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여행기 네 번째
여행지에서 한 번 방문한 음식점을 재방문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행은 다른 말로 제한된 시간과 끼니를 의미하기도 하니까 한 달 살이 같은 여유로운 여행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음식점을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음식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다음날 재방문 의사가 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런 일은 자주 발생하지 않지만 어쩌다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아무래도 두 팔을 벌려 환영부터 할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쯤에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한 음식점을 세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먹물 파스타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수차례 지나 도착한 그곳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동네 파스타 집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먹물 파스타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와인이 먼저 서빙되었고 곧 등장한 먹물 파스타. 포크로 스파게티 면을 크게 돌돌 말아 한 입을 먹자마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집은 진짜라는 걸. 그렇게 첫눈에 반해 삼일을 연달아 방문했다. 먹물 파스타,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 그리고 다시 먹물 파스타로의 귀환. 베네치아에서 일정이 길었냐면 그렇지 않았다. 한 달여의 유럽 일정 중 베네치아 일정은 4일 정도 됐는데 이탈리아 내에서 관광객들에게 악명 높은 물가를 자랑하고 추가로 자릿세까지 받는 도시에서 이런 음식점을 발견한 게 그저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당시 그 파스타 집을 재방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단 한 곳의 음식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나는 이곳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에 바질과 고추를 넣고 볶은 팟카파오무쌉을 먹은 치앙마이의 한 로컬 식당. 다음날이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님만해민에서 쇼핑한 후라 쇼핑백이 한가득이었고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황이었다. 그냥 숙소에 가서 드러눕고 싶었지만 시계는 이미 저녁때가 지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을 해결한 후 곧장 숙소로 가고 싶은데 하필 방문하려고 미리 찜해둔 음식점들은 다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님만해민 거리 한복판에서 구글맵을 켰다. '탈락, 여기도 탈락, 볶음밥은 어제도 먹었고 이번에는 좀 새로운 메뉴를 먹고 싶은데... '. 메뉴를 확인하고 리뷰를 체크하다가 바로 5분 거리에서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을 발견했다. 혹시 서양인 입맛에만 맞는 곳일까 싶어 국내 블로거들의 리뷰를 찾아보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방문하게 된 Hong Tauw Inn.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편한 곳에 앉으라며 안내해 주셨고 자리에 앉아 빠르게 메뉴판을 훑었다. 많은 태국 레스토랑이 그렇지만 이곳도 메뉴가 김밥천국 수준으로 많아서 한참을 보다가 조금 익숙하고 평도 괜찮은 팟카파오무쌉을 주문했다. 현재 살고 있는 시드니에선 타이 레스토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한국인에게 친숙한 팟타이만큼 잘 알려진 메뉴 중 하나가 팟카파오였다. 제육덮밥처럼 간단히 밥을 먹고 싶을 때 돼지고기(무쌉)나 치킨(카이), 새우(꿍) 중에 한 가지를 골라 바질과 고추에 볶아주는 요리인데 현지의 맛은 얼마나 다를까 싶어 호기심에 주문한 메뉴이기도 하다. 돼지고기에 추가로 계란 후라이를 올리고 잠시 숨을 돌렸다. 오래된 시계와 선풍기 등등 소품과 인테리어 때문에 마치 90년대 태국 영화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오래되고 고즈넉한 느낌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등장한 팟카파오무쌉. 바나나잎 위에 정갈하게 올려진 볶은 고기와 흰쌀밥, 그리고 계란 후라이. 마치 튀겨지듯 요리된 계란 후라이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집은 잘하는 집이라는 걸. 약간의 기대감을 품은 채 숟가락으로 계란을 턱턱 잘라 밥, 고기와 함께 한 입을 먹었다. 와… 이 메뉴가 이런 맛이었다고? 시드니에서 먹었던 팟카파오는 항상 달고 느끼한 맛 때문에 가끔 먹긴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진 않는 메뉴였다. 그런데 이 집은 느끼함이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매콤함을 자랑했다. 내가 그동안 먹었던 것과는 완전 다른 메뉴,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맛. 너무 입맛에 맞는 요리라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정말이지 내일 또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맛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이 가게를 재방문했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 했다. 여행 초반에 이 가게를 발견했다면 한 번쯤 더 들렀을 텐데 출국하는 날 점심에 바로 또 같은 메뉴를 먹기에는 아직 못 먹어본 타이 음식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당이 이곳인 걸 보면 어지간히 아쉬웠구나 싶다. 그래서 주변에 치앙마이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들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이 가게를 열심히 영업하게 된다. 저 대신 가서 팟카파오무쌉을 먹어주세요. 이 메뉴를 한번 먹어보면 나중에 또 생각나실 걸요? 왜냐하면 제가 바로 그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