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무엇이라도 뱉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대화나 노래, 고함 같은 것.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할 줄 모르는 나는, 결국 글을 뱉는다.
지난 두 달간 뱉기만 하고 내보내지는 못했던 글들을 오늘 다시 찬찬히 읽어먹고 껍질은 버렸다.
결국 그 글들은 제 쓸모를 다했으니 서서히 사라지기로 한다.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또는 새로운 장으로.
혹시나 당신에게 아프리카에서 살아볼 마음이 생겼다면, 꼭 미리 해주고 싶은 말.
아프리카는 지독하게 외로운 곳이다.
하나,
근래 옆 도시 간사님은 개에 물려 한쪽 팔을 더 이상 못쓰게 되셨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우리 현지 직원의 동생이 버스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어제는 아시아에 파견된 간사님 세 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급히 한국으로 이송됐다.
그럼 나는 아 이제는 내 차례인가, 한다.
둘,
이곳에선 하루를 바삐 달린 후에도 정처 없이 걸어낼 길이 없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낮에도 밤에도, 언제나 내 주변엔 같은 사람들만 있다.
그마저도 내가 퇴근할 때쯤이면 지구 반대편은 밤이 되어, 전적인 고립이 성사된다.
그토록 바라던 고요이건만, 고요가 적막이 되면 사람은 조금 괴로워지더라.
셋,
아프리카에서 20대 후반 혹은 30대의 청년으로 사는 것은, 불법 도박과도 같다.
이후의 길을 작당모의할 주변인이 없고, 따라가다 가랑이라도 찢을 황새조차 없다.
그저 현재를 살다가 이 현재가 끝나고 나면 꿈에서 깬 듯, 내 삶은 다시 리셋이다.
그래서 기한 없이 전 세계 파견지를 전전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생겨난다.
그러던 중, 이곳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처절히 찾고 있던, 내가 보내어진 뜻 중 한 개를 얻었다.
For no matter how many promises god has made, they are "Yes" in christ.
And so through him the "Amen" is spoken by us to the glory of god.
[2 Corinthians 1:20]
내가 이 모든 곁다리 걱정들로 겹겹이 가리고 있던 것은,
사실,
이 모든 시간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었던가 보다.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이겨내고 살아낸 순간들이 결국 흔적도 남지 않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었던가 보다.
그러다 알아채버렸다.
당신은 종국에 나에게 반드시 주어질 그 언약의 결말을 기다리는 힘을 주시려는 거구나.
내가 이 시간 동안 반드시 갖게 될 것은 그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구나.
성경에는 당신이 나의 행복을 구하시는 순간이 딱 두 번 나오는데,
결국 내 삶은 당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차치하고도 내가 숨 쉴 수 있게 되는 것을.
2.
학창 시절, [시간의 역사]를 읽으며 스티븐 호킹은 사랑 같은 건 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삶보다 커다란 것을 위해, 사유밖에 할 수 없는 그가 사유로 풀어낸 그 광활한 이론이 그 이상의 어떤 것도 탐할 수 없게 만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 어떤 인간도 사랑 없이는 삶을 연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한 번 더 입증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 호킹의 일대기를 고작 로맨스로 풀어냈다는 혹평도, 번역된 제목에 대한 갑론을박도 알고는 있었으나, 영화가 끝난 이후 나는 현재의 번역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유한 "모든 것에 관한 이론"의 단 하나의 귀결은 결국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이기적이었을지도, 독단적이었을지도 모르는 호킹을 있는 그대로 받아낸 제인은,
그도 사랑했지만 그의 본질도 사랑했다.
언어학을 공부한 그녀가 호킹의 이론을 하나하나 마음 깊이 이해할 만큼 그녀는 그의 집념을 사랑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이 내 삶의 이유가 된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제인은 삶의 굴곡에 지쳐 또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난다.
하지만 물리학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의 삶이 사실은 그 모든 걸 떠받치고 있던 사랑의 일대기였다는 사실이,
그가 그 모든 사유와 집념 사이에 그것을 가능케한 한 여인을 두었다는 것이,
혹시 모를 앞으로의 나의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는 우주의 시작을 찾아내는데 인생을 바쳤지만, 그녀는 그 인생을 유지하는 것에 자신을 바쳤다.
호킹이 제시한 거대한 패러다임은 결국 사랑을 먹고 자란 셈이다.
언젠가 내게서도 그런 고백을 하는 날이 오기를.
너와, 너의 삶과,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나도 사랑해 보기로 했어.
설령 언젠가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