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의 작별

마음을 들여다보면

by 나경

한동안 마음을 들여다볼 일이 별로 없었다. 늘 어딘가에 해결되지 않은 숙제 하나쯤은 들고 있었고, 구조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었으며, 작게나마 경계 태세를 기본값처럼 깔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리만치 그런 게 없다. 비어 있다기보다는,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신기하다.


우리는 보통 행복보다 불안을 기본값으로 삼고 살 때가 많다. 그래서 불안이 사라지면 오히려 ‘이게 괜찮은 건가?’ 하고 점검하게 된다. 괜히 한 번 더 들춰보고, 혹시 놓친 균열이 없는지 살핀다.


내 상태를 조금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이렇다. 회사에서는 하나씩 적응해가며 조금은 자리를 잡았고, 사랑은 무리 없이 흘러가고 있으며, 졸업 프로젝트는 준비할 것이 있지만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삶의 큰 축들이 동시에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는 감각. 아마 이것을 신뢰감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내 삶을 내가 처리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신뢰다.


예전에는 손에 들린 문제를 전부 해결해야만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늘 조금은 조급했고, 조금은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결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어도 나는 그것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다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감각.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상대가 완벽해서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단단한 축이 생겼기 때문에 불안이 줄어든 것 같다. 예전의 나였다면 잘 되면 어쩌지, 망가지면 어쩌지, 내가 더 좋아하면 어쩌지 같은 미세한 긴장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보자, 하고 넘길 수 있다. 대체로 모든 일에 과하게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오래 불안했던 시간이 있으면 편안해졌을 때 오히려 그것을 낯설어한다고 한다. 이렇게 괜찮아도 되는지, 이 평온이 곧 깨지는 것은 아닌지, 괜히 한 번 더 의심하게 되는 것 말이다. 혹사나 그런 생각이 스치더라도 그건 불안이 돌아온 게 아니라 몸이 예전 습관을 잠깐 재현하는 것이리라. 지금의 안정은 우연히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지난 24년 동안 내가 정리하고 고민하고 다듬어온 결과인 셈이다.


지금의 나는 들떠 있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으며,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저 차분히 이것이 안정이라는 감각이구나 하고 조용히 마음을 관찰한다.


연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자주 든다. 누가 더 좋아하는지를 시소처럼 재지 않고, 각자의 상태 그대로를 두는 관계라는 것, 그리고 서로의 안정에 서로가 기여하고 있다는 것들에 대해 특히 그러하다. 사랑하기 이전, 불안으로 가득했던 나의 모습은 이제 희미하다. 그토록 작별하고 싶던 감정과 나는 한 발짝씩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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