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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Feb 11. 2022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기억이 있나요

'주의집중'과 '비언어적 소통'

"아빠, 이것 좀 봐."

"(속닥속닥) 아빠 지금 미팅하고 있잖아, 나중에 볼게."

"아빠, 이거 진짜 잠깐만 보면 돼. 진짜 잠깐이야."

"(속닥속닥) 아빠 지금 미팅하고 있다고. 지금 못 본다고."

"아빠, 제발. 진짜 제발 이거 잠깐만 봐줘. 끈을 이렇게 하면... (어쩌고 저쩌고) "

"(고개는 잠시 돌리지만 건성으로) 응, 그래. 그러네. 맞아. 오! 대단하다. 멋진데?... 이제 됐지?"


오전에 업무 미팅을 하던 중이었다.  무슨 끈으로 만든 걸 한 번만 부디 봐달라며 애원을 하는 아이를 돌려보내기 위해 마지못해 잠깐의 관심을 줬다.  그 애원의 결과로 나의 잠깐의 시선을 얻어내고선 쪼르르르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건성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난 뒤, 괜스레 마음이 헛헛했다.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기억이 있나요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이의 말을 들어준 기억을 새삼 떠올려 본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이에게 온전하게 집중을 하는 시간을 따져 보면 하루 중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아이에게 온전히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하여, 눈을 아이에게 맞추고, 목소리 톤과 얼굴의 표정도 아이, 몸을 아이 쪽으로 완전히 향하여 아이의 말과 행동과 표정을 듣는 일이다. 


이렇게 적고 보면 별 것 아닌 것만 같다.  하지만 하루를 돌아보면 정말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며 지내고 있는 만 4살 아이는 자기가 그린 그림,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함께 놀만한 놀이를 끊임없이 가져온다.  때로는 손에 닿지 않는 장난감과 옷을 꺼내 달라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쏟거나 엎질러서 나를 부르기도 한다. 


집에 있으면서도 재택근무를 할 때가 많다 보니, 이유가 무엇이든 아이가 말을 걸어올 때면 눈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이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해 줄 때가 많다.  어떨 때는 설거지를 하거나 집 청소를 하며 아이의 말에 대꾸해 주기도 하고,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보며 아이의 말에 대꾸해 주기도 한다.  곰곰이 따지면 아이의 말과 일거수일투족에 온전하게 집중을 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하루에 10분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주의집중'과 '비언어적 소통' 


심리상담에서는 주의집중 기술 (Attending skills) 과 비언어적 소통 (nonverbal communication) 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주의집중과 비언어적 소통은 대화의 '내용'이 아닌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아이에게 비언어적 소통방식을 활용한 온전한 주의집중을 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이 그러한 태도만으로 아이의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눈을 맞추고, 몸을 기울이고, 우리의 온 주의를 아이에게 집중한다면 아이는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단 한 번이라도 타인으로부터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는 이해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또 존중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온몸과 마음으로 들어주는 부모를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고, 부모에게 온갖 것을 더욱 얘기하고 싶어질 것이며, 자기 모습 그대로도 받아들여질 만한 존재라는 걸 차차 알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는 온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길을 마주하며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고, 부모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상대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차린다.  말의 내용이 암만 따뜻하고 공감적이어도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건네는 위로의 말이라면 전혀 와닿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의 얘기를 전심으로 집중하고 있다면 어른들도 감동을 느낀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언어가 아니지만 비언어적으로 나타나는 부모의 목소리 고저, 톤, 바디랭귀지, 얼굴 표정 등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다른 어떤 것보다 앞서서 '주의집중'이 '경청'의 기본이 되는 이유다. 




생각해볼만한 것들: 3Vs + B


그렇다면 부모로서 '내가 너를 온 마음 다해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신경 쓸 수 있을까.  3Vs + B 라는 개념이 있다.  즉 3가지의 V와 하나의 B다.  눈맞춤 (Visual/Eye contact), 음성 (Vocal qualities), 대화 따라가기 (Verbal tracking)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디랭귀지 및 얼굴 표정 (Body language & facial expression) 이다.  


