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일할 때, 수많은 창업자와 권고사직자들을 만났다.
인터뷰 자리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 많으시겠어요.”
“그래도 의미 있는 길을 가고 계시네요.”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진심 어린 위로를 했던 게 아니었나 보다.
그래, 어쩌면 내 일이 아니니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위로한 게 아니었다.
그저 취재용 멘트, 기사용 감탄사였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여전히 회사의 품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으니까.
안정적인 월급, 조직이라는 울타리, 명함 속 직책.
그 울타리 안에서 나는 그들의 불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들다”는 말이, 내겐 그냥 기사에 필요한 수식어일 뿐이었다.
그런데 내 차례가 왔다
회사가 인수되던 날, 나는 알았다.
이제 나도 그들처럼 떠밀려 나가야 한다는 걸.
창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그때 만났던 창업자들의 한숨과, 권고사직자들의 푸념을
십분 백분, 아니 만 분의 일이라도 체감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그들을 위로한 적이 없다.
진심으로 이해한 적도 없다.
그저 관찰자, 기록자, 기사 작성자였다.
이제야 안다.
이 길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걸.
혼란, 불안, 자조적인 농담,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
블랙코미디의 결론
이제 나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그때 내가 했던 “고생 많으시겠어요”라는 말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그리고 지금 내게 누군가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고생? 고생은 무슨. 그냥 인생이 블랙코미디가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