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온도

오늘의 리듬을 설계하는 공간

by 나경

어떤 방송인이 이르길, 한국의 카페사업은 초단기 부동산 임대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저마다의 카페 사용방식은 개인의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또 모 방송에서 '다가오는 시대에서 진정한 부는 곧 공간의 점유나 소유에서 나올 것이다'는 얘기를 들어서 노트 한편에 적어둔 기억이 난다. 청년들은 꿈과 돈이 없어서 불행의 길로 빠지는 게 아니라, 행복을 실현할 공간이 보장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라 그는 역설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대학생으로서 이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따라서 초단기 공간 점유를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카페란 삶을 펼쳐나가는 하나의 실크로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굳이 아리따운 방구석을 놔두고 카페를 선택해서 그곳의 시공간을 잠시 빌리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우선 카페의 공간설계에 따라 오늘의 기분이나 마음가짐, 속도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 제법 특징적이다.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재미있다고 느끼는 얘기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카페 소개해줄게 같이 가보자.' 할 때이다. 커피의 맛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 공간에서 본인이 느끼는 기분 좋은 안락함이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은 사랑스러운 마음이 보인다. 좋아하는 카페를 많이 저장해 두고 소개하는 사람을 보면 이 취향을 정제하기 위해 들였을 노력에 대해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기분과 리듬의 청사진

현재 이 글을 대한민국의 커피와 핫플레이스의 중심, 성수에서 쓰고 있다. 사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로 약속을 잡고 몇 시간 먼저 이 거리에 와서 마음에 드는 카페를 살펴보고 들어와 앉아 글을 쓰는 것이다. 나의 취미라면 취미이다. 쉬는 날이나 비는 시간에 거리를 구경하고 창밖에서 공간들을 들여다보며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오늘을 설계하는 걸 참 좋아한다. 생각 많고 복잡한 뇌를 환기시키는 방법은 곧 글쓰기와 산책인데 취향에 맞는 카페를 하나둘 저장하면서 '여기는 이래서 좋고, 저기는 이래서 좋다'를 하다 보면 하루의 리듬을 설계할 수 있다. 많은 공간을 알 수록 내 기분에 맞게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따라서 카페의 접근성은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났다면 적극적으로 서울을 탐색하며 오늘의 공간을 물색하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카페에 가서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를 쓰며 생각을 정제하는 것, 또 하나는 일기장을 펴놓고 손이 가는 대로 만년필과 함께 사유하는 것. 말하자면 카페와 외부장소는 생각을 흘려보내는 일종의 명상 공간이다. 과제라거나 일을 할 때도 가끔 있지만, 일반적으로 집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걸 더 선호한다. 고약한 디자인의 감각이란 많은 공간성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커다란 책상, 약간은 폐쇄된 느낌, 손이 닿는 곳에 메모지가 있어야 하고 립밤과 물을 필요로 하고 스케치북이 옆에 꼭 붙어있어야 안정된다. 그래서 카페에서 디자인을 한다던가 책을 읽는 일은 거의 없다.


카페는 내면의 몰입을 완전히 방해해서 좋다. 혼자 가만히 집에 앉아있으면 별 필요도 없는 짜증스러움에 매몰되는 일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창밖을 보며 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보고 카페 내부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바리스타들이 커피 추출하는 걸 보는 게 참 좋다. 나나 내 일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서 좋다. 그리고 그 몰입의 정도를 조율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작동한다. 밖으로 나가서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미술관에 당장 방문할 수 있다는 자율성 역시 하루 리듬 조율의 단서이다. 끝없이 외부와 내면 사이를 진자운동하며 물리적 선택을 할 수 있고, 생각의 흐름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로운 게 어지간히도 싫은가 보다. 그래서 집을 안정된 공간으로 꾸미기까지 오래 걸린 듯하다. 삶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하루하루가 늘 감사한 오늘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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