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야만 포근할 수 있다니

by Sophie

1.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인용할 때는 잘 몰랐는데, 와서 보니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속담이더라.

앞으로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이 말을 쓰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사는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서 사업지로 들어가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양철지붕의 흙집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리고 그 어떠한 집에도 문고리나 울타리는 없다.

낮 시간 즈음 그 집들을 지나가노라면, 집 마당엔 어른도 없이

유치원을 갈 나이 정도 된 아이들이 서너 명씩 옹기종기 모인다.

조금 큰 아이는 자기만한 작은 아이를 업고 있다.

티비도, 라디오도, 하물며 놀이터도 없는 그 자그마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마냥 신나서 그저 뛴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어른 한 명이 집에서 나와 가만히 아이들을 본다.

그냥 그렇게, 평화로운 한때가 흘러간다.


도시사회학 수업이었나, 생각지도 못하게 한 학기 내내 아파트를 연구하게 된 때가 있었다.

그때 어느 학자가,

아파트는 가장 많은 사람들을 한데 가까이 모아두었으면서도

그들 사이에 가장 두꺼운 벽을 세워둔,

아주 묘한 공간이라고 묘사하는 걸 읽은 적이 있는데.


아파트나, 아프리카나.

여러모로 묘하긴 매한가지다.



2.

지난주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주일예배 때 짧은 기도 시간이 있었는데, 예배당을 가득 채운 찬양 속에서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리를 비켜줘야 하나보다, 하고 눈을 떴을 때는 처음 보는 백인 아주머니가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I am praying for you"

한마디 하시더니 그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얼떨떨한 마음에 그분의 손에 나의 손을 올리고, 누구인지조차 모를 그녀를 위해 잠시 기도했다.

기도 시간이 끝나고, 그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아주 멀리에 있던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도대체 그분은 그때에 어떤 기도를 했을까, 한참을 궁금해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할머니가 엄마랑 이모를 만나서 갑자기 그랬단다.

"까먹을까봐 얼른 얘기해 주는 건데, 오늘 새벽 네시에 하나님이 갑자기 날 깨우셔서는 '현이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하시더라."

"엄마, 나나 다른 애들 얘기는 없었어?" 하고 엄마가 물었더니

"어, 현이 얘기만 하시던데?" 그랬단다.

그 얘기를 듣고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당신이 자꾸만 나를 툭툭 치실 때는, 언제나 이유가 있던데.

그 사랑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일이 내 삶에 꼭 한차례 생기던데.

조금은 두렵고, 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치만 오늘까지는 조금 흐뭇해야겠다.

나, 고백받았네.



3.

슬슬 내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기 시작했다.

중국에 살 때도, 네덜란드에 살 때도 그렇더니,

또 한 번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을 잊기 시작했다.

가끔 내가 사는 곳을 자각하게 되는 건

말도 안 되게 새파란 하늘을 문득 바라볼 때,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

그 정도일까.


어제 갑자기 채 마치지 못하고 떠나온 그 겨울이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추운 걸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왜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사실 겨울보다, 겨울의 이불이 그리웠던 것 같다.

겨울이 와야만 꺼낼 수 있는, 두껍고 포근한 이불이 덮고 싶다.

갓 빨아 꼬수운 냄새가 나는 무거운 이불이 덮고 싶다.

추워야만 포근할 수 있다니, 굉장히 모순적인걸,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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