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 May 17. 2021

잘 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어머니, 혹시 00이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나요?"

"네에? 아니요!!!"


얼마 전 4학년 첫째의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체크를 하나 잘못한 모양이다. 담임선생님께서 놀라서 확인차 전화를 하셨다. 학폭 피해로 이미 나온 결과를 수정할 수가 없다며 결국 며칠 후 재검사지를 보내주셨다.


'아니 이게 웬 민폐야. 선생님 곤란하시게 일을 만들었네. 혹시 아이 기록에 남아서 문제가 되려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어쩜 그런 실수를 했지.... 부끄럽고도 부끄러울 따름.


사실 살면서 이런 일이 수두룩하다.

지난달에는 어느 곳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 면접 사례로 받은 샌드위치 상자 밑바닥이 뜯어져 그 속에 담겨있던 과일들이 길바닥에 온통 나뒹군 일이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날은 면접도 엉망이었다나... 횡설수설의 극치였다나...


때론 실수도 하고, 후회도 들고,

때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 그저 일어난다.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무슨 생각부터 할까?



으이그, 이 바보야. 왜 또 사고를 쳐???



전에는 나를 일단 탓하기부터 했다.

감정적으로 한껏 분노한다, 나에게... 왜냐하면 나는 내가 제일 만만하니까.

마음속 동네북이 시끄럽게 울린다. 강도 높은 비난을 듣다 보면 억울한 마음도 든다, 이런 일이 일어난 세상에, 신에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며...

보잘것없는 인생은 주눅이 들고 이 세상에서 아주 없어져 버리고만 싶다.

(이 작은 일에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걱정하지 마.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자존감이랄까. 잘하고 괜찮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다음에는 실수 안 할 거라고 미래의 가능성을 기대할 때도 있다. 조금 전의 일로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려 애쓰는 것이다.

부정적인 기분을 억지로 덮어버리고 나니 부담이 된다. 다음에도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한 켠에 고개를 든다.

대체 걱정을 어떻게 안 하나. 나는 정말 나를 믿는 것일까. 계속 나를 쪼아대기 위해 말로만 빌어먹을 '괜찮다'는 주문을 외우는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늘 다 좋을 수가 있겠어..
그저 속상하고..
너무 부끄러울 뿐..

나라고 모든 면접에 다 합격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사람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거지..



요즘의 나는 나를 위로한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속상한 마음 그대로...

다음에 더 나아지지 않아도..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한다고 해도..

이미 최선을 다했다며...

핑크빛 자존감이 아닌 중립적인 마음챙김으로 불안할 것도 없고 회피할 것도 없는 솔직한 고통을 느껴본다.


지나고 보면 별일도 아닌 것을...

(다행히 면접 결과도 합격이었다...)


설령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더라도, 온전히 느끼고 위로받은 마음은 쉽게 가라앉는다.

오히려 다음 걸음을 내딛을 용기가 난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나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며, 힘들어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격려하는 태도'자기자비(self-compassion)'라고 한다.




즉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강한 자존감의 소유자들은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삶의 괜찮은 게 아니라, 삶이 이미 어느 정도 괜찮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거라는 얘기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와 마크 리어리 등은 많은 연구 끝에 자신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행복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좌절을 겪더라도 빨리 극복하며 실패 시에도 책임 회피 등 방어적인 행동을 덜 보이는 등 건강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결과적으로 더 '건강한' 자존감을 갖는 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중에서



그리고 아이들은 오늘도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다.

육아에도 볕 뜨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온통 흐리고 비 오는 날들뿐인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날에

아이를 탓하고 비난하지 않으며,

다음에는 잘할 수 있다는 응원으로 몰아가지도 않으며,

그래서 그랬구나... 너도 힘들었구나... 받아들여줄 수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닐까.


스스로를 너그럽게 대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엄마는 아이에게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내 마음을 먼저 담아주는 연습을 한다. 이런 나를 보면서 비로소 아이도 여유를 배워가겠지.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 진정으로 친절한 세상이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르치기보다 분명 실패할 날이 올 거라고, 삶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실패를 허용하는 부모가 실패를 금기시하는 부모들에 비해 쉽게 무너지지 않고 노력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다.


"항상 잘 할 수는 없어. 그래도 괜찮단다.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해. 하지만 그럴 때에도 너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



-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중에서



* 이미지 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모르는 너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