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언제까지 고민만 할래

그만두는 것도 무서운 겁쟁이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

by 면백

발뒤꿈치에 난 상처가 짓물러가는 것처럼




오랫동안 고민만 하다가 결국 시작도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브랜드 사업을 하는 것이고 하나는 꾸준히 글을 연재하는 것이다.


그토록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는 것이 겁나는 이유는 아마도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해온 만큼 잘해내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멋지게 해내고 싶은데 덜컥 시작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해보였다. 그렇다고 마냥 미루지 않고 아주 작은 시도들은 꾸준히 해왔다. 예를 들어, 대학생 때는 동대문에서 옷을 사입해보기도 하고, 회사를 다닐 때는 가방을 제작하기 위해 친구와 짬내서 회의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이젠 정말 시작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익숙한 야근을 끝내고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날이었다.


사원증을 걸고 번듯한 직장에서 충분한 연봉을 받는 것이 성공한 삶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나도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안맞는 신발을 억지로 끼워신다가 발뒤꿈치에 난 상처가 짓물러가는 것처럼, 그날 저녁엔 집에 가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감정이 사그라들 때쯤 스스로에게 물었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도전해도 괜찮은가? 그땐 나의 20대의 마지막을 지날 즈음이었고, 그 도전이 실패해도 내 한 몸은 책임질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당장 도전하기로 했다.



1000001683.jpg 정들었던 사원증을 반납하던 날


퇴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가까운 이들에게 얘기하니 대체로 걱정과 우려를 표했다. 왜 안정적인 직장을 놔두고 고생하려고 하냐, 직장을 다니면서 병행할 수도 있지 않겠냐라는 식의 말이었다.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나의 에너지로는 두 가지를 적당히 병행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번의 시도 끝에 깨달았다. 그래서 걱정하는 마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되 잠시 뒤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했다. (그러나 혹시라도 주변의 말에 나의 다짐이 흔들릴까봐 회사에는 결국 창업 때문에 그만둔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이 쯤에서 드러나는 겁쟁이의 면모)






돌고 돌아 김자매




퇴사하고 3개월은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야하나 또 다시 고민만 하면서 보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당시 영국에서 유학하던 동생과 서로 진로고민을 얘기하며 한참을 통화하게 되었다. 평소에 브랜드 마케팅에 대해 관심이 많던 동생은 내가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함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계획이 실패할 경우 동생의 커리어가 틀어질까봐 걱정되었다.


“더 좋은 직장에서 경험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마냥 실패할 수도 있어.”

“근데 나는 전부터 언니랑 같이 일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사실 당장 가고 싶은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든 부딪치면서 해보는거지 뭐.”


꽤 담대한 동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래, 그럼 같이해보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동생과, 인테리어디자인을 전공한 나, 그리고 원단 업계에서 30년동안 계셨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우리는 패브릭을 기반으로 하는 리빙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Childhood1.png 개구쟁이 동생과 식탐대왕 언니


지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가 연결되고 싶은 이들을 생각하며 다듬어진 사호의 정체성은 바로, ‘지적 예술가’를 위한 리빙 브랜드다. 우리가 되고자 하는 지적 예술가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몰입과 휴식, 이성과 감성 어느 쪽에 치우쳐서 휘둘리지 않고 균형있게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지금부터 기록해가는 우리의 글도 이러한 지향점과 맞닿아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높은 완성도의 제품 말고도, 그 뒤에 있는 사소한 이야기도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결과와 과정 모두를 긍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도전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잘하고 있어. 잊고 있었겠지만 우리 이만큼 걸어왔어.’라는 기록이 시간이 지나 선물로 돌아올 것 같다고 느껴진다. 나의 두번째 꿈이었던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는 것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IMG_0973.jpg 나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