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소설가 C. S. 루이스는 쓰기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처음 알게된 순간 나는 이 말이 진짜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쓰기로 정말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둘러보았다.
스마트폰, 헤드폰, IC카드, 가스레인지, 필통, 기타, 피아노, 식물 등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사물들 그리고 글쓰기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보이는 사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글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스마트폰을 만든다면 당신은 설계를 해야한다. 당신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확한 치수와 모양 그리고 기능대로 스마트폰을 설계할 것이고 그 설계 대로 제조 장치는 스마트폰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은 컴퓨터 언어라는 글을 씀으로써 이루어진다. 헤드폰, IC카드, 가스레인지, 필통, 기타, 피아노 모두 마찬가지다. 또 다른 예로, 내가 키우는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나는 수십 개의 식물 키우기 블로그의 글들을 읽었다. 이를 통해 내가 키우는 식물의 특징 및 주의사항을 배웠다. 누군가의 소중한 글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어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했다. 사랑, 철학, 중력, 꿈, 언변…
‘사랑’의 경우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와 소설을 남겼다. 우리는 그 글들을 읽으며 감정을 이입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철학’의 경우, 인간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철학자들이 다양한 관점의 글을 남겼다. 그 글들을 통해 우리는 철학적 사유의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좀 더 깊고 통찰력 있게 바라보게 된다. ‘중력’의 경우, 아이작 뉴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중력을 수학이라는 글로 기술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뉴턴의 글을 통해 미사일발사, 우주비행 등 중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꿈’의 경우, 어린 시절 선생님은 교실반 친구들에게 꿈을 이루고 싶다면 꼭 꿈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말씀하셨다. 꿈을 글로 써서 구체화하면 할 수록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셨다.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나 우리는 글을 통해 무언가를 생각하고 구체화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C. S. 루이스의 ‘글쓰기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진리라고 나는 생각하며 나는 이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두고 있다. 미국에 살 때, 친구들 중 유대인 친구들이 좀 있었다. 어느 날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유대교 랍비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들의 성경인 ‘모세오경’의 첫 시작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한다.
베레쉿 바라 엘로힘 엣 하샤마임 베엣 하아레츠.
우리 말로 해석하자면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이다. 그런데 히브리어를 알아야만 보이는게 있다고 한다. ‘베레쉿 바라 엘로힘’은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했다’이기 때문에 그 다음은 무엇을 창조했는지 목적어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창조한 것은 ‘하샤마임 베엣 하아레츠’ 즉, 하늘과 땅이 아니다. 바로 ‘엣’이다. ‘엣’은 את이다. א(알레프)는 히브리 알파벳의 첫번째 문자이며 ת (타브)는 히브리 알파벳의 마지막 문자이다. 따라서 ‘엣’은 히브리 알파벳 문자 전체를 상징하는 말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가장 먼저 창조한 것은 바로 문자 곧 언어이다. 하나님은 언어를 통해서 하늘과 땅을 창조한 것이다. 유대인 친구 말에 따르면 신 또한 글을 통해 모든 것을 만든 셈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우리 신이 우리 인간을 만들었을 때 분명이 설계도를 가지고 만들었을 것이다. 그 설계도가 최근 5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분자생물학에 의해 밝혀진 DNA 유전자염기서열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DNA는 네 종류의 염기인 아데닌 (A), 타이민 (T), 구아닌 (G), 사이토신 (C)의 약자인 A, T, G, C 네 개의 문자로 표현 가능하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가 그것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C. S. Lewis의 말을 나는 다음과 같이 뒤집어 보았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 수 없었다면 그 이유는 내가 그것을 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을 뒤집어보니, 원래의 말은 더욱 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번에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발표를 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과제를 잘 진행시키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 과제를 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글로 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것은 내가 공부 대상을 글로 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 건망증이 심한 이유는 내가 처음 알게되는 것들을 글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운동 실력이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이유는 나의 성장에 대해서 글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이유를 글쓰기와 연관시켜 생각했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 예로, 중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에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말을 할 기회를 얻을 때면 당황함과 초조함 때문에 제대로 나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지금의 내가 작가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냐고 말하곤 한다. 대학생이 되어 나에게 개발하고 싶은 능력 일 순위는 바로 말하기였다. 말하기 관련 열권~스무권의 책들을 읽고 연습을 해봐도 도저히 말하기 실력은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궁여지책으로 발표 내용을 미리 대본으로 써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표 내용을 대본으로 쓰는 것 조차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글로도 생각을 쓰지 못하는데 말을 잘하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모든 발표에 대해서 나는 글로 쓰기 시작했고 언제나 PPT뿐만 아니라 WORD를 동시에 준비했다. 그 결과 글로 정리된 PPT 발표를 통해 누구를 만나도 자신있게 나의 생각을 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조, 성량, 호흡, 제스처, 눈빛 등의 부차적인 요소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지금도 회사에서 주요 과제 발표를 할 때면, 거의 모든 동료들은 PPT만을 만들지만 나는 WORD를 먼저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PPT를 만든다. PPT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수십, 수백, 수천명의 회사 사람들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자신있게 나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또한 때때로 작가로서 강연 요청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의 강연 시간을 정말로 부담 없이 즐기고 있다. 내가 쓴 책의 이야기가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분명하게 새겨져 있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고 자신있게 전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글쓰기에서 찾아보아라.
당신이 무언가를 꼭 이루고 싶다면, 언제나 그것을 글로 써보아라.
글쓰기에는 힘이 있고 그 힘이 당신의 꿈과 목표가 현실이 되도록 한다.
쓰면 이루어진다.
이 글은 바로 이 기적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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