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소비자는 예쁜 걸 선택하니까 디자인은 예쁘면 끝 아니냐고 혹자는 이야기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미의식이 있다면 아기들이나 어른이 물건을 소비할 때 같은 물건을 고를 것이다. 그런데 아이용 패키지, 노인용 패키지, 여성용 패키지 디자인이 따로 존재한다. 대중의 미의식은 선대 창작자들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대중들은 창작자들이 만들어가는 바이브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 그 거대한 트렌드를 모두 거스르는 대중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보자. 개성의 선두주자, 웨스 앤더슨만의 색감이나 구도는 누구나 따라 하기 어려운 예술처럼 보인다. 그만의 멋진 구도와 색감이라는 건 '그냥 천재라서' 나오는 게 아니다. 철저한 계산과 이론과 '왜 이렇게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집요함이 있었기에 탄생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도 돌 안에 파묻혀있으면 아무도 모르듯이 그 천재적인 잠재성은 결국 연마해야 드러나는 법이다.
결국 천재적인 것, 아름다운 것, 멋있어 보이는 건 모두 철저한 계산과 이론과 규칙 안에서 탄생한다. 난 디자인을 처음시작할 때 디자인의 규칙들을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예술 분야 아냐? 내 개성을 원하는 대로 표현해야 하는 거 아냐?'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규칙과 이론은 디자이너를 제한하기 위한 답답한 틀이 아니다. 오히려 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이너로서 살아남게 도와주는 생존 필수품이다.
상한선을 쭉쭉 치고 나가는 상장주가 아니라 묵직한 우량주가 되게 해주는 도구다. 상장주는 언제 폐지될지 모르거든. 그건 운의 요소니까. 하지만 이론을 알고 이 틀을 제대로 지키는 연습을 하면 제아무리 운이 따라주지 않아도 최소한의 퀄리티를 보장해 준다. 그리고 틀이라는 걸 알아야 틀을 깰 줄 아는 법이다.
그러니 이론을 모르고 '그냥 손 가는 대로 예뻐서'하는 감각이란 나를 언제까지고 지켜주지 못한다. 돈의 세계에서는 신뢰가 생명이다 그렇다면 본인 작업물 퀄리티의 하한선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이 정도 퀄리티는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왜 이렇게 디자인했는지 디자인 요소 단위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전공자와 비전공자라고 디자인을 가르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설명은 이해의 반증이다.
작업 결과물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이기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순수예술에서나 먹히는 일이다. 디자이너에게는 피드백과 수정사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예술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사람과 의견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저도 모르겠어요'는 답이 될 수 없다.
프로의 세계에 '그냥', '예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결과물에서 보이는 감정과 감수성은 전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계산하에서 나온다.
그러고 보면 디자인은 참 복합적인 능력이 필요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촌철살인의 객관성과 미적 감각이 합쳐져야 하니까 말이다. 그건 정말 어느 디자인 분야든 마찬가지다. 분야별로 요구하는 예술성과 자율성에 대한 파이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 객관성과 감각 하나라도 뒤처지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디자인 이론과 기초라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처음에 틀에 딱딱 맞춰서 연습을 하다 보면 갑갑하고 어려울 뿐이다. 어린아이가 1+1이 왜 2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듯 기초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셈이다. 프로단계에서는 당연하게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니까 말이다.
디자인을 반추하고 연마하는 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철학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언어가 곧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매력에 흠뻑 매료되어 현재 디자인과 4학년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돌연 휴학을 한 후에 디자인을 다루는 글을 쓰는 도전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