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연결고리에 의미부여는 그만
FOMO는 다른 사람이 좋은 경험을 하거나 성공하는 것을 보며 자신만 뒤처지고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이른다. 소셜미디어에서 또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솔직히 그렇게 득 될만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지는 않는다. 휴대폰을 자주 안 하기도 하거니와, 불안을 증폭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무엇보다 FOMO가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다들 어찌나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지, 대단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고 그렇게들 떠들어댄다. 아무리 자존이 된다고 자부할지언정 그것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비교를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다. 다만 인생은 수능처럼 상대평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니고 그저 모두 독립시행으로 살아갈 뿐인데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과 비하를 일삼는 게 보는 나로서도 정신이 소모된다.
물론 좋은 정보들도 많다. 인터넷 사막에서 바늘 찾기를 하는 것처럼 디자인에 도움 되는 정보들을 모아놓은 계정들도 있다. 다만 알고리즘 속에서 그 옥구슬들을 찾아야 하므로, 기회비용이 제법 큰 편이다. 홀로 등불을 지킨다고 서있어도 그곳은 바람 한 점 없는 광장이 아니라, 팝업스토어가 수만 개쯤 열린 광장이다. 간혹 도움 되는 물품 몇 개가 있어도 내 등불의 밝기를 증폭시키고 가치를 높이려면 더 알맞은 광장을 찾을 필요도 있다. 그 잡다한 광장은 수많은 광장중 일부에 불과하고 언제든지 나 스스로 위치값을 조율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는 중이다.
소셜미디어는 이제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아주 유용하고 필수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것을 통해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고 자기 브랜딩도 가능하고 글,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기 어필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기존의 자격증과 같은 스펙을 넘어 그런 꾸준한 삶의 기록 역시 스펙이 되는 세상이다. 좋아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면 가치를 알아봐 주는 시대가 좋으면서도 압박도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늘 충실하고 솔직해야 하니 말이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 딱 좋은 시대이면서, 그걸 걸어 나가는 방향성을 계속 탐구한다. 재미있는 건 내가 가진 개성이 타인과 다른 경쟁력을 지니면서도 재정적 가치가 따라붙을 수 있는 유효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와 가깝고 말고를 떠나서 나 스스로를 이해함과 동시에 타인과의 교류도 원활히 할 줄 알아야 하나 보다. 타인과의 소통이 없이 인생을 살기란 불가능하니 말이다. 나의 경우 '타인과의 교류'라는 인생의 과제가 취업이라는 얼굴로 나타나있다.
뭐랄까 사회적 교류 - 개인적 성찰의 진자운동이 하루에 몇 번이고 반복되는 듯하다. 난 그 스위치 온오프가 제법 소모적이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소셜미디어와는 거리를 두고 소통을 할 일이 있다면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이건 연애적인 이야기에도 일맥상통한다. 누군가랑 매일같이 연락하고 짬 내서 하루를 공유하는 게 재미를 떠나서 소모적이다. 그 순간의 짜릿함이 있음은 알지만 연결감을 통해 생산되는 불필요한 불안들이 관계를 휘청이게 하는 게 싫다.
이성과 연애 관계로의 발전을 향해 나아갈 때 소셜미디어가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터보의 사이버 러버의 노래가사 같은 랜선연애를 실제 인간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 쉽지 않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특별한 불안이 없는 편이다. 문자가 오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는 편도 아니고, 그 연락 텀으로 인해서 관계의 본질을 흩트리는 게 싫다. 카카오톡이나 메시지를 더 많이 활용하면서 연애 역시 이쪽이 발달했는지, 마치 룰이라도 있는 냥 답장 텀에도 그렇게나 의미부여를 한다. 이렇게 사소한 걸로 계속 싸울 바에는, 만나는 약속을 정해두고 그 전날까지의 설렘을 즐기는 걸 택한다. 메시지에 쓸 수많은 파편의 시간을 모아서 하루 제대로 만나는 게 좋다. 간 보듯이 계좌 확인하고 메뉴 주문하는 것보다 제대로 한 번 일시불로 결제하는 게 좋다. 한도초과 뜨거나 카드 거부당하면? 그럼 그냥 살던 삶 다시 몰입해서 살면 된다.
특히 연애가 성사되기 전의 과정이 롤플레잉 놀이 같아서 꼴이 우습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본인 역량의 150%를 발휘를 내보이는 노력을 '메시지로' 곁들여야 한다는 게 힘들다. 차라리 그냥 내 평소의 텐션 그대로를 매번 똑같이 보여주고 싶다. 난 그냥 나대로 살고 내 삶의 속도도 존중받고 싶은데, '네가 연애에서 확신을 안 주면 안 돼'같은 시위성 행동을 보는 것도 지친다. '나경이는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라는 소리를 한 두 번 들어본 게 아니라서 이렇게 화가 난 거다. (생각해 봐라. 몇 번 만나본 것도 아닌데 메시지 몇십 번으로 어떻게 사람을 알겠는가. 그런 텍스트 쪼가리로 사람을 속단하기 싫다.) 소셜미디어 속 메시지 전송 같은 러브게임 500번보다 오프라인 1번 만남이 훨씬 좋다. 감정에 대해 행동으로 책임지는 게 내 스타일이다.
고작 메시지 전송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랑의 언어로 내게 사랑을 속삭이지 않으면 널 떠나고 책망할 거야'처럼 들린다. 보통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그들의 감정적 책임을 내가 짊어지고 이 관계를 이끌어가야 하는 꼴이 연애 이전에 보인다면 진전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행복하자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건데, 연애라는 명목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거라면 안 하고 만다. 특별히 무례한 말도 한 적 없고 말투가 못된 것도 아닌데 '관심이 없나봐'라고 오해받는게 지친다. 계속 사랑을 시각적으로 증명해야한다는 압박을 받는 기분이다. 이모티콘 1개는 마음이 없는거고, 이모티콘 3개는 마음이 있는 건가? 얼마나 웃긴 잣대인가. 그들의 불안을 떠안기를 거부한다. 타인의 자존은 나의 몫이 아니다. 연애와 남자친구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로 두고 싶지, 인생의 트로피로 두고 싶은 게 아니다.
외로움을 앞세워서 연애 자체를 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사람을 외로움 채우기 수단으로 쓰기보다는 평등하게 존중하고 사랑으로 대하고 싶다. 내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 지 알고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행위인지 안다. 그러니 더더욱 소셜미디어 메시지와 같은 소모적 의미부여로 사랑이라는 본질을 가리기 싫은 것이다. 사랑을 기만하고 싶지 않다.
요즘 연애 얘기도 많이 들린다. 연애를 위해 소개팅을 받아보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일단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취업준비를 계속하다 보면, 뭔지 모를 타이밍이 오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인연이 오겠거니 한다. 연애가 없어도 성장은 계속된다. 다만 사랑을 통해서는 무한한 성장욕구가 올라오니 사랑을 하고 싶냐고 하면 매번 '너무 그렇다'라고 한다. 그렇다. 연애를 위한 연애 말고 사랑을 하고 싶다. 요즘 것들의 말로 바꿔서 표현하면 나는 순애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