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이름의 상흔

편견이 낳은 가족의 그늘

by 루니
배려

여러모로 자상(仔詳)하게 마음을 쓴다는 의미.

어머님의 '너는 배려라는 것도 모르니!'라며 자주 말씀하시던, 마치 강요처럼 들리던 그 단어.

그 단어는 제 삶에 언제나 양날의 검처럼 존재했습니다.


가족이 모인 거실.

동생의 학교 폭력이 길어지면서, 어머님은 동생 학교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니셨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잘 봐달라는 의미의 돈을 건네고, 학교 행사에 참여하고, 다른 학부모님들과 교류하며 동생의 입지를 살려주려 애쓰셨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동생은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는지 자주 '화'를 냈습니다. 그 화는 결국, 엄마와의 싸움으로 번지곤 했습니다.


어머님은 자신이 동생을 위해 해 왔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셨던 것 같습니다.

"너를 위해서", "네가 고생하지 않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라는 말에 격한 감정을 담아 쏟아내셨습니다.


서럽게 우는 동생, 그리고 그 모든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버지.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중재하려 애쓰는 것은 언제나 저였습니다.

“엄마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아빠가 싫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으신 거예요.”

“동생도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좀 더 동생 잘 보살필 테니까요.”


엄마를 위로하고, 동생을 대변하며, 가족 사이의 폭풍 같은 상황을 조율하며 저는 어떻게든 그날의 불화를 잠재우려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누구도 제게 위로하고 중재하라고 시킨 적은 없었습니다. 가르쳐준 적도 없었죠. 하지만 저는 본능처럼 가족의 감정을 읽고,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한 '중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감정을 받아내고, 동생을 보살피며, 아빠를 이해하는 일. 그것이 장녀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여겼습니다.

아마도 은연중에 학습된, 가족을 지키는 저만의 방식이었을 겁니다. 저만 참고, 저만 잘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엄마는 제게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너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다행이라고…"

그 말이 제게는 큰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분노를 무시로 표현하는 아버지와, 그 사이에서 울음과 투쟁으로 일관하는 동생. 저는 그들 사이에서 '해석자'가 되어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고, 가족의 상처를 무마하기 위해 저 자신을 누르는 일을 일상이자 생존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 한 번도 그들처럼 감정을 드러내본 적이 없습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배려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생의 아픔이 가족 전체로 퍼져 우울해져 가는 상황에 제 감정까지 보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 표현은 '착하지 않은 딸'의 영역이라 여겼습니다.

아들은 다소 거칠어도 괜찮다는 묵인 속에서 동생은 학교에서 쌓인 분노를 가족에게 있는 그대로 쏟아냈지만, 딸인 저는 순종적이고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기대 때문에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역할은 가족의 기류를 평평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지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나'는 제 감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와 깊이 교류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친근하게 다가오면 부담스러워 업무적으로만 말하고 싶어 집니다. 그것이 제가 그들에게 가장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아이의 감정을 부담스러워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는 어느 순간 저를 살피고, 저에게 맞추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 또한 부모님에게 배운 그대로 아이에게 틀을 씌워 맞추라 하는 것을 느낀 이후, 저의 고통을 아이에게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 깊이 박혀 있던 '배려'라는 이름의 상흔을 비로소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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