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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Feb 15. 2021

우리는 꿈이 뭐지

그녀가 말했다.

너는 꿈이 분명하네. 부러워.

그리곤 고개를 돌려 다른 이에게 물었다.

우리는 꿈이 뭐지.

적당한 웃음기로 감싸고 있었지만 앉은 자리의 모든 이들이 이면의 감정을 알 수 있는 말. 청년도 무엇도 아닌 애매한 세대의 오갈 곳 없는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지인들의 자조적 이야기가 세대의 허무를 대표하며 허공을 울렸다.


근 몇 년간 비슷한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동년배가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긴 시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지인들은 감동했다. 그것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것이나 그럴싸한 결실이 없는 것 따위에는 개의치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사실, 그 한 가지가 유일한 감동의 조건이었다. 소박한 것에 반짝이는 그들의 눈을 보며, 나는 문득 꿈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다.


원하던 학과에 입학하고 전공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안일했다. 이제 나는, 꿈의 최고치가 결국 여기인가, 마음이 갑갑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끝없이 도전해도 과정과 결과가 부담스럽지 않아야, 성장의 최고치를 찍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우연히 오드리 햅번의 성장기를 읽었다. 발레리나를 꿈꿨으나 발레를 하기에 너무 큰 키를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현실을 직시했고, 발레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틀었다. 우리가 젤라또를 먹으며 스페인 계단을 걷는 앤의 개구진 표정을 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녀의 결단 덕분이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로 길을 내야 하는 걸까. 비전의 성장판이 닫혔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렵다. 나는, 꿈을 잃어버린걸까. 2015.4.9


2015년은 한계를 느끼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시기였다. 결국 나는 한해꾸물꾸물 고민하다가 전공 외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글쓰기뿐이라는 결론을 내고 2016년부터 잔잔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화려하지 않고 그럴듯한 것도 없이 아주 소박하게.


지인들은 꾸준히 안 열심히 글을 쓰는 나를 보며 '꿈'을 말하지만 나는 종종 이게 꿈인가, 의문이 든다. 아니 그거 취미생활 아니냐,라고 누군가 말해도 딱히 반박할 말 없이 으응,하고 말 것만 같다. 하지만 꿈이든 취미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관점, 조금 더 나아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근육통과 창작의 고통과 손목터널 증후군에 시달리고도 나가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보자면, 딱히 대단한 차이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꿈을 물으면 직업을 지칭한 명사가 돌아오지만 아주 어린아이들은 조금 다른 답을 준다. 갈치가 되고 싶고 포크레인이 되고 싶고 오렌지색 뭐시기가 되고 싶은 꼬마들이, 그것의 가치를 호응되지 않는 문장과 손짓발짓으로 열심히 설명한다. 우리는 그게 뭔지도 모른 채 하하하 그렇구나 웃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가진 천진난만과 비상식, 단순함과 자유로움, 벗어날 틀조차 없는 넓고 맑은 관념의 세상. 어쩌면 어른들의 꿈에도 그런 것들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생각은 아이들의 조그마한 등을 볼 때쯤에야 모락모락 올라온다. 


'우리의 꿈은 뭘까' 고민하던 지인들과 나는 꿈을 '소박화' 하기로 했다. 직업이 되지 않거나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일을 그저 하는 것. 그리고 성취를 기록하는 것. 그것을 꿈이라 부르기로 했다. 요가를 꾸준히 하여 머리서기 자세를 성공시키는 일이나, 영상 편집을 배워 브이로그를 유튜브에 업로드 하는 일까지의 소소한 전부를. 하고 싶은 일, 하고 있으면 즐거운 일, 소박한 성취일지라도 그것을 보며 스스로를 기특해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넉넉히 조건에 부합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서 자유에 대해 말한다. 나에게 나만큼 관심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최선을 다해 내 자유를 누리면 그게 후회 없는 인생이라고. 굳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들 중, 적합한 단어를 골라 끼워 넣을 필요는 없다. 마음에 차는 단어가 없다고 '나는 꿈이 없어' 시무룩해질 이유도 없다. 얽매이는 것들에서 벗어날 때에 우리는 미래를 만난다.

제각각의 꿈들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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