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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뚜벅뚜 길리랑 발리

길리/발리 여행기 첫 번째

by Ronald
호주 빠져나가는데 5시간, 그 이후가 1시간 30분이었던 비행

언젠가 가겠지라고 생각했던 발리를 드디어 가게 되었다. 호주에서 발리로 여행을 가는 건 한국에서 동남아로 여름휴가를 가는 것처럼 흔한 일인데 그 이유는 비교적 거리가 가깝고 저렴한 물가 영향이 크다. 언젠가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미래가 2025년 4월 말이라는 구체적인 날짜가 될 수 있었던 건 가고 싶은 곳이 생겼기 때문인데 그곳은 바로 길리 트라왕안. 줄여서 길리 T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다.


길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웹툰 작가이자 카피라이터, 시인이기도 한 루나파크님의 블로그를 통해서였는데 그 이후로 잊을만하면 주변인들로부터 길리 간증이 이어졌고 길리 못지않게 한달살이, 요가, 디지털 노마드 등의 키워드와 함께 발리의 위상도 점점 높아져서 더 이상 여행을 미룰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발리는 처음이었지만 좋으면 또 오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있는 자제력과 없는 자제력을 모두 끌어모아 계획을 세웠다. 길리를 메인으로 하되 우붓을 조금 곁들이는 여행. 그렇게 3박 4일의 길리를 포함한 6일간의 발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발리 덴사파르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한 발리의 첫인상은 (일단 덥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 러기지가 파손되지 말라고 가방이 하나씩 툭툭- 나올 때마다 쿠션으로 그걸 받쳐주던 항공사 직원과 고젝 타러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피켓 들고 기다리는 기사님들이 오천 명 계셔서 왠지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환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나라로 여행을 오니 동남아와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묘하게 조금씩 전부 다른 풍경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정말이지 이 새로움이 너무너무 좋았다. 어쩌면 별 것 아니기도 한데 이심 개통, ATM 현금 인출, 고젝으로 운전기사 예약 등이 모두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엄청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이 맛에 여행 다니는 거지.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처음 가보는 나라를 이기지 못하는 건 아마 이런 이유가 클 것이다.



스미냑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때와 가까운 시간이었고 기내식으로 먹은 조식이 마지막 식사였어서 바로 구글맵을 켰다. 첫 끼니를 생선구이로 할까 새우로 할까 여행 전에 즐거운 고민을 했는데 숙소까지 오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지다 보니 막상 숙소에 도착하자 그런 고민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다행히 5분 거리에 찜해둔 식당이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찾은 삼발 쉬림프.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쯤이라 아직 한산한 시간이었고 하늘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고 싶은 메뉴를 3개 시켰다.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만 혼여의 치명적 단점은 역시 식당에서 여러 가지 메뉴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인데 인도네시아는 저렴한 물가로 이게 극복 가능했다.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큰 부담 없이 마음껏 시킬 수 있었고 그래서 여행 내내 행복한 상태로 다닐 수 있었다.



코코마트 사전답사

허기가 가시니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한 두어 시간은 스미냑 시내를 벅뚜벅뚜 열심히 돌아다녔다. 가게 앞에 놓인 알록달록한 차낭사리를 보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스미냑 비치가 멀지 않아 잠깐 다녀오기도 했는데 기대와 달리 비치 주변에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한 가게들이 많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숙소가 다행히 메인 도로에 있어서 밤에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빠당바이 항구로 출발할 스케줄이어서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나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걸 보니 발리에 온 게 맞구나

빠당바이에서 11시 배를 탈 예정이라 8시 30분에 택시 픽업을 미리 예약해 놨다. 발리는 다른 여행지랑 달리 뷔페가 아니라 한 가지 옵션을 선택하는 방식의 조식이 많았는데 스미냑에서 머문 숙소는 흔치 않은 뷔페식이라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 먹을 생각에 조금 신이 났다. 사실 인도네시아 음식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는데 대부분의 메뉴가 입에 잘 맞았고 생각보다 매콤한 음식이 많다는 점이 신기하고 좋았다. 뷔페 메뉴 중에 치킨 수프가 있길래 한 국자 떠왔는데 이게 은은하게 매워서 자꾸만 손이 가는 메뉴였다.



