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업에 번번히 떨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올해 초,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자금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고, 이대로 몇 달만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정말 접어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그때부터 정부지원사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꼭 따내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컸다. 왜냐면 작년엔 지원했던 사업이 모조리 탈락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붙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는 사업이라면 모두 도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리스트를 추리다 보니 거의 스무 개가 되었다. 그 중에서 우리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분야를 제외하고도 약 열 개의 사업에 지원했다.
지원사업 하나를 제출하는 데는 보통 며칠이 걸린다. 특히 올해는 예술, 반려동물, 사회적 가치, 지역 특화, 혁신 기술 등 우리의 주요 사업 분야가 아닌 분야에도 지원해야 했기 때문에, 매번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이 사업에는 혁신성과 기술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저 사업에는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 꾸며냈다.
그 과정은 단순한 문서 작업이 아니었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브랜드인지 잊어버릴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지원서를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훅 들어왔다.
‘이건… 정말 우리가 맞나?’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정말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여러 가지의 다른 ‘사호’를 만들어내며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새벽 4시에 서류를 제출하고, ‘이거 되도 문제, 안되도 문제인데?’라는 생각에 공허함이 몰려와 서류를 제출하고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 일곱 번째로 지원한 사업에서는 서류전형을 통과하기도 했다. 면접까지 보고 나서 대기번호까지 받았지만, 결국 선정되지 못했다. 그 다음에 지원한 여덟 번째 사업에서는 깔끔하게 떨어졌다. 이쯤 되니 탈락이 디폴트 값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턴 ‘또 떨어졌구나’라는 무감각함이 매일의 감정이 되었다. 탈락에 익숙해지는 건 결코 괜찮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포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작년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바로 그 사업,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입주공고가 다시 올라왔다.
만약 단 하나의 지원사업만 붙을 수 있다면, 가장 원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서울디자인창업센터’는 많은 초기 브랜드가 꿈꾸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박람회 참여, 온·오프라인 플랫폼 입점 지원, 법률·상표권·투자 분야의 전문가 코칭, 브랜드 간 네트워크 형성까지 돕는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해 큰 기대를 안고 브랜드 포트폴리오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지원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때 나는 단순히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합격한 브랜드 리스트 안에 사호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는 느낌이 더 큰 충격이었다.
합격한 브랜드들의 면면을 보면서 우리와의 간극이 뚜렷하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하게 되었다. 명확한 브랜드 포지션, 안정적인 제품군, 수치로 설명 가능한 시장력, 그리고 무엇보다 ‘비즈니스 모델’이 선명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사호는 제품은 있었지만 포트폴리오라 부르기에는 부족했고, 브랜드 방향성은 있었지만 그 방향이 어떻게 매출 구조로 이어지는지 숫자와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떨어진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브랜드가 아니었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방향성을 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그 공고를 다시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 작년에는 기준선에 전혀 닿을 수 없는 상태였다면, 올해는 그래도 그 기준선 앞에 서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람회에 참가하고, 오늘의집에 입점하기도 했고, 7건의 디자인권도 등록했다. 이제는 사호가 어떤 브랜드인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에 와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과 같은 지원서였지만 달라졌다면 약간의 자신감, 그리고 거듭된 탈락으로 생긴 실패에 대한 약간의 무감각함이었다. 우리는 작년에 비해 얼마나 더 ‘사업하는 브랜드’가 되었는가를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맞춰 쓰는 지원서가 아닌 정말로 우리가 어떤 브랜드이고,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전보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만 훨씬 몰입해서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불합격 메일도 없었다. 발표날 공지 게시판에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후에야 우리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탈락은 여러모로 참 쓸쓸하구나하고 처음 느낀 날이었다. 작년에는 첫 탈락이어서 그랬는지 실망감이 커서 이틀 내내 시무룩해야했다. 그래서 올해는 굳이 발표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거나 결과를 상상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로 했다. 실패가 반복되니 기대를 스스로 줄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달까.
서류 합격 발표 날에 나는 목포에 있었다. 여러모로 심란하기도 하고 지쳐있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휴가차 조금 멀리 다녀오기로 했다. 저녁까지 메일이 안오길래 ‘또 떨어졌나보네. 밥이나 맛있는 걸로 먹어야겠다.’하고 서운한 마음을 감추려 오히려 와구와구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이메일 알람이 울렸다. 제목을 보니 서울디자인창업센터에서 보낸 것이었다. ‘혹시…?’ 매번 결과를 확인할 땐 의연하자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마냥 기대하게 되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근데 정말 익숙하지 않은 문장이 있었다.
‘본 메일은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입주기업 7기 서류심사 합격자분들께 발송되는 메일입니다.’
우리가 합격했다고?
‘발표평가 이전에 서류평가 합격자 대상으로 멘토링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발표평가와 멘토링이라는 문턱이 우리를 또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또 다시 어떤 경쟁률을 뚫어야하는걸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