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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글)

by 오후

나는 고층의 아파트에 산다. 삶의 고달픔과 절망이 동시에 내려앉으면 베란다 창문을 아득히 바라본다.

작년 너무 힘들었던 날에는 베란다 창문 앞에서 방충망까지 열고 작은 의자를 딛고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찔할 정도의 높이다. 떨어지면 당연히 즉사할 거란 걸 알고 있다. 단지 보고만 있어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단 몇 초 안에 모든 게 끝이 날 것이다. 그래, 끝. 이건 뭐 운 좋게 살아날 여지도 없이 완전히 끝.

여기서 다리를 올리고 펜스를 넘어설 생각만 해도 몸이 덜덜 떨려온다. 이게 최선일까? 미련 같은 생각이 잠깐 고개를 든다. 이대로 정말 끝나버려도 되나 생각하니 아직 그럴 준비는 되지 않았다고 머뭇거리게 된다. 실은 공포였다. 떨어지면서 심장마비가 온다고도 하고, 어차피 바닥에 닿는 순간이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모든 게 끝이 나겠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엄청나게 무서웠다. 한 번 선택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난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가졌던 종교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분명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드디어 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망자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해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행복한 안식을 얻고자 죽게 된다면 더 이상 인류가 존속할 수 없으므로 근원적 본능이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죽으면 안 된다는 가치를 소리 높여 전파하고 있다고, 나는 냉소한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고통스러울 게 없다고.

비록 그 죽음이 남겨진 살아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남길지라도.


그래. 모두가 한꺼번에 죽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안고 살아가게 될 남겨진 이들이 있다는 건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죽고 나면 남겨질 아이들이 엄마 없이 자라야 한다는 그 사실이..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닐지라도 아이들이 엄마라는 존재를 한없이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괴로움을 겪을까봐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짧은 순간의 행동으로 빚어낼 끔찍한 타인의 고통이 두려워서 비겁하게도 난 나의 고통을 좀 더 지속해 보기로 한다.


오늘도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고, 자잘한 잘못을 저질렀고, 횡설수설했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기도 하였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대체로 괴롭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지금도 이미 습관처럼 창문을 바라보았고.

다만 그 높이를 떠올릴 때마다 빨라지는 심장박동에서 내가 아직 죽고 싶지 않음을 느낀다. 그날의 무서웠던 마음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떠올린다. 죽는 게 무서워서 살아간다면 그건 우스운 건가.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답은 알 수 없지만 나는 살기로 한 내 선택이 분명 1g 더 무거웠으리라고,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믿어보려 한다.

깊은 밤 나의 품을 찾는 너희들을 위해...



(예전에 이 글을 완성한 뒤로 이상하게 창문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어요.. 과거의 잔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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