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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May 23. 2023

웨이팅은 싫지만 카이센동은 먹고 싶어

도쿄 여행기 다섯 번째

오늘도 늦은 기상. 첫째 날 이만보를 찍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돈키호테에 들러 샤론파스와 입욕제를 구입했었다. 그리고 매일 밤 에너지가 15% 정도 남은 덜컹덜컹한 상태로 숙소에 돌아오면 입욕제를 풀어 20분 정도 바쓰를 하고 샤론파스를 척척 붙인 뒤 쓰러져 잠들기를 반복했으니 늦잠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얼마 전부터 커피를 마시면 쉽게 잠들지 못 하는 사람이 되어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도쿄 여행을 하는 동안은 밤 9시에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셔도 기절한 듯 잠을 잘 수 있었다. 역시 피곤함은 카페인도 무찌릅니다.


평일의 건조한 아침 도쿄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아 이 날도 창가 자리에 착석. 아후리 라멘도 그렇고 후지산의 영향인지 일본에는 산을 모티프로 한 로고가 많았는데 바로 옆건물의 후지야마 바는 이름 그대로 후지산 모양의 로고를 가진 가게였다.



조식을 먹었으니 이제 점심을 먹으러(?) 출발. 점심까지 다른 일정을 넣지 않고 조금 서두른 이유는 오늘의 목적지가 츠지한이기 때문이다. 일찍 가면 웨이팅이 조금 덜 하려나 했지만 여차저차 결국 1시간 정도 웨이팅을 한 후에야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웨이팅 있는 음식점은 잘 안 가게 되었지만 언제나 특별전형을 통과하는 예외는 있기 마련이니까. 노 웨이팅의 바늘구멍을 통과한 음식점이 있다? 그게 바로 츠지한 니혼바시 점입니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하라다 히카 선생님의 영향으로 오늘도 야식 라멘까지 총 네 끼를 먹을 예정이라 가볍게 기본 우메로 주문. 가격은 천 엔이 조금 넘었던 거 같은데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단 사실에 시드니 시골쥐는 또다시 홀로 조용히 눈물을 닦았습니다. 시드니도 서울도 물가가 많이 오른 탓에 이제는 예전처럼 일본이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들기도 했다.


변함없이 영롱한 모습의 카이센동. 식사 전에 내주는 회부터 시소잎이 들어간 뜨끈한 도미 국물까지 완벽한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갑자기 드러눕고 싶어 졌지만 여행객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본다. 다음 목적지는 아사쿠사.



아사쿠사에 가기 전 오후 커피는 푸글렌에서. 예전에는 일본 가면 도토루나 우에시마 구리잔 커피지! 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모두 푸글렌에 가길래 저도 한번 가봤습니다. 아사쿠사 점이라 북유럽 인테리어와 기모노 입은 사람들이 교차되는 풍경이 재밌었다.


큰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한 여성분이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셨다. 그런데 자꾸 흘끗흘끗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조금 신경 쓰이던 찰나에 다행히 수줍게 말을 걸어주셨다. 카메라가 멋지다고. 카메라는 잘 모르지만 셔터음 소리를 좋아하신다며 잠깐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도쿄 여행 잘하세요 라는 인사를 받고 헤어졌다. 언제 어디서든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럼없이 표현해 주는 사람들은 항상 귀하고 반갑다.



점이나 사주 같은 것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일본 신사에 가면 오미쿠지를 꼭 뽑아본다. 올해도 길(吉) 당첨.


평일임에도 끊이지 않는 인파 덕분에 아사쿠사 역부터 센소지까지 슬슬 걸으면서 흐르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좋았다. 작년 말에 일본 무비자가 풀린 이후로 도쿄 여행을 가면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정말 많이 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일정에 있던 곳들이 대부분 평온한 도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작복작한 아사쿠사도 즐거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먹고 싶지만 웨이팅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또다시 저녁 피크 타임을 피해 우에노 역으로. 이번에도 어마어마한 대기줄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운 좋게 빈자리를 꿰찰 수 있을까.


아사쿠사 역에 도착해 지하철 패스를 꺼내는데 지갑 속에 길(吉)이 적힌 오미쿠지가 고이 접혀있었다. 기분 좋은 예감과 함께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제목은 백세희 작가님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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