 이유는, 거기서도 동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놀기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여행지에서도 친구분들과 어울리느라 동생과 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죠.

저는 배운 대로 어머니 곁에 있었지만, 평소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동생은 혼자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넘어져 다리를 접질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업혀 내려온 동생을 본 부모님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고, 그 이후 다시는 저희를 여행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우리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극성스러운' 우리를 보여주기 창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남들의 시선을 참 많이 신경 쓰시는 분이셨거든요.


그 이후 저희를 여행에 데려가지 않는 대신, 부모님이 여행 가시는 날에는 밥을 사 먹으라며 용돈을 넉넉히 주셨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그 돈으로 동물을 사 모으기 시작했죠.

외롭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무언가를 케어한 적이 없는 동생은 동물을 사서 방치하기 시작했고, 그 동물들을 돌보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제 몫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누군가를 '케어하는 것'이 제가 잘하는 역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동생의 외로움을 알게 된 이후, 동생에 대한 미움보다 그를 보살피고 지켜줘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동생을 혼내는 일이 생기면 동생을 위로하고, 동생 대신 소소하게 복수해 주곤 했습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친척이 살았습니다. 딸만 둘 낳으신 이 친척은 참 동생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잘못한 것이 보이면 부지런히 저희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께 말씀하곤 하셨죠.

그때마다 어머니는 동생을 혼내고 내보내곤 했습니다. '동네 창피하다'는 이유였지만 어린 저희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친척 집이 사는 빌라 지하 창문에 물을 뿌리거나, 초인종을 눌러 도망가는 등의 소소한 복수를 함께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것이 동생을 지키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서로 비교당하며 차별받고 자랐다고 하기엔, 우리는 참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초등학교 '삥 뜯김' 사건 이후 시작된 괴롭힘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졌을 때, 중학교가 되어 동생과 떨어져 그를 지킬 수 없음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저 또한 잘 적응하지 못해 우울했고, 힘든 상황을 선생님께 고백한 이후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왕따로 이어져 괴롭힘을 당했을 때, 동생의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학교에서 맞고 들어온 날, 서로 엉망이 된 모습을 보며 "괜찮냐"라고 위로해 주던 그 순간.

동생을 돌보는 것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저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착한 딸' 콤플렉스는 '착한 누나' 콤플렉스로 변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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