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놀이 그리고 평온함 유지
어느 한산한 주말 딸의 제안으로 우리 가족은 집 근처 ‘히어로보드게임카페’를 갔다. 얼마 전 평일, 학교 친구들과 각자의 어머니들과 우연히 들렀는데 그때 했던 보드게임이 그렇게 재밌었다며 아빠와 같이 하고 싶다는데 어찌 안 갈 수 있겠나? 더군다나 딸의 최애 간식 중 하나인 맛있는 감자튀김까지 팔고 있으니 그곳은 딸에겐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딸은 여기저기 기웃하다 두 가지 게임을 가져왔다. 하나는 완구를 이용한 보드게임인 ‘코코너츠’라는 게임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드만 달랑 있는 ‘페이퍼 사파리’였다.
‘코코너츠’를 짧게 설명하면 아래위로 팔이 움직이는 원숭이 인형을 자기 앞에 하나씩 둔다. 원숭이 인형 뒤에는 가로 3개, 세로 3개로 컵을 바닥에 깔고, 한 명씩 차례대로 원숭이 팔을 발사대로 사용해 컵 속에 코코넛 공을 넣는다. 컵에 코코넛 공을 넣으면 컵을 가져가고 총 6개를 차지하면 승리한다. 관건은 원숭이 팔의 발사대를 아주 적절한 힘으로 잘 사용해야 하기에 감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반면 ‘페이퍼 사파리’의 경우 다른 거 필요 없이 카드덱 딱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 한 판당 시간도 짧은 편이라 속도감 있게 즐길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놀이였다. 우선 각자 카드를 6장 받은 후 자기 자리에 앞면을 확인하지 않은 채 3장씩 2줄로 둔다. 처음에 각자 자기 카드 중 1장을 골라 앞면으로 뒤집는다. 그 후 중앙에 더미로 쌓여있는 카드를 순서대로 한 장씩 가져와 숫자를 확인하고 덮여 있는 자기 카드와 바꾸거나 혹은 버리거나를 선택한다. 한 명이라도 자신의 6장 모든 카드를 앞면으로 뒤집으면 그대로 게임은 끝난다. 그리고 각 카드에 적혀 있는 점수를 합산해 점수가 가장 낮은 사람이 이긴다.
결과적으로 ‘코코너츠’는 딱 한 판했다. 준비물도 많을뿐더러 원숭이 완구를 사용해 공을 컵에 넣을 때 힘 조절에 실패할 때가 많았다. 근데 이 공이 작고 탄력도 있어 이리저리 잘 튀기에 찾아야 할 일이 많았다. 재밌기는 한데 번거롭다고 할까? 한 판했더니 딸은 자연스럽게 ‘페이퍼 사파리’로 손이 갔다. 새로운 게임의 룰을 대충 파악하고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너무 재밌는 거다. 목표는 단순하다. 자신의 카드 6장을 모두 뒤집어야 하고, 그 합이 가장 적으면 이긴다. 근데 그 과정에 자신의 의도대로만 할 수 없도록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가령 ‘타잔’이라는 특수카드가 나오면 반드시 자기 카드와 바꿔야 한다. 문제는 바꾼 카드를 버리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준다는 점이다. 다음 사람은 그 카드를 ‘타잔카드’가 놓인 자리에 있던 자신의 카드와 바꿔야 한다. 결국 카드는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섞이게 되고 엉망이 된다. 우리 가족 셋이서 하는 이 게임은 ‘훌라’만큼 재밌었고 우리는 결국 예정된 시간을 살짝 넘겨 추가 비용을 내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쉬워 결국 그날 저녁 이 카드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며칠 후 주문한 카드는 집에 도착했고 우린 룰을 좀 더 꼼꼼히 읽은 후 자기 전에 게임을 했다. 새 카드의 빳빳함을 느끼며 마냥 즐거울 것 같은 시간을 기대했건만 문제는 갑자기 터졌다. 지기 싫었던 딸이 내가 ‘타잔카드'를 사용하려고 하자 자기가 손해 본다며 거부했고, 난 처음에는 그냥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 게임이 끝나고 다음 판을 시작했지만 비슷한 일이 또 발생했고 이번에는 내 생각대로 사용했다. 딸의 카드덱은 엉망이 됐고 결국 딸이 아닌 엄마가 어부지리로 이기게 됐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결국 딸은 기분 나쁘다며 울고 말았다. 이젠 좀 컸구나 하고 어린이로 대접하고 살짝 집중하며 게임을 했지만 더는 즐거운 게임이 아니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난 느끼고 있었다. 그래 지금 이 순간, 이제부터 진짜 집중해야 한다는 걸.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어릴 때부터 딸과 놀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 많았다. 바로 놀이를 그만두는 순간이 왔을 때다. 놀이에 집중한 딸이 곧바로 이성을 되찾고 "시간이 됐으니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엄마 아빠"라고 할리는 만무했다. 그걸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감정을 쏟아내는 딸을 앞에 두고 나 스스로 평온을 유지하기란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수년간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서로의 감정을 쏟아냈던 그 과정을 거치며 반성과 후회, 하지만 또다시 그 과정을 반복했던 게 도대체 얼마나였는지를 모른다.
난 울고 있던 딸에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딸, 계획대로 잘 진행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카드 엉키게 해서 기분 안 좋았나 보네. 미안해 딸”
그리고 자려고 누웠을 때 딸에게 말했다.
“근데 딸, 룰이 그런 건 이해하지? 기분은 좋지 않아도 말이야. 다음번에는 우리 좀 더 재미있게 타잔 카드 쓰면서 게임하자. 응?”
딸은 별말 없이 끄덕이며 잠이 들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고, 처음에는 딸이 울고 불고 했지만 부모가 같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과거와 달리 큰 부딪힘 없이 그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후 이틀이 지났고, 우린 다시 ‘페이퍼 사파리’를 꺼냈다. 그리고는 세 판을 나름 기분 좋게 한 후 다 같이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인생은 각 나이대별로 각각 다른 종류의 성장을 요구하는 것 같다. 딸은 딸 대로, 나는 나 대로. 예전 같았으면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딸보다 더 소리쳤을 텐데. 그런 나를 보고 딸은 딸 대로 더 소리쳤을 테고. 심각한 상황에서 짜증을 냈다면 오히려 그러려니 했을 일을, 즐거운 게임을 하며 갑자기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드러내는 감정의 강도도, 그 후 겪게 되는 고민의 깊이도 더 컸던 것 같았다. 딸과 같이 놀면서 참 많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