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서없이 써보는 지난 삼주.
꽤나 엄청난 일이 있었다.
하나, 근래 지부 행정을 검토하다 2층짜리 사무실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전기세가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갖가지 방법으로 실제 전기 사용량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둘, 지부에서 사용되는 식료품 등 여러 정기적 소모품의 구매가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으로,
한 개의 마트와 계약을 맺고 지속적으로 물건을 납품받기로 하였다.
첫 납품을 받은 그날, 2층을 청소해 주는 우리 직원이 함께 사는 간사님을 갑작스레 붙잡고 이야기했단다.
"요즘 너희가 이 지부의 일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을 알아.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전에 이득을 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럴 수 없으니 모두 화가 나있어. 이곳 사람들은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어. 두려워하지는 마. 그러나 항상 조심해야 해."
알고 보니 이 전의 물품 영수증은 모두 가짜였다.
그날 밤, 카톡이 왔다.
'재무팀장이 은행 도장을 파서 전기세를 횡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이틀 후였나, 현지 학교에 주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던 급식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해 거래를 시작한 근처 공장을 찾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현지인 공장 사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너희와 일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요약하자면, 올해 초 더 좋은 질의 급식을 위해 마을 방앗간에서 공장으로 거래처를 옮기던 그때,
어제까지 나와 웃고 떠들던 우리 직원 몇 명이 몰래 사장을 찾아가서는
방앗간에서 떼먹던 이익이 사라졌으니 자신들에게 웃돈을 얹어달라 요청했다는 것.
불과 일주일 만에 이 모든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난주만 해도 집 앞 길가에서 발견된 도둑을 마을 사람들이 불태워 죽였다.
섣불리 움직이면 누구든 위험해질 수 있는 이곳에선, 옳고 그름을 알더라도 올곧게 나아갈 수 없다.
그저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잠시 동안 공석이 됐다.
결국 내가 나아가는 길의 끝에는 그저 반복되는 우리의 실패 혹은 저들의 실패가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일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당장 하루의 끼니를 위한 생활형 범죄가 넘쳐나는 이곳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탓해야 할까.
우리와 같은 잣대를 들이밀어 누군가에게 책임소재를 묻고, 썩은 가지를 잘라내는 게 과연 우리에게 맡겨진 일일까.
그래서 돌고 돌아 현재,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우리는 그저 매일의 할당량을 해나가는 중이다.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불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
그 속에서 신실하게 날 지키시는
그 손길을 경험하는 것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바다 위로 걸어가는 것
내 온몸을 덮쳐오는 폭풍 속에서
잠잠히 주 바라보는 것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 Gifted]
아프리카에 오기 전, 이곳과 지독하게 어울리는 찬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에는 앞부분의 저 가사가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찬양의 핵심은 그다음이다.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나도 그들을 용납하는 것
나를 위해 달리신 십자가 사랑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내가 불 가운데로 들어가는 줄로만 알았다.
언제 죽음이 앞당겨질지 모르는, 하루하루가 긴장이고 위협인 폭풍우치는 바다의 한가운데.
그런데 사실 사람은 그런 것들에 쉽게 익숙해진다.
사는 환경이 바뀌고 내 삶이 불편해지더라도, 설령 나의 당장의 안위가 조금 더 불안정해졌을지라도,
인간은 그러한 상태에 얼른 적응하기 마련이다.
다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사람이다.
결국 우리가 기대야만 하는,
아마도 그래서 가장 크게 아픈.
이곳에 오기 전 수많은 파견 선배들이 놀랍게도 입 모아 하나의 조언을 했었다.
"반드시 한두 번은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올 거야."
나는 항상 그 신에 아프고 병든 내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런 장면은 고작 질병 따위에 찾아오는 게 아니었던 거다.
어쩔 수 없지. 그저 주셨던 그 첫 마음을 기억하며 나를 달래는 수밖에.
내 사랑이 고작 그렇고 그런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를 닮은 사랑이 되기를.
그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나는 오늘도 그저 사랑이나 더 해봐야겠다, 고 잠시 다짐한다.
2.
가족들과 파견 전부터 준비 중이던 긴 여행을 다녀왔다.
유학시절 유럽을 한 바퀴 돌며 놓쳤던 이탈리아의 일부분과 스위스를 찍었다.
가이드도 없이 다녀온 여행이니만큼 이런저런 일도 잡음도 많았지만, 나는 여전히 여행을 참 좋아한다.
어떠한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좋아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이탈리아에는 친퀘테레라는 지역이 있다.
해안가에 있는 5개의 산간마을이 모인 곳인데, 노을 지는 때에 해안에 앉아있노라면 형형색색의 집들과 바다가 어우러져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진다.
다만, 산간마을이라는 것은 우리 숙소도 산 위에 있다는 것.
캐리어를 들고 대략 계단을 300개쯤 오르니 그제서야 숙소가 나왔다.
터덜터덜 다시 계단을 내려와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오징어튀김과 피자를 사고, 와인도 한 병 집어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도 분위기는 내보자, 하며 테라스에 나와 저녁을 먹던 중 테라스 앞 광장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30분 정도 뚱땅거리더니 갑자기 마을 중앙광장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시작되었다.
방금까지 하얀 메리야스를 입고 광장을 활보하던 아저씨가 정장을 입고 지휘봉을 들었다.
그 순간 말간 밤하늘의 쏟아질듯한 별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
산위의 우리 집과, 그곳 테라스에서 들려오던 오케스트라.
그리고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마시던 레드와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장장 두 시간 동안 그 테라스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심취해있었다.
내가 여행을 참 좋아하는 이유는,
여정의 모든 길이 평탄하진 못할지라도 이런 단 한순간의 도래가 그 모든 발걸음들을 완벽하게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지 않나.
더 많은 시간 아프고 지칠지라도, 이런 단 한순간의 마주침이 종국에는 그 모든 나머지를 이룬다.
웃기게도 내 삶은 이로써 완벽해진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도 한참을 여운에 머무르다 엄마에게 말했다.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만큼 이런 순간이 행복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