어떡케 보트가 방아깨비
항구에 있던 귀여운 매점

발리 본섬에서 길리까지는 총 5시간 정도가 걸렸다. 택시를 타고 먼저 빠당바이 항구로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길리로 들어가는 루트였다. 그런데 택시를 타고 항구로 가는 도중에 사고가 나서 길이 막히기 시작했고 혹시나 배를 놓치진 않을까 하고 살짝 초조해지던 찰나에 택시 기사님이 잽싸게 갓길과 차선 그 어드매로 저렇게 차를 살짝 빼서 달려주셨고 다행히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길리T. 마참내.



더워

길리T에 도착하자마자 한 건 선셋 스노클링 예약이었다. 도착하니까 어느덧 오후 2시가 다 되었는데 이대로 소중한 하루를 애매하게 날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날 대충 알아보니 선셋 스노클링은 비교적 늦은 오후인 3시 30분쯤 출발한다고 해서 시간이 그럭저럭 맞을 것 같았다. 숙소에서 나가면 눈앞에 바로 마사지샵, 바이크샵, 스노클링 투어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그중 한 곳에 가서 물어보고 현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예약을 완료했다. 요즘엔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것들을 미리 계획하고 예약하다 보니 이런 아날로그식이 가능한 곳에서는 조금 마음이 편해지고 만다.



수면 위로 잠깐 숨 쉬러 올라온 부기 발견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셋 스노클링은 대만족이었다. 모닝 스노클링보다 물에 머무는 시간이 2시간 정도로 조금 짧지만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으러 한 식당에 갔다가 너무 더워서 살려주세요 상태가 되었는데(길리에는 에어컨 없는 식당이 대부분이다) 물에 들어가니까 이 더위가 금세 싹 가셨다. 매일매일 스노클링을 하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식으로 물에 들어가서 그런지 길리에서는 오히려 더운 줄 모르고 잘 다녔는데 오후의 태양이 정말정말 뜨겁다는 사실을 이후 우붓에서 깨닫게 되었다.


이 날은 처음으로 구명조끼를 안 하고 바다에서 둥둥 떠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예전에 피지로 여행을 갔을 때 망망대해에서 스노클링을 한 적이 있는데 스노클링이 처음이기도 했고 당시에는 수영도 못했던지라 내내 구명조끼를 입고 다녔는데 그래서 바다에 첨벙첨벙 뛰어들어 자유롭게 노는 서양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길리 바다는 워낙 부력이 좋기도 했고 오리발 효과가 컸지만 그래도 좀 더 자유롭게 물놀이가 가능해졌다는 게 이번 여행의 뿌듯 포인트였다.



같은 그룹에 여럿이 여행 온 폴란드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역시나 다이빙과 수영 솜씨를 자유자재로 뽐냈다. 그래서 가이드가 나를 포함한 몇몇을 주로 신경 써줬는데 거북이를 발견할 때마다 열심히 알려줘서 두 시간 동안 거의 열 마리에 가까운 바다 거북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 정말 큰 파파 거북이가 있었는데 사이즈가 너무 거대해서 몇 살일까 조금 궁금할 정도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을까? 하면서.


보통 아침이 오후보다 물이 맑다고 하는데 다른 날보다 이날 오후의 물이 정말 깨끗했고 바람도 세지 않아서 가장 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두 포인트에서 스노클링을 마치고 후에는 보트 위에서 선셋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 살짝 구름이 있었지만 그래도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보는 선셋은 그 자체로 늠늠 낭만적이었다.



수미사테집 가다가 만난 누구세옹 고영

저녁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수미사테집에 다녀왔다. 테이블에 앉았는데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계속 들려왔고 낮에 길리행 보트에서 만난 한국분을 여기서 또 만나서 너무 웃겼다. 역시 적극적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참고하는 한국인들. 두 개의 메뉴에 밥을 추가하고 길리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이 날은 기분 좋게 빈땅도 한 병 주문했다. 여기가 맞아? 싶을 정도로 가는 길에 조금 어둑했는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무사히 숙소로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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