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자이며 상담교육자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교원으로 일하게 되고 난 뒤 지금은 일시적으로 상담을 하고 있진 않지만 지난 수년간 꾸준히 내담자들을 만나 왔다. 또한 상담교육자로서 전문상담가가 되고자 대학원에 진학한 수련생들에게 상담의 이론과 기술들을 가르치고 사례에 대한 슈퍼비전을 제공하며 실제 상담 사례들을 계속해서 접하고 있다.
상담을 가르치고 또 여전히 배워나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심리상담을 배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인간의 마음이 상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이유들, 그리고 그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적성에 잘 맞고 여전히 흥미롭다. 또한 타인의 회복과 성장을 돕는 일은 그 자체로 내 삶에 의미와 보람을 더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 상담을 공부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여러 이유들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상담에서 배운 이론과 기술들이 육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함께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상담에서 사용하는 기본 기술들을 육아에 적극 활용해오고 있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양육자지만 상담기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만큼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상담과 육아는 여러모로 참 닮았다. 무엇보다도 상담과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계'라는 점이다. 관계는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좋은 치료적 관계는 내담자의 외부적 요인을 제외하면 상담에서 가장 강력한 치료 요인으로 꼽힌다. 육아에서도 아이를 위한 아무리 좋은 무언가가 있다한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해친다면 소용이 없다.
상담도 육아도 일종의 패턴을 제시하는 이론들이 있지만, 결국 내담자와 아이는 '고유'한 존재들이다. 우울증을 가진 100명의 내담자들은 그들 간에 비슷한 특징은 있을지언정 100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상담에 나타난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성격, 기질, 행동을 일반적인 단어들로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요렇게 올망졸망하게 생겨서 요런 예쁜 표정을 짓고 내게 말을 건네는 아이는 오직 내 아이 하나뿐이다.
상담과 육아에서 최종적인 목표는 내담자와 아이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모든 상담에는 그 과정을 끝마치고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맞서도록 떠나보내는 종결의 순간이 있다. 오은영 박사님도 방송에서 여러 번 강조하셨듯이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가 건강하게 독립하도록 돕는 것이다. 아이를 방임해서도 안되지만, 세상을 탐험하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아이의 자유를 과하게 해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담자와 부모는 일정 부분 양육을 담당하지만 결국 삶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이는 내담자 그리고 자녀이다.
이 외에도 상담과 육아에는 여러 공통점들이 있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점, 타인의 성장이 나의 내적인 기쁨이 된다는 점, 나의 한계와 바운더리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점 등. 이런 공통점들로 인해 때론 상담의 기술들이 육아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상담에는 마이크로스킬이라고 부르는 기본적인 상담기술들이 있다. 특정한 이론의 지향과 관련 없이 상담자로서 기본적으로 훈련해야 할, 내담자의 호소문제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내담자에게 상황에 알맞게 제공되어야 할 기술들이다. 교과서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술들이 있다.
질문하기 - 열린 질문과 닫힌 질문
재진술하기
감정 반영하기
공감적 표현하기
표정 및 행동 등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요약하기
불일치를 직면시키기
스스로의 경험을 개방하기
'지금-여기'에 집중하기
해석하기
타당화하기
재구조화하기
조언 또는 피드백 건네기
정보를 알려주는 등의 심리교육 진행하기
침묵 다루기 또는 기다려주기
이러한 상담의 기본기술들은, 그 기술의 앞에 '아이에게' '아이의 말을' '아이와 함께' '아이와 대화할 때' 등의 말만 붙여주면 훌륭한 육아기술이 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상담의 개입방법, 원칙, 또는 실천들이 육아에 적용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어구들만 붙여주면 육아에서 한 번쯤 꼭 생각해봄직한 주제들이 된다.
구조화하고 규칙 정하기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기
변화를 기록하기
나를 활용하기
위기상황에 개입하기
자율성을 지지하기
한계와 바운더리 인식하기
저항을 다루기
번아웃을 예방하고 양육자인 스스로를 돌보기
변화를 위한 대화하기
트라우마 경험을 고려하기 (트라우마인폼드케어: Trauma-Informed Care)
이러한 상담기술들을 가르치고 연습하도록 하는 상담기술 수업은 내가 지금껏 가르쳐온 과목들 중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다. 어떤 학생들은 그냥 일상에서의 대화기술이 아니냐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하지만 수업을 통해 실천의 어려움을 깨달으며 겸허해진다. 또 어떤 이들은 처음엔 긴장하고 자신 없어하지만 한 학기 동안 배움과 연습을 거듭한 뒤 나중엔 한층 자신감을 얻는다. 육아의 기술도 마찬가지리라 믿는다. 자만할 것도, 자신 없어 위축될 것도 아니요, 그저 배우고 연습해야 할 일이다.
이 시리즈를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다.
자녀와 건강하게 소통하고 아이의 말을 더욱 공감적으로 경청하고 싶은 부모
일상에서의 사례를 바탕으로 육아에 도움을 얻고 싶은 부모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의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