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인데 박람회부터 나가겠다고?
작년 여름, 우리는 제품 개발과 브랜딩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오랫동안 고민해 만든 브랜드가 세상에 나오기 직전이었지만, 세상은 우리가 열심히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알아봐 주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직접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우리를 알리고 싶었다.
특히 오프라인에서 잠재 고객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 갈증이 컸다.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직접 만져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지갑을 열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박람회에 나가보자고.
박람회는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특별한 장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다양한 브랜드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방문객에겐 다채로운 구경거리가 되고, 브랜드에겐 자신을 시험해 볼 무대가 된다. 그렇게 여러 박람회를 검색하고 발로 다니며 직접 조사하던 어느 날, 우리는 '더 메종'이라는 박람회에 방문했다. 동생과 부스를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눈에 띄는 안내문이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눈여겨봤던 '홈테이블데코페어'의 현장 신청 부스였다. (운 좋게도 두 박람회의 운영사가 같았던 것이다!) 상담까지 가능하다는 말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러다 딜레마에 빠졌다. 바로 부스의 가격과 크기였다.
한 개짜리 부스는 가로 3m, 세로 3m의 고장 두 평 남짓한 크기였다. 좁아서 관람객이 안쪽까지 들어오기 어렵고, 코너가 아니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반면 두 개짜리 부스는 널찍해 사람들에게 충분히 경험시켜줄 수 이 있는 공간이 확보될 수 있었지만, 보통 설치와 철거까지 합치면 천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고 했다. 우리처럼 작은 브랜드에게는 버거운 금액이었다.
우리가 깊은 고민에 빠진 것을 눈치챘는지, 담당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 브랜드를 하고 계세요?"
그 순간, 마침 직전에 만들어두었던 포트폴리오를 찾아 휴대폰에 띄워 보여드렸다.
담당자는 한참을 보더니 표정이 밝아졌고, 극적인 제안이 나왔다.
"마침 이번 페어에서 '제로웨이스트관'을 기획 중인데, 사호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쪽으로 참가하시면 20% 할인이 가능합니다."
가슴이 뛰었다. 지속가능성은 우리가 브랜드를 만들며 가장 먼저 세운 원칙 중 하나였으니까. 친환경은 비싸기만 하고 어차피 사람들이 몰라준다며 들었던 이야기들로 그동안 서러웠던 시간이 잠시 동안 스쳐갔다. 어쩌면 우리가 타협할 수 없는, 옳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바로 정답이 아닐까. 게다가 제로웨이스트관에는 '기둥 부스'라고 불리는 특별한 자리가 있었다. 기본 부스보다 크지만, 두 개 부스만큼 비싸지 않은 합리적인 공간. 코너에 위치해 시선도 잘 들어오고, 딱 우리가 원하던 조건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박람회 참가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담당자께서 적극적으로 상담해 주지 않았다면 놓쳤을 기회였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매번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브랜드가 성장하는 길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공감과 우연, 그리고 작은 연결에서 시작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소중한 경험이다.
이제 계약까지 마쳤으니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어떻게 부스를 설계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인가.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고 잠시나마 설계사무소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기에, 4평 남짓한 부스 하나쯤은 충분히 멋지게 꾸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별도의 업체를 섭외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우리가 직접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고려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박람회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었다. 브랜드를 보여주는 무대이자 동시에 구매를 이끌어내는 판매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품을 어떻게 배치하고 공간을 어떻게 구획하느냐가 중요했다.
먼저, 우리의 쿠션 디자인이 가진 페미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공간에 담아내야 했다. 동시에 재고 원단을 활용한다는 브랜드의 스토리도 디스플레이에 녹여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아래 이미지처럼 원단을 층층이 쌓아 조형물을 만들려 했지만, 원단 소모가 지나치게 많고, 고정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방향을 바꿔 원단의 주름을 강조해 부드럽고 풍성한 느낌을 살리는 방식으로 전시대를 제작하기로 했다. 여기에 사용되는 원단 역시 공장에서 버려지는 원단 꾸러미들을 재활용해 폐기물을 줄이기로 했다.
공간 구획도 중요한 문제였다. 코너 쪽 개방되니 공간은 유동인구가 많으니, 한눈에 제품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구역으로 삼았다. 기둥 옆 공간은 고객을 응대할 판매 구역으로, 뒤쪽은 제품을 보관할 창고 구역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전시대 위에 놓인 제품은 관람객이 쉽게 손을 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사호의 쿠션은 직접 만져봐야 소재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결국 주최 측과 협의해 기둥 벽에 봉을 설치하고, 의류 매장처럼 쿠션을 걸어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덕분에 박람회 기간 동안 방문객들이 편하게 제품을 구경하고 우리도 제품을 직접 보여드리며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시간과 땀이 서린 부스가 완성되었다. 설계부터 제작, 디스플레이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지금까지 브랜드를 운영하며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꼽으라면, 박람회 준비를 모두 마쳤던 순간은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박람회의 4일은 내향적인 김자매가 내면의 인싸력을 끝까지 끌어낸 필사의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서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응대하는 것은 여태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준의 노동 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큰 배움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브랜드와 제품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은 하지 말하야 하는지가 하루하루 선명해졌다. 잠재 고객을 만나면서 스스로도 브랜드를 본질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는 윤석열 대통력 탄핵 심판이 예정되어 있던 때였다. 탄핵 선고일인 박람회 셋째 날이 다가오면서 박람회장 분위기도, 우리 마음도 뒤숭숭했다. 집회에 함께하지 못한 시민으로서의 죄책감, 예년보다 관람객이 적다는 주변 참가 업체들의 말들로 불안감까지 뒤섞였다. 정신과 육체 모두 온 힘을 다한 시간이었다.
기대만큼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지는 않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그래서 돌아보면, 이 4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진한 시간 중 하나였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나와 사호를 가장 많이 돌아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