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볼 때마다 우는 병

뮤지컬은 내 감정의 재활치료실이다

by 강 산

세상은 점점 메말라 간다.

그리고 나는 그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다.


감정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법을 배웠고,

감탄 대신 분석을,

공감 대신 거리 두기를 택하는 데 익숙해졌다.


아침엔 뉴스를 켜고,

낮엔 일정을 채우고,

밤엔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운다.


모든 시간에 목적이 붙고,

모든 감정엔 효율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뮤지컬을 보러 갈 때만은 그 모든 체계가 무너진다.


세상이 만든 갑옷을 벗고,

맨살로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명이 꺼지고, 첫 음이 울릴 때,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운다.




눈물이 시작되는 자리


그 눈물은 슬퍼서 흘리는 게 아니다.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다.


6개월 만에 겨우 한 편의 뮤지컬을 보러 들어갔을 때,

그 어두운 객석은 내게 가장 환한 세상이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웃어도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오지만,

무대 위의 배우들이 첫 가사를 내뱉는 순간,

나는 온 마음이 환해진다.


“아, 나 이런 사람이었지.”

무언가를 이유 없이 좋아하던 사람.

좋아한다는 말만으로 하루가 환해지던 사람.


그 시절의 나를,

나는 뮤지컬 속에서 다시 만난다.


뮤지컬은 나에게 거울이다.

현실 속에서 잊고 살았던 내 순수함을 비춰주는.


그래서 나는 자꾸 운다.

내 안의 오래된 사랑이,

다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뮤지컬의 인물들은 대부분 완벽하지 않다.

그들은 실수하고, 후회하고, 울고, 사랑하다가 무너진다.


가끔은 도망치고, 가끔은 비겁하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결함이 사랑스럽다.

그들의 불완전함 속에서 나를 본다.


나는 늘 계획적으로 살려고 애쓴다.

하루의 시간표를 세분화해 두고,

오늘도 ‘완벽한 나’를 연기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연기가 벗겨진 날엔

스스로를 미워했다.


“오늘은 망했어.”

“너무 게을러.”

“왜 이렇게 부족하지?”


그럴 때마다 새벽 네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뮤지컬을 보면서 깨닫는다.

무대 위의 그들도, 실패를 통해 빛나고 있음을.


조금 틀리고, 조금 넘어져도,

그 불완전함이 곡이 되고 대사가 되어

결국은 사랑받는다는 걸.


그래서 나는 그들을 보며 배운다.


실수해도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랑받을 수 있다.


그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신념이 된다.




무대 위의 모든 존재는 빛난다


뮤지컬이 아름다운 이유는, 주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무대 위엔 수많은 이름 모를 이들이 있다.

무대의 한쪽에서 단 한 줄 노래를 부르고 사라지는 앙상블,

주연의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스윙,

조명을 조정하고 커튼을 올리는 무대감독의 손끝까지.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이상한 감동을 느낀다.


주연이 아닌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온 마음을 쏟는다.

누구도 자신을 ‘작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조명이 주인공만 비출 때,

그 빛의 바깥에서도

다른 배우들은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 있다.


관객의 눈에 닿지 않아도,

그들은 자기 위치에서 노래하고 춤춘다.


그 모습을 보면 나는 늘 마음이 정화된다.


‘이렇게 살아야지.’


조명이 없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누군가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내 삶의 무대 위에서 묵묵히 빛나는 사람으로.




사랑으로만 가득 차는 순간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

나는 언제나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현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지만,

그 안에 희미한 온기가 남아 있다.


세상의 소음은 잠시 멀어지고,

그 대신 배우의 숨소리, 조명의 잔향,

마지막 커튼콜에서 터져 나온 박수의 파도가 내 안에 남는다.


그건 사랑의 잔여물이다.

누군가의 열정이 내게 남긴 흔적.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뮤지컬은 나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고 무엇보다 불완전한 나 자신을.




엔딩 넘버


나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바쁘게 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평가하고,

계획하고, 수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울 수 있다.

뮤지컬을 볼 때마다 울고, 그 울음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어쩌면 나는 ‘뮤지컬을 볼 때마다 우는 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아직 잃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병이라면,

평생 앓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져도,

나는 그 병을 낫고 싶지 않다.


무대가 꺼지고, 조명이 사라져도,

그 사랑의 불씨만큼은

내 안에서 여전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