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리지관찰일지 #첫번째이야기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리지관찰일기
1. 기다림의 묘미 <슈톨렌>
크리스마스마다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디저트가 있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겨울에야 처음으로 제대로 경험해 본 빵
바로 ‘슈톨렌’ 이다.
슈톨렌은 겨울이라는 계절을 온전히 닮았다.
소복이 내린 눈 속에서 막 건져 올린 빵처럼,
새하얀 파우더 슈가가 한 움큼
얹혀 있는 모습부터가 그렇다.
이번 겨울, 군산 여행 중에 그 슈톨렌을 다시 마주했다.
군산에 왔다면 꼭 들려야 한다는 이성당 빵집.
화려한 크리스마스 틴 케이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안에는 랩에 꽁꽁 싸인 새 하얀 빵이 들어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딱딱한 하얀 돌 같았는데
문득 "크리스마스마다 가족이랑 슈톨렌 먹는다"던
회사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괜히 궁금해져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집에 오는 길, 슈톨렌을 찾아봤다.
럼주에 과일과 견과류를 숙성시켜 만든 빵이고
보통의 빵들과는 다르게
2~3주의 숙성의 시간을 거친다고 한다.
사람들은 12월 초부터 한 조각씩 잘라먹으며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가운 테라스에 올려두었다.
숙성될수록 맛이 깊어진다고 하지만,
내 빵 보관 최장 기록은 고작 사흘.
상하지 않을지, 괜찮은 건지, 벌레가 꼬이진 않을지
괜히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기대와 의심 그 중간 어딘가에서
숙성의 시간을 버텼다.
딱 2주가 지난날,
엄마 생신 모임에서 슈톨렌을 오픈했다.
군데군데 노랗게 변한 부분이 있어 잠시 불안했지만
오히려 잘 숙성됐다는 표식이라고 했다.
아주 얇게, 중간부터 썰어 하루 한 조각씩 먹는 게
좋다기에 조심스럽게 칼을 댔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건포도와 오렌지필의 단 맛이 확! 끌어 올라왔다.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본연의 단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느낌.
럼주에 푹 숙성시킨 과일과 2~3cm 이상 쌓여있는
슈가파우더 덕분에 한 조각만 먹어도
‘하-' 하고 헛웃음이 나올 만큼 강력한 맛이었다.
그때 따뜻한 드립 커피를 한 모금 곁들이니
중화된 단맛이 또 기가 막혔다.
그날 처음 먹어본 숙성 슈톨렌은
가족 모임의 주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반조각을 하루 종일 가족들과 함께 나눴다.
남은 반조각을 누구와 나눌지 고민하다가
회사 운동방 친구들이 떠올랐다.
겨울엔 잠시 휴지기니까,
숙성된 맛을 같이 나누고 싶어 초대장을 보냈다.
생각보다 너무 달아서 얇게 썰다 보니
빵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팀원들, 사업부 동료들에게도 권했다.
"숙성된 슈톨렌 드셔보실래요?"
“근데 2주 된 빵이에요..ㅎㅎㅎ”
다들 '2주 된 빵'이라는 말에
동공이 매우 크게 흔들린 듯했지만
전혀 상하지 않았음을 설명하면 맛보곤 했다.
팀장님은 한입 드시더니 "사업부 사람들 모두
식중독 걸리게 하려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던시기도 했다.
그렇게 빵 한 조각은 오병이어만큼은 아니었지만
추운 겨울 많은 사람들과 색다른 경험을 나누는
따뜻한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시간이 담긴 빵이면서도
혼자 먹기엔 어딘가 아까운,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밖에 없는 숙명의 디저트 '슈톨렌'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빵이 된 게 아닐까.
내년엔 슈톨렌을 더 일찍 사서
크리스마스까지 더 오래 기다려보고 싶다.
크리스마스 당일 먹는 슈톨렌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괜히 더 궁금해졌다.
2. 쫀득하게 함께라면 <두쫀쿠>
이번 겨울, 연말인사 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두쫀쿠 먹어봤어?”
두쫀쿠...?
찾아보니 두바이 쫀득 쿠키의 줄임말이었다.
쫀득해 보이는 쿠키 안에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가
듬뿍 들어간 디저트이지만 초록색 비주얼이 그닥
맛있어 보이지 않아 기억 저편에만 넣어두고 지나쳤다
그러다 회사에서 연말 기념으로
전 직원에게두쫀쿠를 나눠줬다.
수제 디저트라 대량 생산이 어렵다 보니
수량 이슈가 생겼고, 2차 배포 때 겨우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디저트이길래
이렇게 구하기가 어려운 걸까?'
그때부터 호기심이 본격적으로 증폭됐다.
처음 본 두쫀쿠는 꿀떡만 한 사이즈에
고운 초코 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바사삭- 카다이프의 식감이 터지고,
주우욱- 쫀득한 두쫀의 피가 늘어났다.
재미있는 식감 다음으로는
쾌감 있는 단맛이 혀를 확 때렸다.
조금씩 아껴 먹으려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4조각을 순삭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두쫀쿠 상사병에 걸렸다.
몰랐던 맛을 알고 난 뒤,
저녁마다 두쫀쿠의 단맛이 떠올라
다이어트 휴지기라는 합리화를 하며 배달앱을 열었다.
하지만 퇴근 후 두쫀쿠 찾기는
모래사장에서 진주알 찾기만큼 어려웠다.
전부 품. 절.
혹시나 발견하면 피자와 치킨을 묶은
2~3만 원짜리 과소비 옵션뿐.
첫 만남 이후 이 친구를 다시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지난해 여름, 극심한 다이어트를 할 때
사내에서 나눠주는 핫한 디저트도 수량 부족 이슈가 있었는데
그때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던 게 기억난다며
두쫀쿠 하나를 더 챙겨주겠다고 했다.
나의 두 번째 두쫀쿠는
그렇게 갑작스러운 행복으로 찾아왔다.
세번쨰는 친구 손을 타고 내게로 왔다.
연말이라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날,
친구는 큰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근처 가장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두바이 쫀득 초콜릿, 쫀득 쿠키, 쫀득 수건 케이크, 두바이 초콜릿까지 무려 4종을 어렵게 구해 와서는 "짜잔!!" 하고 꺼냈다.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군침이 돌고 엔도르핀이 돈다.
무엇보다 그 귀한 디저트를 구해온
친구의 마음이 제일 달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두쫀쿠 유행도 곧 끝날 거라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공장형 간식이 아니라 카페마다 맛과 모양이 다르고
그걸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타이밍도 너무 좋았다.
여름이었으면 두쫀쿠를 먹을 생각이나 했을까?
겨울이라서,
조금은 관대한 마음으로 고칼로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서 더 사랑받는 게 아닐까.
이 겨울의 두쫀쿠를 더 만끽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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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에 경험한 슈톨렌과 두쫀쿠는
너무 다른 얼굴의 디저트였다.
하나는 기다림과 숙성이 담긴 빵이었고,
하나는 당장의 쾌락을 당기는 초콜릿이었다.
그럼에도 두 디저트의 온도는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군가와 나눠 먹을 때 더 달아지는 그 온도.
슈톨렌과 두쫀쿠의 관찰일지를 이만 마친다.
#그렇게 나는 이번겨울 5킬로나 쪘…
#그러나 참 따뜻한 겨울이었다.