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확신
그럼 댁들은 어찌 결혼을 했는가?
나는 결혼 적령기의 미혼 여성이다. 누군가가 결혼 생각은 없나요, 하고 물으면 영원히 없진 않지만 지금 당장은 없다고 답한다. 왜 지금 당장은 없느냐 물으면 첫째, 결혼을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 둘째, 거대한 두 세계를 합치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아직 없다. 셋째, 평생을 함께 해야겠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티테이블 너머로 오가던 어느 주말 오후, 이미 유부녀가 된 지인들에서 두 가지의 대답이 돌아왔다. 3번이 해결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이상한 결론과 세상에 확신이 있어서 결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는 더욱 이상한 결론. 후자의 대답을 들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럼 댁은 어찌 결혼을 했는가.
되돌아오는 답변은 만장일치로 뻔했다.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혹은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내 곁에 있는 남자와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또 질문. 삼십 년 가까이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과 집안이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는 건 살아가며 벌어지는 수많은 힘든 시기와 시련을 함께 극복해 나간다는 뜻인데, 이 사람이다 싶은 확신이 없이 결혼을 하면 그런 시련들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은가.
「야, 살다 보면 다 똑같어. 어차피 사랑도 평생 가는 거 아니니까.」
아니, 뭐라고. 그러면 막 심장이 쫄깃쫄깃해지고 둘이서만 같이 꽁기꽁기하고 싶은 그런 노래 가사 속, 드라마 대사 속, 소설 문장 속 달달한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소리 아닌가.
최근 지인에게 들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나는 더욱더 깊은 혼란에 빠지고야 말았다. 애틋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어느 어여쁜 여인의 이야기였다.
「있잖아, 그때는 이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안될 것 같았거든. 다른 사람이랑 가정을 꾸리고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슬프고 마음이 허하더라고. 그래서 그이와 헤어지게 할 바엔, 차라리 날 죽이라며 쌩난리를 치고 결혼했잖아. 근데 아이도 낳고 이만큼 살아보니까 나랑 내 자식 밥 굶기지 않을 만큼 책임감 있는 남자라면 그이가 아니어도 누구랑도 살 수 있었겠다 싶어.」
꽤 많은 연애 끝에 내가 정의한 운명은, 가장 좋은 타이밍에 만나서ㅡ어느 한쪽이 집착하는 사람이 되거나 혹은 무심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ㅡ비슷한 무게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의 정의는 살아보지 않고는 감조차 잡을 수 없는 듯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처럼 결혼 이후의 삶을 궁금해하는 어느 미혼 처녀는 이렇게 점점 더 확고한 결론에 다다른다.
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