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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Apr 10. 2023

긴자에서 반나절

일본 여행기 두 번째

예전에는 여행 가면 새벽같이 번쩍번쩍 일어나서 7시 땡- 하면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곤 했는데 이제는 시동을 거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9시쯤 조식 뷔페로 내려와서 때론 뻔한 메뉴, 때론 낫또 같은 모험이 필요한 음식을 골고루 담아와 자리에서 천천히 밥 숟가락을 들었다가 커피잔을 들었다 하며 한 시간 정도 아침 시간을 보낸다.


remm Roppongi의 조식은 평이했지만 일반 다이닝 테이블과, 셰어용 대형 테이블, 바형 테이블과 스툴 의자를 고루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최근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곤 하지만 조식 뷔페가 붐비는 정도는 아니었고 빈자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서 창가에 앉아 건조한 도쿄 아침 풍경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기 좋은 장소였다.


@ 도쿄 국립신미술관

둘째 날 첫 일정으론 아침 산책 겸 네즈 미술관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웬걸, 구글맵을 펼쳤다가 휴관 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이 소식이 유독 청천벽력같이 느껴졌던 이유는 2019년에도 같은 이유로 네즈 미술관을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는 갈 수 있겠죠, 네즈 미술관..?


휴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빠르게 포기하고 이번 도쿄 여행의 친구, 『도쿄규림일기』를 읽다가 궁금한 곳을 가보기로 한다. 마침 네즈 미술관만큼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어떤 때에는 실제 눈으로 본 것만큼, 사진이 그것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울 때가 있는데 어떤 사진은 그 자체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건축가 구로가와 기쇼가 설계한 도쿄 국립신미술관은 공간 자체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곳이었는데 특히 파도처럼 완만한 곡선의 투명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너무나도 근사했다.



도쿄 국립신미술관 찍고 긴자. 오늘 점심은 스시, 그리하여 이타마에 스시를 가기로 한다. 오는 길에 본 미도리 스시는 늦은 점심시간이었음에도 웨이팅 줄이 무척 길었다. 역시 미도리가 나으려나 싶었지만 2019년에 깃발만 꽂아두고 방문하지 못한 곳들은 뒤늦게라도 가보기로 한다.



초밥집에서 나이 지긋한 장인분들이 나갈 때 "아리가또고쟈이마시타핫-!"하고 인사해주시는 거 좋아합니다

시부야에서 스크램블 교차로를 보면서 하치공 동상을 떠올릴 때도 그랬지만 어째서인지 실제 도쿄를 방문한 횟수에 비해 추억만 한가득이라 이십 대 초반에 가던 이치란 같은 음식점들을 아직도 당연한 듯 방문하게 된다. 그 세월 동안 입맛이 그다지 변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현지에서 맛보는 현지 음식은 단돈 3천 엔만으로도 시드니나 한국에서도 볼 수 없는 퀄리티의 스시를 만날 수 있단 점이 역시 좀 감격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게 역시 여행의 묘미지 싶고.



딸기! 케이크! 좋아하는 두 개의 조합, 무적의 딸기 케이크

별생각 없이 미츠코시가 보이길래 '미츠코시? 백화점은 역시 식품관이지' 하고 들어갔다가 한 시간째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긴자라 역시 입점한 스토어들의 라인업이 좋았고(토라야 양갱이라든지) 마침 딸기철이라 정말 일본 애니에이션에서 본 것 같은 딸기 쇼트 케이크가 한가득이라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광객은 행복해져 버렸다. 게다가 몽블랑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몽블랑 귀신은 눈이 돌아갈 뻔했고.


평소 메인 요리를 중심으로 식사를 하지만 일본의 쯔께모노(절인 채소)는 좋아하는 편이라 한 반찬 가게에서 쯔께모노를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피클이나 할라피뇨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느끼함을 잘 잡아주면서 입맛까지 돋워주는 게 쯔께모노지만 러기지에 이고 지고 갈 상상을 하다가 손에 들었던 대형 쯔께모노를 조용히 내려놓게 되었다. 네즈 미술관과 함께 다음 기회에 만나요, 우리.



다음 목적지는 그 옆에 위치한 문구점 이토야. 사실 문구점에 가면 굉장한 걸 산다기보단 빙글빙글 돌면서 구경을 실컷 한 후에 안 사면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은 귀여운 문구용품과 친구들에게 선물할 오미야게 혹은 생일 카드 같은 것들을 구입하곤 한다. 어쩌면 그냥 하나의 제품일 수도 있지만 일본 특유의 온갖 취향을 고려한 오백 종류의 반짝이는 상품들을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달력이라든가 마스킹 테이프라든가.



긴자의 마지막은 역시 무지. 예전엔 일본 여행 가면 북오프, 타워레코드, 만다라케를 가는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무지 가면 정신 못 차리는 어른이 되었고요. 네, 바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시드니에도 MUJI가 있고(의외로 들어와 있다) 서울에선 그것보다 조금 더 큰 무지를 만날 수 있지만 일본 갈 때마다 무지를 꼭 들르게 되는 이유는 일본에서 가장 다양한 구성과 가장 최근에 런칭된 제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5층짜리 무지 스토어라면 누구라도 눈이 핑핑 돌지 않겠어요.



small MUJI @ GINZA MUJI

한 층 한 층 샅샅이 매장을 훑으며 6층까지 올라갔더니 타나카 타츠야의 쟈근 전시, small MUJI전이 열리고 있었다. 매장 중간중간에 작가와 콜라보한 제품 사진들이 걸려있었는데 그 실물을 6층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전시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되니 럭키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 평일이라 전시도 한가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쟈근 전시는 4월 23일(일)까지 이어지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들러보시길.


사실 사람들에게 긴자는 고오급 동네로 알려져 있지만 내게 긴자란 무지와 로프트, 이토야와 미츠코시 지하 식물관, 그리고 기무라야의 동네로 기억된다. 숍 하나 보는데 뭐 그렇게 시간이 들겠어라고 하시겠지만 몇몇 곳들은 기본 5층 이상의 건물이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기본 한 시간은 소요되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 바로 긴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유잼 긴자를 샅샅이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최소 반나절 이상으로 일정을 여유롭게 잡는 편이 여러모로 안전하고 즐겁다는 말을 전해드립니다.






도쿄 이야기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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