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모로 쉽지 않은 나날들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을 미화시켜 다시 그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마음과 지금의 시간들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그런 일 이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직접적으로 비리에 가담한 직원들은 즉각 해고되었고, 지부 및 현장사무소 곳곳에 CCTV가 달렸다. 두렵고 긴장되는 시간이었으나 그럭저럭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감사에서는 해고된 직원들을 제외하고도 적극적으로 조력한 대부분의 지부 직원들을 언급했고, 학교 급식이나 건축, 결연사업 등 큰돈이 지출되었던 지난 프로젝트들의 투명성이 재고되었다. 가짜 도장과 영수증, 수많은 횡령과 베임, 무려 우리가 수차례 거래하던 5개의 회사가 모두 직원들이 운영하던 페이퍼 컴퍼니였다. 아프리카에서는 어느때에나 1년 단위로 직원 계약 종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지부 직원들의 계약을 올해 말로 종료하기로 했다. 아마 더 엄청난 일들이 발견될 현장사무소 두 개의 추가 감사를 의뢰했다. 그 와중에 현지 매니저 중 한 사람의 성추행 고발이 접수되었다. 본부에서는 4시간 떨어진 수도로의 이사, 혹은 한국 복귀를 제안했다.
이 일련의 일들이 나를 왜 그렇게 힘들게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이 순간 중 어떤 부분에 매몰되어 있기에 지금을 의연하게 버텨내지 못하는 걸까.
이곳에 와서 졸지에 대략 30명이나 되는 팀의 리더를 맡아버렸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 1년가량의 시간 동안 부대꼈다. 나는 그들이 불만과 두려움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고, 그래서 요즘 매 회의마다 나는 무력하게 살벌한 심판대에 오른다. 매번 “위에다 이야기해 볼게”, 말하지만 아마 돌아오는 답이 없을 거란 걸 우리는 모두 안다. 그래도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때에도 즐거운 일들은 항상 생겨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나는 아는 예정된 결말은, 우리는 내년에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거다. 참 신기하지, 그걸 알고도 웃음이 나오고 농담이 나온다. 내가 얼마나 잔인한지, 혹은 잔인해지고 있는지 매 순간 상기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나를 지켜보려 열심히 닫아내고 있는 사랑하는 마음.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 곧 있을 이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 준비는, 아마 한 아이의 아빠가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의 딸이 부모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그들을 아프게 하는 편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 시간들을 흘려보낼 준비다. 그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내 일상에서 지워낼 준비다. 결국 차라리 나도 그들을 미워하게 될까 봐, 눈을 뜨면 그 하루를 두려워한다.
근래 우리 집 마당에는 도둑이 들었고, 전기 모기채를 들고 흰개미 100마리와 싸워도 봤고, 지난주에는 직원 가족이 낫으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리고 어제는 개미가 가득 담긴 양칫물로 양치도 했는데.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일이면 무뎌진다. 다음 주면 잊혀진다. 언젠가는 웃고 넘길 나의 무용담이 된다.
그러나 이 일들은 아니다. 아마 오래도록 마음에 상처 혹은 죄책감으로 남을 이 시간들은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나를 때때로 생각에 잠기게 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여파'라는 뜻의 영단어 'aftermath'는 풀을 베어낸 자리에서 다시 한번 자라나는 두 번째 풀을 의미한다.
내가 두려운 건 아마, 아프거나 강하게 자라날 나의 두 번째 잎.
차라리 아프거라, 억세지지 말고.
2.
가끔 나는 '지 무덤을 지가 판다'는 말이 딱 내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두 번째 석사를 시작했다.
이 년 전쯤 첫 번째 석사를 마치며, 죽어도 내 인생에 공부는 없다고 이를 갈며 놓았던 공부를 결국 또 하기로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마도 자꾸만 궁금해져서.
지난주였나, 치열한 회의 도중에 동료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People here are very comfortable with the problem they are living with."
매일의 업무 가운데에서 항상 느끼는 것은,
나는 이곳 그 누구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던 것을 문제라고 단정 짓고, 그것을 해결하러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무정하고도 차가운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직업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 국제개발협력계가 집중하는 것은 지속가능성과 로컬라이제이션.
부와 빈곤은 점점 더 강한 힘으로 고착화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보다는 쟁취해야만 행복한 세상, 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어느 누가 자기 힘만으로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을지,
어느 국가가 직접 자기 자신을 구원해낼 수 있을지.
항상 가방에 막대사탕을 대여섯 개 들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지속적인 지원이 불가능하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지만, 아이들에겐 그렇지가 않다.
막대사탕 한 알이 이곳의 아이들에겐 오랫동안 두고두고 기억할 그 하루의 즐거움이 된다.
알게 뭐야, 나는 지금 당장 네가 행복했음 좋겠어.
필드를 지나치다 보면 빈곤의 정의가 보편화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곳의 가난은 와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단적 현실이다.
그렇게 책상머리 이상과 단편적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이 공부의 끝에 그 답이 찾아질 리 만무하지만은, 뭐라도 해봐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