'눈맞춤'은 말 그대로 아이의 말을 들을 때는 시선을 아이에게로 향하고 적절하게 눈을 맞추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눈을 오랜 시간 응시하는 것이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항상' 눈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눈을 맞추는 것이다.  적절함의 정도는 부모마다, 아이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음성'에 대한 부분은, 기본적으로 대화를 할 때에 '내가 너의 말을 경청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우리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말로는 사실 '말투'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투가 유난히 뾰족하고 날이 서 있어서 가끔 '왜 짜증을 내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거꾸로 말하면 목소리 톤을 통해 따뜻한 관심을 아이에게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아이가 고민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을 얘기할 때는 명랑한 목소리로 대꾸하기보다는 낮고 무거운 톤으로 얘기함으로써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말의 속도나 목소리의 크기도 내용을 넘어서 아이에게 부모의 태도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어떤 부모는 조급하거나 불안함을 느낄 때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화가 나면 언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 따라가기'는 아이가 말하는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거나 끼어들지 않음으로써 충분히 이야기를 잔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더라도 부모의 반응은 아이의 그다음 말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반응이 적극적이면 아이는 해당 주제를 계속 얘기할 것이고, 시큰둥하면 한 두 마디를 더 해보다 멈출 것이다.  아이가 "엄마, 나 오늘 유치원에서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를 했는데 내가 이렇게 우리 가족을 그린 거야"라고 말한다면, "오, 그랬구나!", "오늘 OO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했어?", "정말 우리 가족을 그렸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고, 그런 반응들에 따라 아이의 다음 말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기억하면 좋을 단 한 가지는 아이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주제를 계속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잘 따라가 주는 것이다. 


'바디랭귀지' '얼굴 표정' 역시 아이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하곤 한다.  바디랭귀지와 얼굴 표정만으로도 수십 가지의 표현이 있을 수 있다.  눈살을 찌푸리기, 미간에 힘을 주기, 입술을 깨물기, 팔짱을 끼기, 비스듬히 째려보기, 심각한 얘기 하는데 미소 짓기, 웃어 넘기기, 한숨 내쉬기, 무표정으로 바라보기 등.  아이는 이런 부모의 바디랭귀지와 얼굴 표정으로 인해 쉽게 주눅이 들고 또 좌절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과 응원이 담긴 눈빛과 표정, 열린 제스처와 관심을 나타내는 바디랭귀지로 아이의 마음을 다시 금방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사실, 주의를 집중하는 방식과 대화할 때 나타나는 비언어적인 부분들은 스스로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특히 대화할 때 나타나는 비언어적인 행동양식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거니와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 


먼저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나의 스스로의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소통의 특징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와 대화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면, 아이에게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도 좋다.  특히 짜증을 낸 적이 없는데도 "왜 이렇게 짜증스러워?"라는 말을 종종 듣거나 딱히 화를 안 내는데도 "별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이 좋다.  피드백을 들었다면 나의 어떤 언어적인 또는 비언어적인 특성들이 (목소리, 톤, 말투, 눈 맞춤, 얼굴 표정 등) 그렇게 생각이 들도록 했는지에 대해서도 들어보는 게 좋다.  이런 노력 뒤에 피드백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아빠가 학교에 대해 물어볼 때 눈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고 있어서 뭐든 말하기가 쉽지 않았지?"라고 얘기하며 다가간다면 아이가 어떻게 알았냐며, 또는 이제야 알았냐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녹화다.  가장 적나라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대단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아이와 대화를 하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약 10-20분 정도만이라도 비디오를 촬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비디오로 촬영된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기회가 없다.  그 비디오가 자녀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라면 더욱 없을 것이다.  비디오로 촬영된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내 모습을 보는 건 사실 낯간지럽고 민망한 일이다.  생각보다 낯선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혼자산다' TV쇼를 보면 많은 출연자들이 '어우, 나 왜 저래!"라며 몸부림을 치곤 하는데,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본인의 '주의집중' 및 '비언어적 소통'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을 넘어서 '남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궁금하다면 한 번 꼭 해볼 만하다. 




아이의 양육자인 부모는 아이의 상담자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한정된 시간 동안 아이와 지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 대화할 때마다 온전하게 주의를 집중하거나, 언제나 최적의 비언어적인 소통방식을 보이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상담을 직업으로 가진 나 역시 아이에게 전문상담자가 되어줄 수는 없다.  


다만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번쯤은 스스로 질문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 단 10분 또는 15분이라도 모든 시선과 관심을 아이에게 돌린 채로 아이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지.  스마트폰이나 집안일이나 이메일 등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온전히 아이에게만 집중했던 시간이 잠시라도 있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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